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컵라면 (+ 그들)



  처음 ‘모금국수(컵라면)’가 나오던 때를 떠올려 본다. 그무렵 엄마들은 모금국수가 영 못마땅했다. 쓰레기가 많고, 비싸고, 무엇보다 맛없다고 여겼다. 그렇지만 우리 어머니나 이웃 아주머니는 “새로 나온 살림이나 먹을거리”가 있으면 돈을 모아서 꼭 장만해 보셨고, 맛을 보았고, 한참 수다를 떨면서 이러니저러니 생각을 나누셨다.


  “뜨거운 물만 있으면 되니 좋잖아.” “뜨거운 물이 어디 있어? 커피포트를 들고 다니게? 길에서 전기를 꽂을 수 있어?” “하기는, 컵라면을 먹으려면 뜨거운 물은 집에 있으니까 밖에서 먹을 수도 없네.” 우리 어머니와 마을 아주머니가 처음 모금국수를 사서 먹어 보시면서 한참 주고받은 말이다. 마흔 해가 넘었어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어느 날 동무하고 모금국수를 먹은 적 있다. 어느 동무는 “딱 3분만” 뜨거운 물인 채 놓고서 바로 따서 먹는다. 어느 동무는 “7∼8분을 기다려서” 먹는다. 나는 둘 사이에서 지켜보다가 “3분째에 한입” 먹어 보고서 덮은 뒤, “7∼8분 즈음 되고서 마저 먹”었다. 딱 3분만 뜨거운 물에 놓고서 먹은 동무는 “야, 3분만 있으면 된다잖아? 그러면 3분만 있다가 먹어야지. 아직 덜 익은 듯해도 덜 익은 맛도 있어!” 하더라. 한참 느긋이 기다린 동무는 “3분만으로는 턱도 없어. 맛도 없어. 제대로 익은 다음에 먹어야지.” 똑같은 모금국수이지만, 여러 동무는 저마다 다르게 먹었다. 나는 여러 동무가 어떤 마음과 눈길로 마주보고서 품는지 지켜보면서 ‘그렇구나. 그러면 난 어떤 길을 갈까?’ 하고 속으로 한참 곱씹었다. 나는 ‘아무리 그래도 모금국수는 너무 맛없어. 솥에 끓여먹는 쪽이 가장 나아.’ 하고 속으로 되뇌었다.


  그림(유튜브·쇼츠)에 사로잡혀서 멍하니 쳐다보노라면 한나절쯤 휙 지나간다는 분이 참 많다. 그림에 사로잡히면 멍하니 “남들 놀음놀이”를 그대로 따라간다. 그들은 그들대로 ‘그들멋’일 뿐인데, 우리는 ‘우리멋·나멋·네멋’을 감쪽같이 잊고 잃는다. 우리가 ‘우리멋·나멋·네멋’을 잊고 잃으면서 ‘그들멋’에 사로잡히기에, 그들은 떼돈을 벌면서 탱자탱자 하느작거린다. 잘난책(베스트셀러)도 똑같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읽눈(문해력·독해력·판단력·해독력)을 틔우지 않고서 스스로 갇히는구나 싶다.


  그들은 그저 그들이다. 그림(유튜브·쇼츠)은 그냥 그림이다. 어느 스위스 아저씨가 쓴 글에 《책상은 책상이다》가 있다. 책상은 책상이고, 그림은 그림이고,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다. 겉이름이라는 허울만 바꾼들 알맹이가 안 바뀐다. 우리가 아무리 온갖 그림이나 책을 잔뜩 쳐다보거나 읽는다 한들, 우리 ‘읽눈’을 가꾸거나 틔우거나 북돋우지 않는다. 우리는 이웃이 지은 그림과 책을 기꺼이 읽을 뿐 아니라, 스스로 그림을 짓고 책을 쓸 노릇이다. 이웃그림과 이웃책 곁에 ‘우리그림’과 ‘우리책’을 나란히 놓을 적에 읽눈이 자라고 싹눈을 틔우고 씨눈이 깨어나고 삶눈과 살림눈과 사랑눈이 피어난다. 2026.1.28.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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