나의 덴마크 선생님 - 불안과 우울의 시대에 서로 의지하는 법 배우기
정혜선 지음 / 민음사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6.7.23.

인문책시렁 490


《나의 덴마크 선생님》

 정혜선

 민음사

 2022.1.28.



  큰아이가 어제 마당에서 책을 읽는데 잠자리 한 마리가 아이 손등에 척 내려앉아서 날개를 쉽니다. 잠자리는 사람을 굳이 거리끼지 않고서 다가옵니다. 우리가 팔을 뻗으면 팔등에도 내려앉고, 어깨를 가만히 내주면 어깨에도 날아앉습니다. 머리에 앉기도 하고요.


  곰곰이 보면, 파리나 모기도 우리 팔다리에 달라붙기를 즐깁니다. 무당벌레하고 나비도 우리 팔뚝이며 손가락에 앉고 싶습니다. 스스로 푸르게 가꾸는 마음일 적에는 온누리 뭇숨결이 사람 곁에서 사랑이라는 빛을 누리려고 천천히 다가온다고 느낍니다.


  《나의 덴마크 선생님》은 덴마크로 배움길을 다녀온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우리나라하고 다른 대목을 짚고, 우리나라가 미처 못 보거나 안 보는 대목을 살핍니다. 덴마크에서 뭇나라 사람들을 고르게 이끌거나 가르친다는 길잡이는 섣불리 끌어당기지 않는다고 해요. 지켜보고 기다린다지요. 끝없이 묻고 다시 물으면서 누구나 스스로 길을 찾아나서기를 바란다지요.


  글쓴이는 우리나라에서 새배움터(대안학교)를 다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새배움터를 다녔더라도 ‘스스로묻기·스스로찾기’는 익숙하지 않은 듯하군요. 더욱이 ‘덴마크는 좋아하면서 들여다보’더라도, 가까운 옆나라 일본에서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려고 하는지 까맣게 모르는구나 싶어요.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인데, 어린이와 푸름이가 스스로 찾아나서지 않으면 ‘배움책(교과서)’으로 섣부르거나 엉뚱하게 길들 수 있습니다. 배움책은 간추린 작은 꾸러미일 뿐입니다. 배움책은 서울살이에 맞춘 틀입니다. 배움책은 서울에서 벼슬이나 감투를 얻는 일자리에 걸맞는 짜임새입니다.


  배움길이라면 모든 책을 ‘곁책’으로 삼을 노릇입니다. 배움길이라면 모든 말을 ‘곁말’로 삼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책만 가려읽거나 저 말만 가려들으려고 하면 ‘두 귀’가 아닌 ‘한 귀’만 여는 모습이라고도 할 테지만, ‘한 귀조차 귀퉁이만 조금 연’ 시늉입니다.


  푸른별 숱한 나라는 포도밭을 사슬판으로 꾸리기 일쑤입니다. 나무가 나무결대로 자라도록 북돋우는 포도밭은 아주 드뭅니다. 숱한 포도밭은 쇠줄로 친친 동여매고, 끝없이 가지를 잘라댑니다. 이렇게 해야 ‘아픈 포도나무’가 눈물로 열매를 주렁주렁 달게 내놓는다고 여기거든요.


  온나라 논밭은 한여름과 늦여름이 온통 죽임물판입니다. 끝없이 죽임물을 들이붓고 퍼붓고 쏟아부어요. 이렇게 해야만 ‘농업’이라고 여깁니다. 논밭에 심은 몇 가지를 뺀 모든 풀과 나무는 죽어야 한다고 여기는 농업이고, 벌나비와 풀벌레와 매미와 지렁이와 새를 비롯한 뭇이웃은 쓸모없다고 여기는 농업입니다.


  밭일을 할 적에 김(잡초)을 모조리 뽑아내기만 하면, 풀을 못 배웁니다. 풀을 못 배우는 길은 굴레요, ‘사슬밭’입니다. 사슬밭에 ‘오래밭(퍼머컬처)’이라는 이름은 안 어울립니다. 풀을 미워하는 마음이 이미 자리잡은 터라면, 배움길에 나서더라도 자꾸자꾸 미움씨를 끌어들입니다. 풀과 풀벌레를 하나하나 마주하고 배우려는 하루가 아닐 적에는, 덴마크이든 일본이든 미국이든 고스란히 들여다보는 눈하고도 멀어요.


  부디 ‘모두’ 짚고 살피고 헤아리는 배움길로 하루를 가꾸기를 빌 뿐입니다. 좋아하는 곳만 가려서 읽거나 듣거나 보려고 하기에 외곬로 빠지면서 목소리만 높입니다. ‘좋아할’ 곳이 아닌 ‘사랑할’ 숨빛을 바라보아야 온눈을 뜹니다. 온손과 온발로 일할 노릇이고, 온마음과 온몸으로 이 별을 품을 노릇입니다.


ㅍㄹㄴ


“조금 더 천천히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그러자 선생님은 방금 말한 내용을 다시 천천히 이야기했다. 이 순간이 마음속에 섬광처럼 새겨졌다. 47쪽


수업 시간에 나온 학생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직업으로서의 농사가 인기 없는 것은 유럽도 다르지 않은 듯하다. 88쪽


덴마크 사람들은 자기네 나라만이 아니라 아프리카와 중동 같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121쪽


“그 친구들은 처음 들어 보는 내용이니 당황할 수 있어. 그렇지만 이제 시작이야.” 155쪽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인 우리는 서로 미워하고 싶지 않다.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전쟁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294쪽


그 후로 나는 고향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피하게 되었다. 덴마크에서 어렵게 구축한 나의 세계는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309쪽


+


《나의 덴마크 선생님》(정혜선, 민음사, 2022)


성인이 된 이후에 나는 두 곳의 대안학교에 다녔다

→ 나는 어른이 되고서 열린배움터 두 곳을 다녔다

→ 나는 어른이 된 뒤 새배움터 두 곳을 다녔다

7쪽


과하게 화려한 그래피티로 장식된 파티룸이 있다

→ 너무 알록달록하게 그림을 꾸민 잔치칸이 있다

→ 무척 멋있게 도막그림으로 꾸민 놀이칸이 있다

17쪽


음유시인들이 모국어로 들려주는 시와 노래는 힘이 있고 풍요롭기에 우리가 나고 자란 땅에 대한 사랑을 일깨우고 키워 준다

→ 노래지기가 겨레말로 들려주는 가락과 노래는 힘이 있고 넉넉하기에 우리가 나고자란 땅을 사랑하라고 일깨우고 키운다

→ 노래나그네가 엄마말로 들려주는 소리와 노래는 힘있고 푸짐하기에 우리가 나고자란 땅을 사랑하도록 일깨우고 키운다

→ 노래떠돌이가 우리말로 들려주는 노랫가락은 힘있고 빛나기에 우리가 나고자란 땅을 사랑하라고 일깨우고 키운다

34쪽


선생님이 우리에게 던진 첫 번째 질문은 이 수업을 왜 선택했는가다

→ 길잡이는 우리가 왜 이 길을 배우려 하는지부터 묻는다

→ 스승은 우리가 왜 이 갈래를 들으려 하는지부터 묻는다

36쪽


지금 폭격이 쏟아지는 잿빛 폐허의 땅이 되었다

→ 이제 펑펑 터지는 잿빛터가 되었다

→ 어느덧 마구 쏟아져 잿빛이 되었다

54쪽


그의 웃음소리에 깨닫는다. 아하, 내가 질문을 시작했구나. 내가 언어를 갖기 시작한 것이다

→ 그가 웃자 깨닫는다. 아하, 내가 물어보는구나. 내가 말을 품는구나

→ 그가 웃기에 깨닫는다. 아하, 내가 묻는구나. 내가 말을 받아들이네

→ 그가 웃는다. 깨닫는다. 아하, 내가 묻는구나. 내가 말을 여네

58쪽


걷는 건 도시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

→ 걸어야 마을을 제대로 알 수 있지

→ 마을을 제대로 알려면 걸어야지

69쪽


개량한복을 입은 선생님이 첫 번째로 던진 질문은 이랬다

→ 한빔을 입은 길잡이는 이렇게 물어보았다

→ 한겨레빔을 입은 어른은 처음에 이렇게 물었다

70쪽


우리는 스스로를 시니어 그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 우리는 스스로 손위모임이라고 얘기했는데

→ 우리는 스스로 늙은동아리라고 여겼는데

112쪽


외국 여러 나라의 농장에서 오랜 경험을 쌓았다는 중년 여성이다

→ 여러 나라 숲밭에서 오래 일했다는 아줌마이다

→ 여러 나라 들밭에서 오래 일했다는 아지매이다

114쪽


본격적인 퍼머컬처 밭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 바야흐로 오래밭을 짓는다

→ 이제부터 오래살림밭을 짓는다

121쪽


우리가 서로 적이 되어 반목하면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

→ 우리가 서로 미워하고 등지면 누가 좋아하는가

→ 우리가 서로 싫어하고 부딪치면 누가 좋은가

157쪽


밭에 있던 외래 식물을 제거하고 나서도

→ 밭에 있던 들온풀을 다 뽑고 나서도

→ 밭에서 바깥풀을 모두 뽑고 나서도

161쪽


뿌리를 파내다 보면 사위가 어두워져 있다

→ 뿌리를 파내다 보면 둘레가 어둡다

→ 뿌리를 파내다 보면 모두 어둡다

→ 뿌리를 파내다 보면 다 어둡다

162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