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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기억력 ㅣ 산지니시인선 14
윤현주 지음 / 산지니 / 2017년 7월
평점 :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11.26.
노래책시렁 522
《맨발의 기억력》
윤현주
산지니
2017.7.28.
저희는 설과 한가위에 아무 데나 안 가며 시골집에서 조용히 지내기를 한 지 꽤 되어요. 할머니 할아버지야 서운하시겠지만, 얼굴을 보고 싶다면 어느 때이건 느긋할 때 보면 됩니다. 마음을 다독이는 말로 한집안을 가꾸려는 길에는 “마음을 함께 하는 배움하루”가 있을 노릇입니다. 낳고 돌보고 함께 지낸 나날이 있기에 한마음이지는 않아요. 이래라저래라 핀잔하거나 가르치려는 말이 아닌, 촛불 한 자루를 사이에 놓고서 응어리를 풀 만한 사이여야 비로소 ‘한집안’이라고 느낍니다. 《맨발의 기억력》을 돌아봅니다. 여러모로 어깨에 힘이 안 빠진 글자락인데, 글은 맨손에 맨발에 맨몸으로 쓸 일입니다. 말부터 오롯이 맨마음에 맨빛으로 펼 일이에요. 한 마디를 꾸미면 두 마디 석 마디를 꾸밉니다. 한 줄에 멋을 담으면 그만 온통 멋내는 말씨로 기울어요. “맨발로 떠올리는” 이야기를 적으면 투박하기에 빛납니다. “맨발로 돌아보는” 하루를 옮기면 수수하기에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시’도 ‘문학’도 ‘창작’도 아닌, 그저 이 삶을 글로 그리면 됩니다. 언제나 오늘 이곳을 글로 노래하면 됩니다. 서로서로 어울리는 마음을 가만히 말하듯 글로 담으면 그만입니다.
ㅍㄹ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어진 골목엔 / 배고픈 개와 고양이들이 / 혈전처럼 돌아다니고 있다 (산복도로 풍경-골목/52쪽)
골다공증 앓는 초가집, 밤은 / 깊어 찬바람 삼투처럼 새어드는데 / 집안의 온기 죄다 그러모은 // 큰방 아랫목 / 쌀밥 한 그릇 냄새가 (아랫목 쌀밥 한 그릇/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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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기억력》(윤현주, 산지니, 2017)
이곳은 열 달 동안 발을 차며 놀았던 자궁처럼 둥글고 캄캄하고 편안해요
→ 이곳은 열 달 동안 발을 차며 놀던 아기집처럼 둥글고 캄캄하고 아늑해요
16
한바탕 잔치 파한 뒤끝이다
→ 한바탕 잔치 뒤끝이다
→ 한바탕 잔치 끝난 뒤이다
24
세풍世風의 향방을 바꿀 수도 있겠구나
→ 가시밭을 바꿀 수도 있구나
→ 된바람을 바꿀 수도 있구나
67
난해했던 아버지라는 암호를 해독하면서 나의 청춘은 조금씩 낡아 갔다
→ 나는 고약하던 아버지라는 수수께끼를 풀며 젊음이 조금씩 낡아갔다
→ 나는 까다롭던 아버지라는 변말을 풀며 젊은날이 조금씩 낡아갔다
124
골다공증 앓는 초가집, 밤은 깊어 찬바람 삼투처럼 새어드는데
→ 느물뼈 앓는 시골집, 밤은 깊어 찬바람 새어드는데
→ 엉성뼈 앓는 풀집, 밤은 깊어 찬바람 스며드는데
128
시골 누옥에 누워 즐겁게 외풍을 맞는다
→ 시골 오막에 누워 즐겁게 바람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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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