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말꽃삶 21 작은소리
대단하거나 훌륭하다고 여길 말을 하거나 글을 써야 하지 않습니다. 엄청나거나 놀랍구나 싶은 일을 말이나 글로 옮길 때가 있습니다만, 모든 말글은 날마다 마주하는 흔하거나 너르거나 수수하거나 작은 삶을 그때그때 고스란히 담아내게 마련입니다.
작으니까 ‘작다’고 말합니다. 작은데 콩알만 하니 ‘콩알’이란 낱말을 빗대어 “콩알만 하다”고 합니다. 작기는 한데 콩알보다 더 작으니 깨알하고 비슷해서 ‘깨알’을 넣어 ‘깨알같다’고 해요. 둘레에 무엇이 있나 살피면서 ‘모래알·팥알·쌀알·좁쌀알’을 들 수 있습니다.
독서를 통해 살아가는 이유와 미래의 희망 등을 발견해내는 모습
→ 살아가는 뜻과 새로운 꿈을 책에서 찾아내는 모습
→ 살아가는 빛과 앞꿈을 책을 읽으며 알아내는 모습
보기글 하나를 들겠습니다. 우리는 “책을 읽”거나 “글을 읽”습니다. 그러나 아직 ‘책읽기·글읽기’는 국립국어원 낱말책에 올림말로 안 나옵니다. 한자말 ‘독서’만 올림말로 다뤄요. 그래서 국립국어원 맞춤길로는 ‘책 읽기·글 읽기’처럼 띄어야 맞다고 여기는데, 참말로 우리는 ‘책 읽기·글 읽기’처럼 띄어쓰기를 해야 할까요? 아니면 ‘책읽기·글읽기’처럼 붙여쓰기를 하면서 우리 나름대로 널리 쓸 수수한 새말을 여밀 만할까요?
책을 읽기에 “책을 읽는다”입니다만, 우리 스스로 자그마한 삶자리에서 조촐하게 삶말을 쓰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독서를 통해”처럼 말을 하거나 글을 쓰고 맙니다. 허울을 씌우는 셈입니다.
우리말 ‘꿈’은 앞으로 이루고픈 부푼 뜻입니다. 그래서 ‘꿈 = 앞날 뜻’이라서 한자말 ‘희망’뿐 아니라 “미래의 희망” 같은 일본말씨를 단출히 담아낼 수 있어요.
투박하게 ‘꿈’이라고 해도 넉넉하되, 굳이 ‘새꿈·앞꿈’이나 ‘새날꿈·앞날꿈’처럼 쓸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작고 수수하며 흔한 삶자락을 우리 나름대로 저마다 새롭게 바라보면서 조물조물 가꿀 만하거든요.
지방방송
어느 때부터인가 ‘지방방송’이라는 말씨가 번졌습니다. 말 그대로 서울이 아닌 ‘여러 고장(지방)’에 있는 방송국을 가리키는 ‘지방방송’이 있을 텐데, 이보다는 다른 뜻으로 으레 쓰는 듯싶습니다.
지방방송 끄고 모두 주목해라 → 잔말 말고 모두 들어라
지방방송은 자제해 주기를 부탁합니다 → 딴소리는 그쳐 주기를 바랍니다
그쪽 지방방송이 시끄럽구나 → 그쪽이 시끄럽구나
이런 보기글처럼 쓰는 ‘지방방송’은 낱말책 올림말로 찾아볼 수 있어요.
[국립국어원 낱말책]
지방방송(地方放送) : 주변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를 속되게 이르는 말
지역방송 : x
‘지방방송’ 뜻풀이를 보니, 시끄러운 소리를 얕잡는 낱말로 풀이합니다만, 이런 풀이만 실어도 알맞을까요? 아무래도 서울만 헤아리면서 쓰는 얄궂은 말씨로구나 싶은 ‘지방방송’입니다. 지역(지방)에 차린 방송국을 가리킬 적에 ‘지방방송·지역방송’이라고 할 텐데, 나라 곳곳 여러 고장에 있는 방송국 사람들은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를 펴는 셈일까 아리송합니다.
자칫 이웃을 따돌릴 수 있는 뜻풀이는 솎아내야지 싶습니다. 뜻풀이를 꼭 달아야 한다면, 이런 쓰임새는 따돌림말이기 일쑤이니 고쳐쓸 새말을 알려주어야겠지요.
시끄러운 소리는 ‘잔소리·잔말·잔얘기’나 ‘자잘소리·자잘말·자잘하다’로 고쳐쓰도록 이끌면 됩니다. ‘딴소리·딴말·딴얘기’나 ‘딴청·딴짓·딴전’이나 ‘시끄럽다·어수선하다·어지럽다·왁자하다’로 고쳐써도 어울립니다.
더 헤아려 보면, 지역방송이란 낱말을 손질할 수 있어요. ‘마을새뜸·마을소리·고을새뜸·고을소리’나 ‘작은새뜸·작은소리·작은목소리’처럼 새말을 여밀 수 있습니다.
시끄러! 지방방송 끄지 못해!
→ 시끄러! 입다물지 못해!
→ 시끄러! 조용히 못해!
→ 시끄러! 딴청 그만해!
→ 시끄러! 딴소리 그쳐!
서울에서는 ‘서울소리’를 내면 됩니다. 시골에서는 ‘시골소리’를 내면 되어요. 서울이기에 높지 않고, 시골이기에 낮지 않습니다. 방송국이나 신문사 스스로 ‘마을소리·고을소리’처럼 수수한 말씨를 받아들여서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작은소리·시골소리’처럼 투박한 말씨를 즐거이 펼 수 있기를 바라요.
새뜸·소리
전라남도에 〈전남새뜸〉이 있습니다. 도청에서 내는 알림글에 ‘새뜸’이란 이름을 붙여요. 아직 다른 고장이나 일터에서는 ‘새뜸’이란 이름을 안 쓰는 듯싶으나, 우리말로 수수하게 이름을 붙인 지 꽤 됩니다. 한자말 ‘소식지·회지·회보’나 영어 ‘뉴스레터’를 안 쓰더라도 우리말로 붙일 만한 이름이 있습니다.
앞으로 ‘서울새뜸·부산새뜸·인천새뜸’처럼 ‘새뜸’을 살려쓴다면 멋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또는 수수하게 ‘대구소리·대전소리·광주소리’처럼 ‘소리’를 살려쓰는 길이 있습니다.
새로 뜨는 길인 ‘새뜸’이라면, 눈을 뜨는 길을 ‘눈뜸’이라는 말씨에 담을 만하지요. ‘강원눈뜸·목포눈뜸·밀양눈뜸’이라 할 만합니다. 꽃처럼 뜬다는 뜻으로 ‘제주꽃뜸·익산꽃뜸·고양꽃뜸’이라 해도 아름답습니다. 빛나면서 뜬다는 마음을 얹어 ‘춘천빛뜸·원주빛뜸·울산빛뜸’이라 해도 사랑스럽습니다.
이름은 하나여도 되고, 여럿이어도 즐겁습니다. 하나를 누구나 써도 넉넉하고, 여럿을 골고루 써도 알뜰하지요. 그리고 자꾸자꾸 새말을 여미면서 나누고 지핀다면 골골샅샅 푸르게 일렁이는 마음과 말과 살림과 노래가 퍼질 만합니다.
눈뜸·꽃뜸·빛뜸
‘해뜸’이라는 이름도 따사롭습니다. ‘별뜸’이라는 이름도 포근합니다. 가만 보면 오래오래 쓴 ‘으뜸’이라는 우리말이 있습니다. 스스로 낮추면서 이웃을 섬기는 마음을 담아 ‘밑뜸’이라 할 만합니다. 앞장서서 나아가면서 이끌겠노라 다짐하는 ‘앞뜸’에 설 만합니다. 풀꽃나무가 우거진 멧자락처럼 ‘멧뜸’을 할 수 있어요. 봄빛을 물씬 얹는 ‘봄뜸’으로 푸릇푸릇할 수 있을 테고요.
사근사근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는 ‘벗뜸’을 그려 봅니다. 오늘 하루를 새삼스레 걸어가는 ‘길뜸’을 헤아립니다. 높이높이 흐르는 구름을 담는 숨결로 ‘높뜸’을 바랍니다. 머잖아 환하게 피어날, 또는 곧게 피어날 ‘곧뜸’을 바라봅니다.
작게 내딛는 걸음걸이로 사뿐사뿐 떠오릅니다. 작게 주고받는 말 한 마디로 살몃살몃 떠오르고요. 손을 맞잡는 마음이라면 잔잔히 흐르는 이 바람에 자분자분 찬찬히 이야기뜸을 얹을 수 있어요.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