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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요괴
정진호 지음 / 반달(킨더랜드) / 2023년 2월
평점 :
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6.2.7.
그림책시렁 1735
《여우 요괴》
정진호
반달
2023.2.1.
우리 옛이야기에 〈여우 누이〉가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요괴·괴물’ 같은 낱말을 함부로 쓰는데, 우리말이 아닌 일본말입니다. 《여우 요괴》는 〈여우 누이〉를 아주 딴판으로 바꾼 붓끝입니다. 그린이와 펴냄터는 ‘낯설게 하기’라는 이름을 내세웁니다만, 왜 낯설어야 하지요? ‘판에 박힌 먹그림’을 버리고서 ‘현대적인 그래픽 이미지’를 입혀서 ‘판소리’를 떠올린다고 밝히는데, 옛이야기를 뒤틀어야 ‘새롭다(현대적)’고 할 만한지요? 우리는 ‘도깨비·톳제비’ 같은 이름을 쓸 뿐입니다. 예부터 “여우 누이”라고 할 뿐, “여우 도깨비”라고도 하지 않으면서 품으려는 마음을 이야기에 녹여냈습니다. 여우에 늑대에 범에 삵에 이리에 족제비가 작은짐승을 사냥하기에 ‘나쁜놈’이지 않습니다. 고양이가 쥐나 새를 사냥하기에 나쁜놈이지 않아요. 쥐가 낟알을 쏠기에 나쁜놈일 수 없습니다. 멧돼지나 고라니나 사슴이나 두더지가 남새밭에 들어오기에 나쁜놈이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새가 낟알이나 콩알을 쪼기에 나쁜놈이란 손가락질을 받을 턱이 없습니다. 사흘마다 사냥을 하면 열 해에 이르면 ‘즈믄목숨’을 맞아들입니다. 여우이건 곰이건 숲살이를 하면 저절로 ‘즈믄길’을 이룹니다.
우리 옛이야기 〈여우 누이〉는 그림책 《여우 요괴》처럼 시뻘겋게 피를 척척 바르면서 노려보거나 두렴씨앗을 심지 않습니다. ‘사람’이 되는 길은, 곰이 쑥마늘을 온날(100일)에 걸쳐서 차분히 고요한 굴에서 맞아들이며 한마음으로 비나리를 할 적에 이룹니다. 쑥은 들숲살림을 품으라는 뜻이고, 마늘은 밭에 심고 돌보는 집살림을 품으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즈믄목숨’이란 무슨 뜻일까요? 이 뜻부터 스스로 풀고 나서야 붓을 쥐어야 하지 않을까요? ‘낯설게 하기’를 앞세워 겉멋(현대적 그래픽 이미지)에 사로잡힐 노릇이 아닌, ‘옛이야기에 깃든 살림길과 옛사람이 물려주는 수수께끼에 흐르는 사랑길’부터 차분히 풀어낼 일입니다. 정진호 씨는 얼핏 짝맺기(혼인)로 마무르려고 하지만, 짝을 맺기에 ‘사랑’을 이루지는 않습니다. 그냥그냥 한집에서 살기에 사랑일 수 없어요. 〈여우 누이〉를 오늘날을 헤아려 새로 그리고 싶다면, 작은집에서 작은밭을 일구고, 들숲메에서 나물을 캐면서 “자, 나물 즈믄 뿌리를 먹어도 꿈을 이룰 수 있답니다. 우리 함께 나물 즈믄 뿌리와 열매 즈믄 알과 낟알 즈믄 톨을 먹으면서 새롭게 꿈을 이뤄 봅시다.” 하고 그려낼 만합니다.
이미 ‘요괴’라고 딱 잘라버리고 갈라버리고 끊어버리는 미움질과 ‘나쁜놈 손가락질’로 핏빛을 바르는 틀부터 버려야 합니다. 여우가 사람몸을 뒤집어쓰면서 사람흉내를 내고 싶은 마음을 녹이려면 “여우 각시”쯤으로 바라보면서 ‘각시’라는 길을 어떻게 이루는지, 어떻게 일구는지, 어떻게 잇는지, 차분히 여미어야 할 테지요. 일부러 오싹오싹 붓장난을 안 하기를 빕니다. 이 푸른별에서 함께 바람을 마시고, 같이 바다를 안고서, 나란히 들숲메를 달리면서 노래하고 울고 웃고 춤추는 보금자리를 그리려 할 적에, 모든 온길과 즈믄길을 느긋느긋 나긋나긋 지피게 마련입니다. 아직 남들이 해보지 않은 붓놀림을 자랑처럼 선보여야 할 그림책이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어질게 어른으로서 이야기씨앗 한 톨을 아이한테 아름드리나무로 들려주고 물려주면서 어깨동무를 할 그림책이어야 즐겁지 않을까요?
ㅍㄹㄴ
이 글은
어느 이웃님이
이 그림책을 도무지 아이한테 못 읽히겠다고,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느냐고 여쭈셔서
어느 이웃님과 그 집 아이한테 들려주려고 쓴다.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