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노래꽃
시를 씁니다 ― 65. 다읽다
한자말로 ‘완독’을 얘기하는 분이 제법 있습니다만, ‘다읽다(완독)’는 말이 안 될 텐데 하고 여깁니다. 우리는 ‘애벌읽기’를 했다고 여겨야지 싶습니다. 애벌을 읽은 뒤에는 두벌읽기로 나아가고, 석벌읽기에 넉벌읽기로 거듭날 일이지 싶습니다. 둘레를 보면 ‘다읽다’를 밝히는 분은 으레 고작 ‘애벌읽기’를 했을 뿐입니다. 누구를 만날 적에 ‘애벌’로 마주하고서 ‘다알다’라 말할 수 없을 테지요. 올해에 벚꽃을 보았기에 “난 벚꽃을 알아.” 하고 말할 수 없어요. 이듬해에도 보고 그다음해에도 보며, 열 해에 스무 해에 서른 해를 이어도 “난 벚꽃을 알아.” 하고 말할 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늘 “난 벚꽃을 스무 해 보았어.”라든지 “난 벚꽃을 쉰 해 보았어.”라 밝혀야 알맞습니다. 책을 놓고도 같아요. “난 책을 애벌 읽었어.”라 밝혀야 어울려요. ‘다읽다’가 아닌 ‘애벌읽기’라 해야 맞습니다. 차근차근 읽어가면서 차곡차곡 알아가려 하는 삶길이라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다읽다’는 겉훑기나 겉치레로 그친다고 느껴요. 해마다 이 땅을 찾아오는 철새가 해마다 새롭게 노래합니다. 언제나 이 땅에서 깃드는 텃새가 언제나 새삼스레 노래합니다. 모든 풀꽃은 한해살이가 아닌 온해살이라고 느껴요. 겨울에 시들어 죽더라도 씨앗을 남겨서 새로 깨어날 뿐 아니라, 뿌리가 살면 찬찬히 다시 돋게 마련입니다. 이제 ‘다읽다’라는 허울을 내려놓기로 해요. ‘첫걸음’을 뗀 읽기를 이어서 ‘두걸음’과 ‘석걸음’으로 차분히 함께 나아가 봐요.
다읽다
펄럭펄럭 바람이 불면
오늘 흐르는 바람결 읽고
후끈후끈 땡볕 내리면
하루 감도는 여름빛 읽고
제비나비한테는 작은 달걀꽃에
부전나비는 여러 마리 내려앉고
느티나무한테는 좁은 논두렁에
돌나물은 무리지어 줄줄이 자라
뜸북새가 노래하는 철에
뜸북꽃이 곳곳에 오르고
장마가 일찍 걷히더라도
장다리꽃은 언제나 껑충
책을 다 읽었으면 애벌
새로 펼쳐 배우면 두벌
거듭 살펴 익히면 석벌
다 읽으면 늘 처음으로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