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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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6.5.26.

다듬읽기 290


《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자이언트북스

 2021.8.18.



  일자리만으로 본다면, 시골일자리는 멧더미처럼 쌓였다. 그러나 오늘날 시골일자리는 거의 이웃일꾼(이주노동자)이 맡는다. 내가 어린배움터를 다니던 1980해무렵부터 오늘날 2020해무렵까지 마흔 해를 돌아보고, 또 1940해무렵부터 1980해무렵을 짚어도, 배움터에서 시골일자리를 알리거나 북돋우지 않는다. 예나 이제나 언제나 누구나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얼뜬 말만 일삼는다.


  사람은 서울로 보내야 할 까닭이 없다. 사람은 나고자란 터전을 사랑하며 살림하는 사이로 설 줄 알 노릇이다. 서울내기라면 서울을 푸른고을로 일구는 길을 살피면 된다. 시골내기라면 시골을 푸른숲으로 돌보는 길을 헤아리면 된다. 이따금 서울내기가 시골로 깃들 수 있고, 가끔 시골내기가 서울에 눌러앉을 수 있다.


  곰곰이 보면, 나라지기도 벼슬아치도 시골을 싫어한다. 시골을 안 싫어한다면, 시골이 이토록 망가질 때까지 팽개치지 않겠지. 시골이 싫지 않다면 시골에 으리으리 큰집이 아니라 조촐히 오두막을 짓고서 작은살림을 지을 테지. 그저 시골이 싫기에 시골을 안 쳐다본다. 그냥 서울을 좋아하기에 서울만 바라본다.


  이러다 보니, 서울내기는 서울이 좋으면서도 으레 지겹고 따분하다. 지겹고 따분한 서울에서 숨을 돌리려고 날개를 타고서 먼나라로 놀러간다. 다른 나라 다른 서울을 맛보고 싶은 서울내기이다.


  《지구 끝의 온실》을 읽었다. 오로지 서울바라기로 살아온 글님 마음결을 또렷이 느낄 만하다. 시골을 쳐다보지 않기에 “서울나라(도시문명사회)가 망가지고 무너져도, 똑같이 서울을 다른 곳에 억지로 만들어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줄거리”를 짤 수밖에 없다. 서울 탓에 푸른별이 망가져서 먼지보라가 휘날린다는데, 이런 때마저도 ‘서울부스러기’를 뒤져서 살림살이를 챙긴다고 하니, 딱하고 안타깝다.


  시골을 안 쳐다보느라 논밭살림을 다 잊어서 망가진 서울인데, 뭘 얻어서 뭘 먹을까? 먹고사는 일뿐 아니라, 똥오줌은 어찌한다는 소리인가. 구정물은 어찌하며, 마실물은 얻을 수 있는가?


  아무리 서울이 밤을 잊고서 번쩍거리더라도, 서울을 둘러싸고서 들숲메바다가 있기에, 서울나라가 버틴다. 서울도 부산도 큰고장이되, 서울은 다른 큰고장에 둘러싸인 잿더미이고, 부산은 바다를 넓게 끼면서, 멧숲을 퍽 깊게 품는다. 여러모로 보면, 부산이 서울보다 훨씬 살 만하고, 사람빛을 건사할 만한 고장인데, 이런 부산조차 싫어서 서울로 휙휙 떠나서 돈과 이름과 힘을 거머쥐려는 사람이 넘친다.


  푸른별이 망가진 판에 이르러도 ‘포근집(온실)’을 찾는 줄거리에는 아무 앞길도 앞빛도 앞날도 없다. 서울내기 스스로 온나라와 온누리를 망가뜨렸으면, 이제는 잿더미를 그만 놓고서 호미와 낫과 쟁기를 쥘 노릇이다. 이제는 맨발과 맨손과 맨몸으로 흙을 만지고 들을 살피고 숲을 노래하고 멧바람을 쐬고 바다랑 하나인 살림을 지을 노릇이다.


  서울에 갇혔으면서 갇힌 줄 모르기에 ‘오늘꿈’이 없이 ‘살아남기’에 매달린다. 살아남으려고 하니까 ‘겨루고 다투고 싸운다(전쟁)’. 늘 싸움박질을 하니 이웃과 동무를 스스로 버릴 뿐 아니라, 참나(참다운 나)를 들여다볼 짬마저 없다. 오늘까지 오늘꿈을 못 그렸어도, 바로 오늘부터 오늘길을 다스리면서 눈을 뜨려고 마음을 기울여야지 싶다. ‘서울’에도 ‘다른 서울’에서 앞날과 씨앗이란 없다. 덩치를 줄이고, 더께를 벗어야 한다.


  들이 눈부신 줄 알아보는 눈을 뜰 일이다. 숲이 밝은 줄 알아채는 눈썰미를 기를 노릇이다. 해가 환하게 비추기에 서로 즐겁게 살아가는 줄 알아내야지 싶다. 모든 책도 모든 살림도 모든 말도 모든 꿈도 모든 사람도 들숲메바다에서 태어난다.


  ‘별끝(지구 끝)’으로 달아난들 살아남지 못 하나. 빽빽하고 뿌옇고 시끄러운 모든 쇳덩이와 잿덩이를 걷어내면서 흙으로 돌보는 길을 열 때라야 비로소 아름답게 어깨동무한다. 새를 내쫓고 개구리를 밀치고 풀벌레를 짓밟는 서울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내쫓고 밀치고 짓밟게 마련이다.


ㅍㄹㄴ


《지구 끝의 온실》(김초엽, 자이언트북스, 2021)


흙이 말라 있어

→ 흙이 말랐어

→ 흙이 푸석해

→ 흙이 부석해

11쪽


조심 좀 해. 내성이 널 모든 더러운 것들로부터 지켜주진 않아

→ 좀 살펴. 넌 모든 더럼먼지를 견딜 수 없어

→ 좀 살펴봐. 넌 모든 더럼치를 버틸 수 없어

→ 좀 삼가. 넌 모든 더럼티를 못 끌어안아

14쪽


안개가 숲을 잠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라 역시 안개의 존재를 깨달았는지 불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 안개가 숲을 덮는다. 아마라도 안개를 느꼈는지 걱정스레 둘러본다

→ 안개가 짙다. 아마라도 안개를 느끼며 근심스레 둘레를 본다

15쪽


산딸기 때문에 한바탕 소란을 겪었다

→ 멧딸기를 놓고서 한바탕 시끄러웠다

→ 멧딸기를 먹다가 한바탕 시끌거렸다

25쪽


산딸기가 원래 떪은맛이 나나?

→ 멧딸기가 워낙 떫은맛인가?

→ 멧딸기가 이렇게 떫나?

26쪽


대단한 건 없었어요.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것과 똑같아요

→ 대단하지 않아요. 밑터하고 똑같아요

→ 대단찮아요. 바탕터하고 똑같아요

43쪽


무성한 잡초들도 지금은 그림자로만 존재했다. 푸른빛의 먼지들만이 느린 바람을 타고 흩날리고 있었다

→ 우거진 풀도 이제는 그림자 같다. 푸른먼지만 바람을 타고서 천천히 흩날린다

→ 풀이 우거져도 이젠 그림자 같다. 푸른먼지만 바람을 따라서 가만히 흩날린다

67쪽


이희수가 흔쾌히 수연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 이희수는 기꺼이 수연이 말을 받아들인다

→ 이희수는 수연이를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 이희수는 수연이를 덥석 받아들인다

72쪽


아무 말 없이 가버린 것이 무척 서운했다

→ 아무 말 없이 가버려서 무척 서운하다

→ 말도 없이 가서 무척 서운하다

81쪽


고립된 섬에서 자연적인 조건으로 일종의 돔 역할을 하는 기류가 형성되어

→ 외딴섬에서 저절로 둥근지붕 노릇을 하는 기운이 일어나

→ 섬에서 스스로 동글지붕 구실을 하는 바람이 생겨서

94쪽


그 식물들이 이 마을을 먹여살린다는 거야?

→ 그런 풀이 이 마을을 먹여살린다고?

→ 이 마을은 그런 풀로 먹고산다고?

150쪽


마을 사람들은 모든 일상적인 작업을 중단하고 봉쇄를 준비했다

→ 마을사람은 모든 일을 멈추고서 닫아걸려고 한다

→ 마을사람은 모든 일을 그치고서 막아내려고 한다

204쪽


그게 바로 내가 아직도 풀지 못한 미스터리야

→ 내가 아직도 풀지 못한 일이야

→ 난 아직도 모르겠어

→ 난 여태 모르겠어

224쪽


죽음의 먼지가 세계를 뒤덮고 있었다. 물자를 구하기 위해 인근 폐허에 다녀온 사람들은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구역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 죽음먼지가 온누리를 뒤덮는다. 쓸거리를 찾으려고 가까운 벌판을 다녀온 사람들은 이제 살아남을 수 있는 땅이 확 줄어든다고 말한다

→ 죽음먼지가 이 별을 뒤덮는다. 살림거리를 얻으려고 둘레 벌판을 다녀온 사람들은 앞으로 살아갈 만한 곳이 확확 줄어든다고 말한다

230쪽


혹은 관측으로부터 데이터를 축적하고, 정확한 분석을 거쳐 귀납적으로 하나의 이론을 이끌어낸다

→ 또는 바라보며 바탕틀을 다지고, 꼼꼼히 짚고 헤아려 얼거리를 이끌어낸다

→ 아니면 살펴보며 밑틀을 쌓고, 하나하나 파고 살펴서 틀거리를 이끌어낸다

257쪽


더스트 폭풍이 지나가고 공동체의 사람들이 절반 넘게 죽자, 남은 이들의 의견이 갈리는 것을 지수는 보았다

→ 지수는 보았다. 먼지보라가 지나가고 마을사람이 토막날 만큼 죽자, 살아남은 사람이 둘로 갈렸다

→ 지수는 보았다. 먼지회오리가 지나가고 마을사람이 엄청나게 죽자, 살아남은 사람이 다들 엇갈렸다

288쪽


마을의 규모가 어느 정도 커진 이후 지수는 이 숲을 가짜 더스트로 감추기로 결정했다

→ 마을이 제법 자리잡을 즈음, 지수는 이 숲을 먼지로 속여 감추기로 한다

→ 마을에 집이 꽤 늘어나자, 지수는 이 숲을 먼지시늉으로 감추기로 한다

300쪽


지금 어떻게 그것을 입증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 이제 어떻게 이를 밝힐 수 있을까 헤아리다가

→ 오늘 어떻게 이를 보여줄 수 있을까 살피다가

355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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