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들고다니는



  읍내 나래터로 가서 부칠 책을 한 자락 챙긴다. 오늘은 큰아이랑 서로 짐꾼으로서 저잣마실을 가기에 ‘걷는읽기’를 할 책은 안 챙긴다. 가볍게 짊어지고서 나선다. 시골버스는 오늘 따라 손님이 우리 둘. 바람이(에어컨)를 안 켜셨다. 고맙게 미닫이를 연다. 들바람을 쐬며 20분 동안 15킬로미터를 아예 아무 데서도 안 서며 달린다. 큰아이도 아버지마냥 시골버스에서 글쓰기를 해보려 했으나 너무 흔들리고 멀미가 나서 못 하겠단다. 나는 시골버스에서 글을 쓰고, 큰아이는 노래를 듣는다. 


  읍내에서 천천히 걸으며 볼일을 마친다. 우리는 제비를 바라보고 들여다본다. 걷는 내내 여러 이야기를 한다. 이윽고 집으로 돌아갈 시골버스를 타러 버스나루까지 온다. 낯을 씻는다. 종이를 꺼내어 글을 더 쓴다. 바람소리를 듣는다. 여름볕이 반갑다. 땀방울에는 여름바람이 감돈다. 하루는 늘 새롭고, 우리가 나누는 말도 새롭다. 쉬운말 한 마디에 풀내음이 서리고, 살림말 두 마디에 꽃내음이 흐른다.


  문득 큰아이가 부른다. 버스나루에 들어온 물잠자리가 있단다. 나갈 곳을 모르는구나. “얘야, 두렵니? 그저 기다려 봐. 길을 틀게.” 두 손가락을 뒤쪽으로 돌려서 물잠자리 날개를 슥 쥔다. 손가락 앞쪽으로 날개를 쥐면, 우리 손가락·손바닥에서 나오는 뜨끈한 기운 탓에 잠자리가 고달파한다. 손가락을 뒤쪽으로 돌려서 살며시 쥐면 날개를 안 다칠 수 있다.


  미닫이 밖으로 물잠자리를 살며시 놓는다. 자, 이 앞 물가로 날아가렴. 넌 물가가 놀이터인걸. 물잠자리 날개를 오랜만에 쥐어 보았다. 눈으로 보기에도, 손끝으로 만져 보기에도, 물잠자리 날개는 누에천(비단) 같다. 대단히 곱다. 검파란 결에 검푸르게 반짝인다. 잠자리도 날고, 물잠자리도 나는 첫여름이다. 오늘은 읍내 냇가에서 물총새 두 마리가 제자리날갯짓을 한참 하는 모습도 보았다. 처마밑 작은둥지에 다섯 마리 새끼 제비가 올망졸망인 모습도 보았다. 우리랑 함께사는 숱한 이웃을 하나씩 헤아리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2026.6.15.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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