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15 조용하지 않아
책벌레수다 : ‘책잔치’와 ‘책자랑’ 사이
어제(2026.6.24.)부터 서울 한복판에서 책잔치(서울국제도서전)를 연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는 줄 까맣게 모르다가, ‘옛 나라지기’하고 ‘ㅈ 씨’하고 만나서 활짝 웃는 모습이 여러 곳에 크게 뜨기에 문득 알아챈다. 어제는 믿음길(대통령 지지율)이 새로 나왔다는데, 딱 다섯 군데 새뜸(언론사)에서만 글로 다룬다. 얼마 앞서는 열 몇 군데가 다루던데, ‘새 나라지기’가 일을 잘 한다고 하는 사람이 토막난(50% 밑) 뒤로는 감쪽같이 글을 안 쓴다. 스스로 왼쪽이라 여기는 ‘한겨레·경향·오마이’는 ‘토막난 믿음길 이야기’를 쓸 뜻이 아예 없어 보인다. 그런데 ‘새 나라지기’가 잘되기를 바란다면, 사람들이 “왜 이리 일을 못 하느냐!” 하고 타박하거나 꾸짖을 적에 더 넓고 깊게 글로 다뤄야 맞지 않나? 타박하는 들풀소리는 감추거나 숨기는 채, “일을 잘 한다”고만 글을 쓰려고 한다면, 이럴 때에야말로 힘(권력)에 사로잡히게 마련이다.
“여보, 당신 설마, 여자 데리고 여행가려는 속셈 아니야?” “바보야, 그럼 좀더 그럴듯하게 둘러대야지.” … “오늘 여행 사진이 왔구나.” “벚꽃이랑 참 예쁘게 잘 나왔죠?” “응. 하지만 나는 마지막 버스 안에서 찍은 게 제일 좋더라. 무슨 전우 같지 않니? 언제 또 같이 여행 가자꾸나.” “생각해 볼게요.” 《붉은 꽃다발》 13, 98쪽
서울책잔치는 ‘아랫내(강남)’에서 열린다. 얼마 앞서 뽑기(선거)를 놓고서 말이 아직 많을 수밖에 없는데, 서울일꾼으로 뽑힌 분은 아랫내에서 많이 밀어주었다고 한다. 웃내이든 아랫내이든 다같이 서울일 테지만, 아랫내 사람들을 철없다고 여기는 손가락이 많은데, 어쩐지 서울책잔치는 ‘웃내’가 아닌 ‘아랫내’에서만 해야 한다고 여겨 버릇한다. 또한 아랫내로 놀러다니는 사람이 오지게 많다. 웃내 곳곳에서 마을책집을 찾아다니는 발걸음이 적지는 않지만, ‘아랫내 책잔치’에 몰려드는 구름떼를 헤아린다면, ‘웃내 마을책집’에는 아예 모르쇠라고까지 할 만하다. 그나저나 올해 서울책잔치 자리값이 껑충 뛰었다는데, 시골마을 양산에 있다는 〈평산책방〉은 멀쩡히 자리를 장만해서 손님을 잔뜩 받는다고 한다. 옛 나라지기는 새책을 내놓고서 신나게 판다고 한다. 시골에서 조용하게 살겠다고 외친 말은 이미 사그라들었다. 아니, 시골에 우람하게 새집을 지을 때부터 ‘조용살이’하고 멀 수밖에 없다.
‘좀더 차분하게 얘기할 걸 그랬다. 내가 토모짱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옛날의 나라면 바로 말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 “날 위한 일이라면, 말해줬으면 좋겠다. 상처 입어도 괜찮으니까.” 《자전거집 타카하시 군 9》 53, 154쪽
누구나 책집을 차릴 수 있다. 옛 나라지기도 책집을 차릴 수 있다. 그렇지만 곰곰이 짚어 보자. 다달이 나라에서 목돈을 쥐어주는 벼슬을 맡은 바 있다면, 앞으로도 다달이 목돈이 나오는 자리에 있다면, “다른 작은책집을 헤아려서, 다른 작은책집에서 책을 사들여서 갖추는 작은책숲(지역도서관)을 열어야” 어울리지 않을까? 조용살이를 하려면 책장사가 아닌 책지기(도서관 사서) 노릇을 해야 걸맞지 않을까? 왼오른길과 가운길 모두를 넘나들면서 “모든 책을 품고 나누고 이야기하는 작은책숲”으로 바꾸어야 맞지 않을까? 이름난 책과 글꾼을 모시는 〈평산책방〉이 아닌, 작은마을과 시골에서 땀흘리는 작은글꾼을 모셔서 작은노래를 나누는 길을 가야 하지 않을까?
총독부는 1914년부터 매년 전국적으로 ‘국어연습회國語演習會’를 개최, 일어능력 우수자를 표창하고 상금을 지급하여 일어학습의 열기를 고조시켰다. 그 결과 1920년에는 일어를 듣고 말할 줄 아는 타이완인의 수가 1915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하지만 그 비율은 전체인구의 3%에도 미치지 않았다 … 이와 반대로 영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대개 사회와 권력의 변방에서 전근대적인 직업이나 노동에 종사한다. 이러한 차별화와 계층화는 식민지시대보다 한층 첨예해졌다 … 지배어 일본어를 통해 식민지 지배자의 가치관과 세계관·문화적 규범들을 받아들이고 지배자의 사유체계를 자기화하며, 토착적인 문화와 정체성을 ‘문명화’, ‘근대화’의 이름으로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의식의 식민화’를 경험한 사람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식민지적 잔재가 잠재하고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식민주의와 언어》 20, 113, 178쪽
시골사람인 나는 오늘 큰아이하고 첫여름 큰쓸이(대청소)를 했다. 실컷 큰쓸이를 하고 나니 작은아이가 등허리를 토닥인다. 두 아이 손길을 즐겁게 받고서 일찌감치 자리에 누워 꿈길로 갔다. 아이들이 늦도록 놀면서 오순도순 주고받는 말소리를 듣고서 문득 잠을 깼다. 마당에 나오니 구름밭 사이로 별 한 톨이 보인다. 너덧새 만에 별을 본다. 너덧새에 걸쳐 비를 뿌리거나 구름을 덮은 첫여름 끝자락이다. 전라남도 바닷가를 낀 고흥이라는 시골에서는 후박나무가 잘 자란다. ‘후박엿’을 고는 후박나무이다. ‘호박엿’으로 잘못 여기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드센 바닷바람을 가리면서 겨우내 포근하게 감싸고 여름에 시원하게 품는 아름드리가 후박나무이다. 후박나무 밑으로 깃들면 ‘서울에서 불볕더위’라 시름시름 앓아도 ‘나무밑’이 얼마나 싱그럽고 시원한지 모른다. 날마다 숱한 새가 후박알을 쪼려고 찾아온다. 늦새벽인 05시부터 작은새가 찾아들고 저녁인 18시 무렵부터 다들 집으로 돌아가는데, 어림잡아도 서른 갈래가 넘는 새가 나무열매를 누리려고 찾아든다.
수산물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수산물을, 철을 관리하는 자는 철을 훔쳐 장마당에 나가 팔아서 쌀을 사 먹는데 불쌍한 건 일반 백성들이다. 굶어죽어도 자신을 원망하고, 말라죽어도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다. 《사람답게 살고 싶소》 124쪽
이름을 날리는 사람이 있으면, 이름을 흙에 묻고서 조용히 시골살이를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세모꼴을 보면 알 테지. 먼저 밑바탕을 이루는 흙사람이 든든히 받쳐야, 흙사람이 일군 낟알과 푸새와 열매와 과일을 받아들여서 누리는 다른 일꾼이 설 수 있다. ‘나라지기’는 꼭두에 오르는 일꾼이라기보다는 흙지기와 나란히 가장 밑바닥에서 조용조용 일하며 땀흘리는 자리여야 어울린다. 옛 나라지기인 분이라면 ‘서울 아랫내 큰잔치’가 아닌 ‘서울 기스락 제대로책잔치’ 같은 데에 더 조촐하게 자리를 얻어서 음전하게 책지기 노릇을 할 적에 빛난다고 느낀다. 그래, 음전하게 일하면 된다. 일본이 총칼로 이 땅을 억누르던 무렵 의젓하게 붓끝을 쥔 숱한 글바치가 시골 이야기를 쓴 글을 살피면 으레 ‘음전이’가 나온다. 지난날에는 참한 젊은이를 ‘음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음전이’라는 이름은 1970해무렵 언저리까지 제법 쓰였으나, 1980해무렵으로 접어든 뒤로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제는 이런 말씨를 알아듣는 이웃이 없다시피 하다.
“뭘 모른다고 하는 거예요. VIP석에, 그 지위에 올라선 사람들과 당신들 사이에 얼마나 큰 격차가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어요.” … “격차가 있다니 없다니, 당신이 우리의 뭘 안다고 단정짓는 거죠?” 《미와 씨 행세를 합니다 9》 86, 87쪽
서울 아랫내에서 해마다 여는 책잔치는 여러모로 ‘책자랑’ 같다. 이름꾼(유명작가)을 한복판에 놓고서 한바탕 종이팔이(입장권 얼리버드)로 시끄럽다. “너희가 이런 이름꾼이 나오는 자리에 돈 좀 쓰면서 안 찾아오고 배길 수 있어?” 하고 뽐내는 듯하다. 책을 읽으려고 만나고 어울리면서 이야기하는 자리가 아니라, 이름꾼이 위에서 밑으로 내려보내는 말씀을 얌전히 듣거나 받아먹기만 하는 자리로 바뀌었다고 느낀다. 다시 짚어 보자. 나라지기나 나라일꾼은 ‘귀담아듣는’ 노릇이어야 맞다. 나라지기나 나라일꾼은 ‘떠드는’ 몫이 아니다. 들풀소리를 귀담아듣고, 들풀몸짓을 눈여겨보고, 들풀마음을 나눌 때라야 비로소 ‘지기’요 ‘일꾼’이다. 언제쯤 되어야 ‘조용살이’를 작은집에서 지킴이(경호원) 없이 호미와 낫으로 밭일을 하며 구슬땀을 흘리고 새벽이슬을 머금는 작은이웃을 만날 수 있을까? 언제쯤 되어야 ‘조용조용’ 시골살이를 노래하고서 작은책집에서 책을 사읽고 작은책숲을 시골 기스락에 꾸리는 작은사람을 마주할 수 있을까?
ㅍㄹㄴ
《붉은 꽃다발》(타카하시 루미코/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07.4.25.)
#高橋留美子 #高橋留美子傑作集 #赤い花束
《자전거집 타카하시 군 9》(마츠무시 아라레/오경화 옮김, 대원씨아이, 2026.5.31)
#自轉車屋さんの高橋くん #松蟲あられ
《식민주의와 언어》(손준식·이옥순·김권정, 아름나무, 2007.8.20.)
《사람답게 살고 싶소》(좋은벗들 엮음, 정토출판, 1999.12.18.)
《미와 씨 행세를 합니다 9》(아오키 유헤이/원성민 옮김, 대원씨아이, 2026.4.30.)
#ミワさんなりすます #靑木U平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