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새끼가 난다
읍내 버스나루에 제비집 한 채는 살아남는다. 틀림없이 어느 분이 이 하나는 지키자고 말씀했으리라. 몇 해 앞서까지 읍내 버스나루에 제비집이 여섯 채쯤 있었는데 해마다 장대로 또 헐고 자꾸 헐고 끝까지 헐면서 딱 하나만 남았다. 어느덧 마지막 둥지 새끼제비는 무럭무럭 크고, 둥지나기를 한다. 버스나루 둥지서에 새끼제비 세 마리가 서로 몸을 비비면서 째째째째 입을 벌리며 어미제비를 부른 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어미제비도 새끼제비도 하늘을 나느라 바쁘다. 제비는 날갯힘을 두어 달 동안 기르고서 가을께에 먼바다를 가르는 길을 나선다.
안데르센 님이 남긴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미운 새끼오리〉이다. ‘오리새끼’도 ‘아기오리’도 아닌 ‘새끼오리’이다. 요사이는 ‘새끼새’나 ‘새끼토끼’ 같은 말씨가 사라진다. ‘새끼’는 ‘삿기’였고, 새로 태어난, ‘삼’을 품고서 나온 숨결을 가리킨다.
모시옷도 삼베옷도 자취를 거의 감추면서, 모시와 삼을 기르는 사람도 거의 사라지면서, ‘모시’하고 ‘삼’이라는 풀이름이 어디 있느냐고 따지는 사람까지 잔뜩 늘었다. 그렇지만 예부터 모시풀에서 모시실을 얻고, 삼풀에서 삼실을 얻었다. 삶고 삼으면서 새롭게 잇는 줄인 ‘새끼줄’이다. ‘삼’에서 ‘삼다’라는 낱말이 태어났고, ‘삼·삼다’라는 우리말은 살리는 길을 나타내기도 한다. 곰곰이 보면 ‘개(가이)’도 제빛을 빼앗기다시피 잃은 낱말이라고 할 수 있다. ‘개·개다’가 어떻게 얽히는 낱말인지 까맣게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나라에서는 엉뚱한 곳에서만 한나래(한류·K coulture)를 읊는데, 삶을 담는 말하고는 너무 멀다. 우리 스스로 우리말을 모르면서 온통 느낌(감정)을 쏟아내는 새된 소리로 기우는구나 싶다.
아침에 빗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별 이야기를 하나 추슬러서 노래(동시)를 썼다. 누구나 별빛을 타면서 이곳에 온 별씨인데, 하루하루 별빛을 잊다가 잃으며 초롱빛이 사그라들지 싶다. 별은 모두 초롱하다. 별씨인 사람도 저마다 초롱하다. 비와 바람을 그리면서 살아가니 언제나 반짝인다. 비도 바람도 등지기에 빛이 바랜다. 해바람과 비바람을 멀리하니 들바람과 숲바람을 모두 잊고, 별바람과 꽃바람을 나란히 잃는다.
읍내길을 천천히 거닐자니 큰제비랑 작은제비가 옆으로 휙휙 스친다. 제비는 한 뼘도 안 될 만한 너비로 살짝 스치고 날며 바람을 일으킨다. 멀리 사라지는 제비 꽁지에 대고서 속삭인다. “너흰 참 날렵하구나!” 저잣마실을 하고서 빈걸상을 찾아서 짐을 내려놓는다. 이따금 해가 들고, 구름빛이 싱그럽다. 오늘길은 오늘을 노래하는 발걸음이다. 하루길은 하루를 바라보는 손짓이다. 바람이 세차다. 16:40 시골버스를 탄다. 마을앞에 내린다. 모내기를 마친 논마다 사름이 곱다. 논에서 물결소리가 퍼진다. 논가에 서서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파르랑파르랑 논물결을 듣는다. 2026.6.23.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