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네 이웃이 책을 낼 때



  이웃이 내는 책을 반긴다. 이웃 아닌 이가 내는 책도 반긴다. 그저 모든 책을 반긴다. 우리집 너머로 날아가는 새를 반긴다. 멧숲에 둥지를 짓고서 새끼새를 돌보는 온누리 모든 새를 반긴다. 시골버스를 모는 일꾼을 반긴다. 시외버스를 모는 일꾼을 반긴다. 우리 곁님과 두 아이를 반긴다. 낯모르는 모든 어른을 반기고, 처음 마주하는 모든 아이를 반긴다.


  나는 모든 책을 곁에 두면서 말씨를 묻고 말결을 가꾸고 말꽃을 노래하는 하루를 살아갈 줄 몰랐다. 나는 모든 아이가 스스로 어질게 눈뜨며 의젓이 서려는 길에 동무하는 작은아재로 살림하는 오늘을 일굴 줄 몰랐다. 나는 우리 곁님뿐 아니라 온누리 누구나 저마다 어른인 줄 깨달으며 살가이 암꽃수꽃으로 어울릴 바람마루를 그리며 살아갈 줄 몰랐다. 모두 몰랐고, 몽땅 모르니까 왜 이렇게 모르는 투성이인지 알아보고 싶어서 뚜벅뚜벅 걷는다.


  왼길이 훌륭하지 않고 오른길이 멍청하지 않다. 오른길이 낫지 않고 온길이 머저리이지 않다. 외곬로 싸우니 얼뜨고, 이야기없이 다투니 엉성하고 사랑없이 치고받으니 모자라다. 우리는 왼길이나 오른길이 아닌, 한길과 열길과 온길과 즈믄길과 사람길을 가면 넉넉하고 느긋하다.


  그런 난 어떤 길을 바랐을까? 어릴적에는 가운길을 떠올렸는데, 가운길로는 좀 모자라다고 느꼈다. 꽃길? 푸른길? 숲길? 들길? 멧길? 바닷길? 하늘길? 가만히 보면 가운길은 꽃길도 푸른길도 숲길도 들길도 멧길도 바닷길도 하늘길도 품는다. 이 모든 길은 바로 한 마디 ‘사랑’이 품으면서 아름답다. 그래, 난 오롯이 하나, 사랑이라는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을 바라는구나.


  이 나라에 젊은작가도 늙은작가도 아닌, 여성작가도 남성작가도 아닌, 푸른글님과 작은글님과 노래글님과 들숲글님과 시골글님과 살림글님과 별빛글님과 들꽃글님과 이슬글님이 깨어나기를 빈다. 사랑을 그리고 나너우리를 그린다. 말씨앗을 그린다. 보금자리숲을 그리고 어깨동무를 그리는 글님을 기다린다. 2025.11.24.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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