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파리채를



  파리채를 휘두르면서 파리한테 “사랑해.” 하고 속삭일 사람은 없다. 파리한테 사랑한다고 속삭인다면 파리채가 없이 팔등에 파리를 앉히고서 눈을 마주볼 테니까. 파리채로 모기를 찰싹 때려잡으면서 “사랑해.” 하고 노래할 사람은 없다. 모기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어깨에 모기를 앉히고서 물끄러미 눈을 마주볼 테지.


  올해는 지난해보다 파리모기가 훨씬 적다. 우리집만 파리모기가 적을 수 있다. 풀밭에서 몇 마리 만나기는 하되 이 몇 마리가 다라 할 수 있다. 우리집 어귀로 나오면 이미 마을이며 읍내이며 파리모기는 꽤 많다. 서울이며 큰고장으로 일하러 나설 적에도 파리모기는 넘친다. 사람들이 죽임물을 뿌리고 빛살(전기)로 이글이글 태워도 파리모기는 서울이며 큰고장에서 안 줄고 안 사라진다.


  새가 줄면 파리모기가 는다. 개구리와 사마귀가 사라지면 파리모기가 춤춘다. 아주 쉬운 숲얼개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들숲메바다를 망가뜨리면서 새랑 개구리랑 사마귀를 떼죽음으로 내몬다. 고양이밥을 주는 그릇 곁으로 나무가 한 그루씩 자랄 땅뙈기를 푸르게 넓혀야지 싶다. 달구지를 하나씩 줄이면서 나무와 둥지가 늘 빈터를 늘려야지 싶다. 잿더미(아파트)는 이제 걷어내고서 골목집으로 나즈막이 어깨동무를 하고서 “골목집 마당”마다 나무를 한두 그루씩 심어서 돌보고, 골목집 사이사이에는 조그맣게 숲정이를 두는 길로 거듭나야지 싶다.


  물과 빛살(전기)을 엄청나게 잡아먹으면서 땅과 바다를 더럽히는 ‘반도체공장’에다가 ‘데이터센터’이다. 여태 이런 속내를 쉬쉬하다가 요즈막에 조금은 드러나는구나 싶다. 게다가 바다에까지 “목숨 20해”짜리인 바람개비를 때려박는 짓은 푸른길(친환경)하고 멀다. ‘푸른길’은 무엇일까? ‘걷는길’에 ‘나무길’에 ‘나비길’에 ‘개구리길’에 ‘참새길’에 ‘잠자리길’에 ‘구렁이길’에 ‘너구리길’에 ‘멧돼지길’에 ‘사마귀길’에 ‘거미길’에 ‘풀벌레길’에 ‘들꽃길’에 ‘밭둑길’이 바로 푸른길이다.


  서울책잔치(서울국제도서전)는 오늘(2026.6.27.)도 북적일 테지. 찬바람(에어컨)을 펑펑 돌리는 커다란 곳에서는 책을 사거나 읽고 싶지 않다. 나무 곁에 서서 책을 사고 읽고 쓰고 나누고 싶다. 나는 “나무 곁에서 나무랑 나란히 누리는 책잔치”가 피어날 앞길을 그린다. 나는 “푸른숲을 품는 시골에서 누구나 누리는 책숲”이 깨어날 앞날을 그린다. 나는 “시골과 서울 모두 푸르게 탈바꿈하면서 나무노래를 함께 누리는 책빛”을 그린다.


  나무를 잊고 등진 채 종이책을 손에 쥔다면 허울이라고 본다. 나무를 안 심으면서 종이책을 사읽는다면 껍데기라고 본다. 나무를 돌보는 작은길과 작은집과 작은살림을 그리지 않으면서 종이책에 파묻힌다면 눈속임이라고 본다.


  나무책(나무도감)이 아니라 나무한테서 배울 때라야 비로소 책읽기라고 본다. 나무하고 속삭이면서 나무씨앗 한 톨을 손바닥에 얹고서 “온누리가 깨어난 수수께끼”를 헤아릴 적에 바야흐로 책읽기를 이룬다고 본다. 나는 나무이다. 너도 나무이다. 우리는 나무이다. 나무에 앉는 새도 나무가 된다. 나무에 깃드는 하늘소와 사슴벌레와 풀벌레도 나무와 한마음이다. 푸른별 모든 숨붙이는 모름지기 서로서로 낳고 나누면서 날아오르는 나무빛으로 이곳에 모이면서 도란도란 즐겁게 삶을 지어왔다고 본다. 2026.6.27.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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