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11.21.
숨은책 1065
《지용文學讀本》
정지용 글
박문출판사
1948.2.5.첫/1949.3.5.재판
1988년에 “읽기가 풀린 글” 가운데 ‘정지용’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열네 살 푸른씨였어요. “배움책에 가득한 따분하고 틀에 박혀서 삶과 동떨어진 글”만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배워야 하느라 진절머리가 났습니다. 이른바 ‘납북문인’이 남겼다는 글이 여러 펴냄터에서 쏟아지듯 나왔고, 1993년에 처음 치른다는 수능을 앞두고서 “정지용도 수능 언어영역에 문제가 나오리라” 여겼습니다. 이래저래 정지용이며 백석이며 이용악이며 임화이며 김남천이며 외우듯이 읽었습니다. 지긋지긋한 불굿(입시지옥)이 지나간 뒤로는 모든 높녘글붓(월북작가)이 남긴 글은 더 들여다보지 않았어요. 《지용文學讀本》을 2024년 11월에 처음 만났습니다. 닳고 낡아 나달거리는 책을 한참 뒤적이는데, 1948년에 낸 책이면서도 한글이 아닌 일본한자말을 아주 즐겨쓴 대목에 다시 지끈지끈합니다. 문득 알아보니 이이는 ‘오유미 오사무(大弓修)’라는 일본이름이 있습니다. 그렇구나. 일본이 이 나라를 집어삼켜 숱한 사람이 굶주리고 헐벗고 끌려가고 죽는 마당에도 술집에서 꼬장부리는 꼴을 손수 적바림하는 나리였으니, 이이가 쓴 글이 허울스럽고 겉멋에 가득할밖에 없었네 하고 뒤늦게 깨닫습니다.
ㅍㄹㄴ
一一히 가져오라고 해야만 가져온다. 招人鐘으로 재차 불러오니 역시 뻣뻣하다. “느집에 술 있니?” “있지라우.” “술이면 무슨 술이야?” “술이면 술이지 무슨 술이 있는가라우?” “무엇이 어째! 술에도 種類가 있지!” “日本酒면 그만 아닌가라오?” “日本酒에도 몇十種이 있지않으냐!” 正初에 이女子가 건방지다 소리를 들은것이 自取가 아닐수 없다. “麥酒 가져오느라!” “몇병인가라오?” “있는대로 다 가져 와!” 號令이 效果과 있어서 훨석 몸세가 부드러워져 麥酒 세병이 나수어 왔다. 센뻬이를 가져오기에도 溫泉場거리에까지 나갔다 오는 모양이기에 거스름돈을 받지 않았더니 고맙다고 좋아라고 절한다. 눈갓에는 눈물자죽인지도 몰라 젖은대로 있는가 싶다. “성 났나?” “아아니요!” 사투리가 福岡이나 博多近處에서 온 모양인데 몸이 가늘고 얼굴이 파리하여 心性이 꼬장꼬장한 편이겠으나 好感을 주는것이 아니요 옷도 滿洲추위에 빛갈이 맞지않는 봄옷이나 가을옷 같고 듬식 듬식 놓인 불그죽죽한 冬柏꽃 문의가 훨석 쓸쓸하여 보인다. (185∼186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