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헛버스



  어제(2026.6.29.) 낮에 고흥읍에 다녀오려고 했다. 전남 고흥군에서 드디어 ‘고흥문화재단’을 차려서 첫발을 내딛는다고 하더라. 잔치마당으로 꾸리는 첫밗(출범식)이라 하기에, 우리집에서 옆마을로 논둑길을 따라 걸어가서 13:05 시골버스를 타고 나가면 되리라 보았다. 첫여름 뙤약볕을 신나게 쬐면서 논둑을 걷는다. 느긋이 나서는 길이라 책을 쥐며 걷는다. 온몸으로 여름볕을 받고, 눈을 거쳐 마음으로는 책을 읽는다. 논둑길을 따라서 옆마을에 닿을 동안 이럭저럭 ¼쯤 읽는다. 시골버스를 기다리며 노래를 두 꼭지 쓴다. 버스가 아직 안 온다고 느끼며 책을 마저 읽는다. 책 한 자락을 ½ 즈음 읽을 때까지 버스는 안 온다. 이제 13:25. 와야 할 버스가 그냥 안 오는구나.


  첫밗잔치에는 손님이 많을 테니 나까지 안 가도 되리라. 그곳에 가는 이웃님한테 “저도 가려 했는데 마을에서 읍내로 나가는 시골버스가 안 오네요. 하하. 마음으로만 갑니다.” 하고 이야기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논둑길에서는 다른 책을 꺼낸다. 아까 옆마을로 걸어갈 때보다 천천히 걷는다. 집으로 가는 논둑길에서 쥔 다른 책은 우리 마을 어귀에서 다 읽는다. 무럭무럭 푸르게 오르는 벼포기를 본다. 아직 풀죽임물이 번지지 않았으니, 논마다 소금쟁이가 실컷 쏘다닌다. 개구리가 폴짝 숨는다.


  집에 닿아 빨래를 하고, 씻고, 등허리를 펴고, 살짝 눈을 감는다. 저물녘에 눈을 뜨고서 빨래를 들이고 미역국을 데운다. 저녁에 저잣마실을 다녀오자고 여기면서, 우리 마을을 지나가는 18:50 시골버스를 탄다. 가볍게 저잣길을 거닐고서 읍내 버스나루로 간다. 낮에 읽던 책을 더 읽는다. 이제 20:00 시골버스를 기다리면 된다. 그런데 20:05를 지나도 없네. 뭐지? 읍내 버스나루 버스때(버스시간표)를 다시 들여다본다. 어라? 집으로 돌아갈 끝버스가 언제 20:00에서 19:40으로 바뀌었지?


  띵하다. 어디에도 알림글이 붙은 바 없이, 읍내 버스나로에 붙인 버스때에 조그마한 종이로 슬쩍 덧붙여서 “버스때를 몰래 바꾸었”네. 헛웃음이 나온다. 곰곰이 보면, 2011해부터 2026해에 이르는 동안, 버스때를 이리저리 바꾸거나 버스때가 아예 사라질 적에 마을알림을 한 적이 아예 없다. 그냥 쪽종이 하나를 손글씨로 덧붙여서 ‘바뀐 티’를 넌지시 낼 뿐이다.


  집으로 돌아갈 시골버스가 없으니 택시를 부른다. 등짐을 택시에 얹으니 홀가분할 수 있다. 택시 뒷자리에 앉아서 하루글을 쓴다. 오늘은 낮과 저녁에 잇달아 시골버스로 헛걸음을 한 셈일 텐데, 헛걸음이라기보다 ‘헛버스’이다. 고을(지자체)에서 주는 돈(세금)으로 시골버스를 꾸리면서 정작 시골사람 발 노릇을 하지 않는다. 시골에서 벼슬(꽁무원)을 맡은 이는 시골버스를 아예 안 타다시피 하기에, 이런 민낯을 까맣게 모른다. 어쩌다가 이런 민낯을 보거나 듣더라도 시큰둥히 지나간다. 뭐, 헛버스를 기다리느라 책을 잔뜩 읽고 글을 꽤 썼다만. 2026.6.30.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