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세 시 무렵,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 셋이 쪼르르 놀러오곤 합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방을 내려놓은 다음 찾아옵니다. 한 번 놀러오면 저녁 여섯 시까지 보드게임을 하거나 저희끼리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밖에 나가 돈벌이를 하고, 집에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만 계시다고 합니다. 보름쯤 앞서, 옆지기가 이 아이들한테 “너희들 고무줄놀이 아니?” 하고 물었습니다. 아이들은 “몰라요.” 하다가는, “(만화) 《검정고무신》에서 봤어요.” 하면서 옛날 옛적 놀이로 여깁니다. 그러다가는 “전통놀이 아니에요?” 하고 말합니다. 옆지기가 아이 둘을 세워 놓고 다리에 고무줄을 걸고는, 넘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옆지기는 스물여덟. 어릴 적에 고무줄놀이를 퍽 즐겼다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요즘 아이들은 골목길에서 고무줄놀이를 하지 않습니다. 노는 모습조차 거의 못 봅니다. 너덧 해 앞서도, 예닐곱 해 앞서도 고무줄놀이 하는 아이들을 못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집에서 인터넷게임을 하느라 그런다는 소리도 있지만,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인터넷게임조차 할 겨를이 없다고, 학원에 가랴, 책 읽고 느낌글 쓰랴, 글짓기 숙제 하랴, 한문 숙제와 영어 숙제 하랴, 체험학습 다니랴, 몸뚱이가 열 몇 개라도 힘들 만큼 바쁘게 돌아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서울 나들이를 하며 홍제동에 있는 어느 초등학교 옆을 지나가는데, 손바닥 만한 운동장에 아이들이 공차기를 하거나 줄넘기를 할 뿐, 다른 놀이 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없었습니다. 그 흔한 비사치기도, 제기차기도, 구슬치기도, 땅뺏기놀이도, 말뚝박기도, 얼음땡도, 술래잡기도, 오징어도, 오재미도, 자치기도, …… 아이들은 하지 않습니다. 아니, 할 수 없겠지요. 어느 때부터인가 갑작스럽게 언니 오빠 누나 형한테 물려받는 ‘동네 골목길 놀이’ 또는 ‘마을 고샅길 놀이’가 자취를 감추었으니까요. 놀이가 자취를 감춘 골목길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 있는 덩치 큰 자가용이 가득합니다. 서 있는 차가 없을라치면 배달오토바이가 씽씽 내달리고 크고작은 자가용이 쉴 틈 없이 오갑니다. 학원버스는 아이들을 집과 학원과 학교 사이를 이어줍니다. 아이들은 땅을 두 발로 디딜 겨를이 없습니다. 저나 또래 동무들은 국민학교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한글을 보았고, 숫자를 셌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알파벳을 보았고, 띄엄띄엄 읽었습니다. 그래도 중학교 3학년 때에는 영어 동화책을 읽었고 고등학생 때에는 영어 소설을 읽었습니다.

 웬만하게만 만들어 내놓으면, 어린이책은 손해를 보지 않고 잘 팔립니다. 나라밖 명작동화만 잔뜩 옮겨내던 흐름이, 이제는 생활동화며 우리 문화와 철학과 사회와 역사도 다루는 테두리며 넓어집니다. 이 나라 아이들 마음과 삶을 헤아린다는 ‘참 좋아 보이는’ 어린이책은 앞으로도 꾸준히 나오겠지요. 아니, 많이 나오겠지요. 그런데 어쩌지요. 이 어린이책을 볼 아이들한테는 자기 삶이 없는데, 자기 두 발로 디딜 땅이 없는데. 더욱이, 어린이에서 젊은이로 넘어가는 때에 읽을 책도 없는데. (4340.11.22.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