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늦가을꽃 (2025.11.1.)
― 부산 〈금목서가〉
느긋이 쉬는 마음으로 누리는 하루는 언제나 넉넉히 피어날 씨앗으로 자란다고 느낍니다. 책을 어떻게 읽느냐 하고 돌아본다면, ‘눈읽기(눈으로 글씨 좇기)’도 있을 테지만, ‘손읽기(손길로 숨결 느끼기)’하고 ‘삶읽기(글에 얹은 이야기에 흐르는 삶을 만나기)’에다가 ‘마음읽기(글로 추스른 삶에 담은 마음을 함께하기)’가 나란할 일이지 싶어요. 줄거리만 짚는다든지, 종이에 찍힌 글씨만 훑을 적에는 아직 ‘읽기’라 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을 얼굴이나 몸매나 겉모습이나 옷차림이나 말매무새로만 따지려 하면 아주 잘못 살피게 마련입니다. 속빛을 헤아려야 읽기요, 마음씨를 느껴야 읽기입니다. 속빛과 마음씨를 맞아들이려면 언제나 느긋해야 하고, 씨앗이 싹터서 자라나는 결을 차분히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새롭게 흐르면서, 새록새록 닿으면서, 즐겁게 새길을 나아갈 책입니다. 문득 눈으로 슥 훑을 적에는 앞으로도 옆으로도 뒤로도 안 갑니다. 눈으로 훑은 글줄을 속에 고스란히 담고서 차곡차곡 새기고 되새기고 곱새기기에 비로소 어느 쪽으로든 기쁘게 나아가는 책입니다.
가을낮빛을 느끼면서 부산 〈금목서가〉로 찾아듭니다. 저잣길을 지나고, 골목집을 스칩니다. 파란하늘을 헤아리면서 책집에 깃듭니다. 다 다른 집이 만나고 어울려서 마을을 이룹니다.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른 일을 품고, 이 사이에 책집이 조촐히 자리를 잡습니다. 다 다른 삶이 흐르는 마을이듯, 다 다른 삶을 담은 책이 나란히 있는 책집입니다. 그저 책등을 나란히 맞대면 될 책입니다.
책낯이란 사람낯과 같습니다. 무슨 책인지 알아보는 겉모습인 책낯과 글쓴이·펴낸곳입니다. 사람을 만날 적에 겉낯이나 옷차림만 쳐다보면 아무 이야기가 없습니다. 책을 쥘 적에 꾸밈새나 글쓴이·펴낸곳을 좇는다면 아무 이야기를 못 누릴 뿐 아니라, 겉으로 내세우는 줄거리에 얽매입니다.
깃빛에 따라서 다 다르게 고운 새입니다. 노랫가락에 따라서 다 다르게 빛나는 새입니다. 갈래를 하나로 묶더라도 다 다른 참새에 다 다른 동박새에 다 다른 까마귀입니다. 다 다른 새를 하나하나 알아차리고 마주하기에 서로 이웃이라고 느끼듯, 다 다른 삶을 다 다른 이야기로 여민 책을 하나하나 알아보면서 읽고 새기기에 스스로 이 삶을 다시금 짚고 살핍니다.
늦봄과 늦가을이 달라요. 늦여름과 늦겨울이 다르고요. ‘늦-’을 붙이는 때는 한철을 마무리하면서 새길로 가는 목입니다. 아침까지 읽은 책을 덮고서 저녁부터 읽을 책을 쥘 적에는 새롭게 배우려는 마음입니다. 작은씨 한 톨을 손에 놓습니다.
ㅍㄹㄴ
《일반언어학 강의》(페르디낭 드 소쉬르/최승언 옮김, 민음사, 1990.8.1.첫/1992.9.25.3벌)
- 부산도서
《시의 숲에서 삶을 찾다》(서정홍·청년농부와 이웃들, 단비, 2018.4.15.)
《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김슬기, 웨일북, 2018.6.15.첫/2019.8.30.6벌)
《사랑은 하트 모양이 아니야》(김효인, 안전가옥, 2025.2.14.첫/2025.3.7.2벌)
《계간 현대시사상 19호 1994·여름》(장성규·이승훈 엮음, 고려원, 1994.6.1.)
《붕어빵은 왜 사왔니?》(천정순, 형제, 1996.5.1.첫/1996.5.17.5벌)
《고부일기》(김민희, 형제, 1995.5.31.첫/1996.5.15.8벌)
《채지충고전만화시리즈 8 열자列子》(채지충/편집부 옮김, 호산문화, 1993.8.21.)
《채지충고전만화시리즈 9 대학大學》(채지충/편집부 옮김, 호산문화, 1992.12.25.)
《채지충고전만화시리즈 10 중용中庸》(채지충/편집부 옮김, 호산문화, 1993.8.30.)
《채지충고전만화시리즈 13 선설禪說》(채지충/편집부 옮김, 호산문화, 1993.4.23.)
《바람의 향기》(이명해, 해피북미디어, 2014.9.12.첫/2019.1.18.고침)
《시, 실컷들 사랑하라》(이생진, 책과나무, 202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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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우당서점 지도센타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윤재근, 둥지, 1990.7.10.첫/1990.9.28.6벌)
《눈썹에 종을 매단 그대는 누구인가》(윤재근, 둥지, 1991.3.29.첫/1991.5.6.4벌)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 끝은 왜 보고 있나》(김정휴 엮음, 대원정사, 1990.9.2.첫/1990.11.26.6벌)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