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틈새내기



  배움터(학교)0에 다니려면 집을 떠나야 한다. 집을 안 떠나면 배움터를 못 다닌다. 사람들은 배움터를 다닐수록 집을 등진다. 집을 등지느라 집일과 집살림도 등진다. 집일과 집살림을 남한테 맡기거나 돈으로 다루어야 비로소 배움터를 다닐 수 있다. ‘일터(회사)’도 같다. 일터를 다니려면, 집을 떠나야 하고, 집일과 집살림을 남한테 맡기거나 돈으로 굴려야 한다.


  배움터나 일터를 다니면서도 집일과 집살림을 안 잊는 길을 헤아릴 수 있을까? 집일과 집살림을 즐거이 맡고 나누고 누리고 펴면서, 배움터와 일터도 즐겁게 오가고 기쁘게 헤아리는 길을 열 수 있을까?


  모임에 오시는 분들은 저마다 한둘이나 두어 가지 다른 자리나 모임을 물린다(취소). 어느 모임이나 자리로 가려고 하면, 그동안 하거나 잇던 다른 모임이나 자리를 건너뛰거나 쉬거나 그만두어야 한다. 노는 모임이건, 배우는 모임이건, 읽거나 쓰는 모임이건, 무엇을 하려는 모임이건, 어느 모임으로 나아가려면 다른 길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으레 있는 일(일정)을 이따금 안 해보면서, 스스로 새로 배우는 곳에 가보자는 마음을 일으킬 적에 배운다. 배우고 나서는 차분히 돌아볼 틈을 내야 익힌다. 익히고 나서는 천천히 몸마음에 녹이는 틈새를 열어야 한다. 틈새를 열기에 바람을 타면서 살며시 피어난다, 틈새가 나기에 별빛이 깃들면서 살그마니 깨어난다.


  종이(졸업장)를 따려는 배움터를 다닌다면 그만 집일과 집살림이 뒷전이게 마련이다. 종이(화폐)를 얻으려는 일터를 다닌다면 그만 집일과 집살림을 할 힘을 일터에서 다 쓰고야 만다. 남과 겨뤄서 이기는 불바다(입시지옥)에 얽매이는 배움터는 ‘배움시늉’일 뿐, 배움길하고 멀다. 남보다 돈을 더 얻거나 받거나 누리려는 일터는 ‘일흉내’일 뿐, 일살림하고 멀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나는 여러 시골일을 나흘 쉬려고 해야 서울이며 부산이며 큰고장으로 하루 이야기를 하러 오갈 수 있다. 오가는 길이 이틀이고, 앞뒤로 하루씩 몸풀이와 몸씻이를 한다. 이야기꽃을 이끄는 사람부터 나흘틈새를 내면서 “무슨 말을 나눌는지 생각하고 추스르”며, 이야기꽃을 마치고서도 달포 즈음 되새기고 곱새기며 “나는 그날 그곳에서 무엇을 배웠나?” 하고 짚는다.


  국이든 밥이든 다 끓이고서 뜸을 살짝 들인다. 뜸들인 국과 밥은 속으로 그윽히 빛난다. 이야기는 듣거나 함께했어도, 뜸들이듯 틈새내기를 하지 않는다면 어느새 까맣게 잊고 만다. 말하는 사람과 말듣는 사람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길잡이(교사 및 지도자)는 너무 밭고 바쁘다. 일하고서 안 쉬거나, 바깥일을 마치고서 집일을 안 한다면, 뜸을 안 들인다는 뜻이다. 집일을 건사할 힘을 남기고서 집으로 돌아가야 맞다. 집살림을 보듬을 힘까지 배움터나 일터에서 쏟아붓지 않아야 맞다.


  나는 하룻길로 부산을 다녀온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서 어제 하루를 돌아본다. 우리 시골집에는 가랑비가 듣는단다. 이윽고 장대비로 바뀐단다. 오늘 부산은 어제마냥 뙤약볕이다. 버스전철은 얼음나라(에어컨지옥)이다. 여름에 뙤약볕을 멀리하느라 얼음나라에 스스로 가두면 스스로 죽는다. 여름은 땀을 실컷 흘리며 몸속때를 내보내야 온몸이 밝게 깨어난다. 얼음수렁(에어컨)을 걷어치우면서 바람틈새를 내려는 이웃님을 그리고 기다린다. 2026.6.17.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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