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읽기 - 기억하지 못해도
한유주 지음 / 마티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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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6.7.20.

다듬읽기 293


《계속 읽기 : 기억하지 못해도》

 한유주

 마티

 2025.6.18.



  《계속 읽기 : 기억하지 못해도》를 읽었다. 글쓴이가 107쪽에서 다룬 책꾸러미는 《세계의 어린이》(웅진출판주식회사)이다. 일본에서 1986해에 《世界のこどもたち》(偕成社)라는 이름을 붙여서 서른넉 자락으로 처음 냈다. 한글판은 통째로(전집) 팔기만 했고, 헌책집에 으레 나오지만 바로 팔리며 사랑받는다. 이제 이 꾸러미에 담은 어린이 모습이 ‘예스러울’ 수 있지만, 숱한 나라는 이 책에 담긴 모습을 고스란히 잇는다. 우리나라만 유난히 마흔 해 사이에 확 뒤집혔다.


  일본스런 한자말 ‘계속’을 우리말로 풀면 ‘잇다’이다. 밑뜻은 ‘잇다’요, 쓰는 자리에 따라서 ‘또·자꾸·다시·내내·내처·그대로·한결같이·오래’를 가리킬 수 있다. 언뜻 보면 일본스런 한자말 한 마디로 여러 뜻을 나타내는 줄 잘못 알 만하다. 우리말 ‘또’이든 ‘잇다’이든 ‘내내’이든 ‘오래’이든 한두 가지 뜻만 깃들지 않는다. 숱한 뜻과 쓰임새가 다 다르게 도사린다.


  언제라도 읽고 싶다면 언제라도 쓸 노릇이다. 글만 쓸 일이 아니라, 마음을 쓰고, 생각하는 빛을 쓰고, 나누려는 꿈을 쓸 노릇이다. 살림이라는 길을 쓰고, 사랑이라는 노래를 쓰고, 아이곁에서 어질게 피어나는 어른이라는 눈망울을 쓸 노릇이다. 책만 쥐려고 하면 ‘책벌레’가 아니라 ‘먹물’이 되고 만다. 글만 쓰려고 하면 ‘글벌레’가 아니라 ‘벼슬아치·감투잡이’가 되고 만다.


  우리는 이제부터 말과 글이 무엇인지 처음부터 새롭게 짚을 때라고 본다. 그냥그냥 배움터에서 가르치거나 길들인 말글이 아닌, 그냥그냥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쓸 말글이 아닌, 그냥그냥 책에 나오고 새뜸(언론)에 흐르는 말글이 아닌, 그야말로 먼 옛날부터 이 땅에서 사람들이 삶을 짓고 살림을 펴는 동안 온마음으로 피워낸 말빛을 돌아볼 일이다. 누구나 사투리를 쓰던 때를 잊는다면, 누구나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터전을 나란히 잃는다. 서울말(표준어)에 스스로 갇힌다면, 누구나 책을 이야기하고 글월을 나누는 마을을 어느새 잃는다.


  읽고 싶다면 익히고 일굴 노릇이다. 읽으려는 뜻이라면, 눈을 뜨고서 일어날 노릇이다. 읽고 쓰는 하루를 살아내고 싶다면, 언제나 먼저 스스로 사랑하고 살림하는 숲빛으로 걸어갈 노릇이다. 돈과 이름과 힘을 다 내려놓고서, 시골에서 오두막집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늘 즐겁고 아름답게 읽고 쓴다고 본다.


ㅍㄹㄴ


《계속 읽기 : 기억하지 못해도》(한유주, 마티, 2025)


책상 위를 둘러보며

→ 책자리를 둘러보며

→ 자리를 둘러보며

7쪽


이 짧은 소설이 언급되고 있어서다

→ 이 짧은글을 다루기 때문이다

→ 이 짧은얘기를 들기 때문이다

7쪽


이전까지 틈이나 갭(gap)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대신 라쿠나라고 부르면 텍스트가 필연적으로 내포하는 비밀의 공간 혹은 공백이 한층 심원한 탐사를 요하는 물리적인 공간처럼 확장되는 기분이 든다

→ 이제까지 틈이나 사이라는 말을 썼는데, ‘빔’이라고 쓰면 마땅히 담아낼 뒤켠이나 빈곳을 더 깊이 헤아리고 넓히는 글로 바뀌는 듯하다

→ 여태 틈이나 금이라고 했는데, ‘없’이라고 하면 반드시 깃드는 숨은터나 빈자리를 한결 고즈넉이 살피고 넓히는 글로 피어나는 듯하다

8쪽


작가가 의도적·비의도적으로 설명을 생략하고 넘어가는 경우에도

→ 글쓴이가 알게 모르게 넘어가는 때에도

→ 지은이가 이래저래 건너뛰는 때에도

8쪽


읽기라는 행위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또 하나의 개념은 아포리아(aporia)다

→ 읽는 일을 자주 생각하다가 떠오르는 하나는 구석이다

→ 읽기를 생각하면 자주 떠오르는 하나는 막다른길이다

→ 읽기란 무엇인지 생각하는 다른 길은 벼랑끝이다

10쪽


읽는 행위를 계속해서 흔들고 지연시킨다

→ 읽는 짓을 자꾸 흔들고 늦춘다

→ 읽는 길을 내내 흔들고 뭉갠다

11쪽


나는 여전히 문학의 언어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법의 언어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한 상태나 다름없다

→ 나는 아직 글꽃말을 잘 알지 못하고, 기틀말은 아주 모른다

→ 나는 여태 이야기말을 잘 알지 못하고, 따지는 말은 젬치이다

→ 나는 도무지 포근한 말을 잘 알지 못하고, 깐깐한 말은 까맣다

14쪽


신기하게도 좋은 책들은 존재하는 모든 책들보다 많다

→ 놀랍게도 알찬 책은 온누리 모든 책보다 많다

→ 재밌게도 아름책은 푸른별 모든 책보다 많다

15쪽


작업실의 책들을 정리하고 있다

→ 일터에 둔 책을 추스른다

→ 일곳에 놓은 책을 치운다

17쪽


나는 호더에 가까운 사람이지만 특별히 물건에 미련을 가져본 적은 없다

→ 나는 사냥꾼에 가깝지만 딱히 붙잡을 마음은 없다

→ 나는 그러모으는 사람이지만 굳이 붙들 마음은 없다

18쪽


허나 내 집의 용적량은 당연하게도 한계가 분명해서

→ 그러나 우리집에 놓을 곳은 끝이 있어서

→ 그런데 우리집에 둘 자리는 끝이 있기에

18쪽


중고서점 근처까지 가는

→ 헌책집 가까이 가는

→ 헌책집 둘레로 가는

19쪽


다시 한번 지도 앱을 확인해 중고서점이 영업 중이라는 내용을 확인했지만

→ 다시 길그림꽃을 켜서 헌책집이 있다고 알아봤지만

→ 다시 길그림모를 보며 헌책집이 열린 줄 살폈지만

20쪽


재활용품 버리는 곳에 책들을 유기하고 말겠다는

→ 되살림을 버리는 곳에 책을 버리고 말겠다는

→ 되살림터에 책을 내팽개치고 말겠다는

20쪽


애매한 대화를 신나게 나누었던 사람들은 나랑 비슷한 유였다

→ 어정쩡한 말을 신나게 나눈 사람들은 나랑 비슷했다

→ 뜬금없고 신나게 얘기한 사람들은 나랑 비슷했다

31쪽


그때도 지금처럼 기골이 장대한 편이었기에 얼마간 지내게 될

→ 그때도 요즘처럼 덩치가 컸기에 한동안 지낼

→ 그때도 요새처럼 우람했기에 얼마쯤 지낼

35쪽


다시 읽기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 다시읽으며 즐거웠다

→ 다시읽기가 즐거웠다

38쪽


의외로 냉정한 조언들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뜻밖에 까칠히 들려주는 말을 즐기는지도 모르겠다고 봤다

→ 어쩌면 무뚝뚝히 짚는 말을 반기는지도 모르겠다고 여겼다

48쪽


심지어 우철제본에 세로줄쓰기로 인쇄되어 있다

→ 게다가 오른매듭에 세로줄쓰기로 찍었다

→ 더구나 오른묶음에 세로줄쓰기로 찍었다

55쪽


어머니 글씨가 외할아버지의 그것과 많이 닮았다

→ 어머니 글씨가 할아버지 글씨와 무척 닮았다

55쪽


누군가가 물도 없는 수영장 옆 선베드에 수영복을 입고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 누가 물도 없는 헤엄터 옆 햇살받이에 헤엄옷을 입고 누워 책을 읽는다

→ 물도 없는 헤엄터 옆 해자리에 헤엄옷을 입고 누워 책을 읽는 누가 있다

62쪽


스무 번쯤 《마담 보바리》를 재독해왔다

→ 스무 벌쯤 《보바리 씨》를 되읽었다

→ 《보바리 마님》을 스무 벌쯤 읽었다

75쪽


독서와 비독서 사이

→ 읽기와 안 읽기

→ 읽기와 안읽 사이

78쪽


시켜놓고 펼쳐보는 습관이 한동안 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 시켜놓고 펼쳐보곤 했다

→ 시켜놓고 펼쳐보기 일쑤였다

→ 시켜놓고 펼쳐보게 마련이었다

80쪽


혹은 그렇다고 믿거나, 이해를 포기했을 텐데, 세부사항들은 모조리 휘발되고 없다

→ 아니면 그렇다고 믿거나, 손을 들었을 텐데, 낱낱은 모조리 잊어버렸다

→ 또는 그렇다고 믿거나, 두손을 들었을 텐데, 마디마디는 모조리 잊었다

82쪽


몇몇 문장을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곱씹었던 경험을 여전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 몇몇 글월을 거리불빛에 기대에 곱씹던 일을 오늘도 고이 여긴다

→ 몇몇 대목을 길불빛에 비추며 곱씹던 날은 여태껏 뜻깊다

85쪽


성인 ADHD와 더불어 우울감과 공황장애를 진단받은 뒤로 내 상태를 규정하는 굳건한 명사를 부여받아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 어른 어수선앓이와 눈물앓이와 붕뜨기라 말하기에, 나를 밝히는 굳건한 이름을 받아 고맙다고 느끼면서

→ 어른 딴청과 멍꽃과 덜렁질이라 짚어주기에, 나를 가르는 굳건한 이름씨를 받아 기쁘다고 여기면서

86쪽


예전처럼 독서에의 몰입을 만끽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 예전처럼 책에 빠질 수만은 없다

→ 예전처럼 책사랑을 즐길 수만은 없다

88쪽


무인도에 가져갈 책 목록을 업데이트하지 않았다

→ 빈섬에 가져갈 책꾸러미를 고치지 않았다

→ 고요섬에 가져갈 책보따리를 갈지 않았다

→ 홀로섬에 가져갈 책다발을 새로하지 않았다

→ 홀섬에 가져갈 책꿰미를 바꾸지 않았다

95쪽


흉터가 여전히 건재하므로

→ 흉터가 멀쩡하므로

→ 흉터가 단단하므로

100쪽


식물채집 표본을 만들었는데 내가 동네를 돌아다니며 훼손해온 식물들의 이름을 어머니는 모두 알고 있었다

→ 들꽃꾸러미를 엮는데 어머니는 내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꺾은 들꽃이름을 모두 알았다

→ 풀꽃담이를 여미는데 어머니는 내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뽑은 풀꽃이름을 모두 알았다

102쪽


전과에는 양대산맥이 있었는데

→ 곁책에는 두갈래가 있는데

→ 도움책은 둘이 있는데

106쪽


그의 답에 따르면 로제와인은 가볍고 상쾌한 느낌이라

→ 그가 말하길 배롱포도술은 가볍고 시원하다며

→ 그는 배롱포도술은 가볍고 상큼하다고 말해서

114쪽


본고장에서는 식전주로 많이 마시지만

→ 그곳에서는 돋술로 많이 마시지만

→ 그쪽에서는 입맛술로 많이 마시지만

→ 그나라는 맛술로 많이 마시지만

114쪽


바로 와독(臥讀)을 포기하진 않았고, 누워서 책을 읽을 때마다

→ 바로 눕읽기를 멈추진 않았고, 누워서 책을 읽을 때마다

→ 바로 누워읽기를 그치진 않았고, 누워서 책을 읽을 때마다

124쪽


여간해서는 복근이 단련되지 않던 와중에 침대에서의 독서를 가능하게 해주는 장비를 하나 마련했다

→ 배힘살을 다지기 꽤 힘든데 자리에 누워서 읽을 수 있는 살림을 하나 마련했다

→ 뱃힘살을 갈닦기 무척 힘든데 잠자리에서 읽을 수 있는 살림을 하나 마련했다

124쪽


아침마다 잠과 분투를 벌였다

→ 아침마다 자느라 몸부림이다

→ 아침마다 자느라 발버둥이다

→ 아침마다 졸려서 용쓴다

129쪽


대충 넣어두고 가끔씩만 꺼내 쓰는

→ 아무렇게나 넣고 가끔 꺼내 쓰는

→ 그냥 넣고서 가끔 꺼내 쓰는

135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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