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숨어서 말할래요?



  숨어서 낄낄대는 이가 수두룩하다. 숨어서 손가락질하고 비웃고 놀리고 깎을 뿐 아니라, 뜬말을 퍼뜨리는 이가 꽤 많다. 그러려니 해야지, 무슨 길이 있는가? 숨어서 뒷말을 일삼는 이들은 언제나 앞에서 히죽히죽하더라. 앞에서는 얌전하거나 반듯한 척하되, 으레 뒤에서 호박씨를 까는데, 이런 ‘앞뒤 어긋난 글짓·말짓·몸짓’은 반드시 그분들 스스로를 갉아먹는 굴레일 뿐이다.


  잘 빚은 글이나 못 빚은 글이란 있을 수 없고, 있을 턱조차 없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글이 있고, 사람들이 안 쳐다보는 글이 있고, 사람들이 미처 몰라보는 글이 있고, 사람들이 홀리는 글이 있다. 이밖에 사람들을 길들이려는 글이 있고, 남을 길들이려다가 그만 스스로 굴레에 갇히는 글이 있다.


  거리끼지 않는다면 안 숨는다. 거리끼니까 숨는다. 참말을 하면 될 텐데, 참말을 못 하겠으니 숨는다. 참말을 하는 사람은 안 숨는다. 다만, 바른소리(내부고발)를 낼 적에는 살며시 숨을 만하다. 우리나라는 담벼락으로 둘러쳤을 뿐 아니라, 끼리끼리 글담·돈담·이름담·끈담을 높이는 수렁인 터라, 일자리를 잃지 않으려고 숨은말을 할 수 있다.


  나는 하늘을 보면서 살아가니까 숨을 일이 없다. 고흥군수가 헛발질을 한다든지, 전남지시와 전남교육감이 멍청짓을 일삼을 적에, 그저 그들이 무슨 헛발질과 멍청짓을 펼치는지 가만히 갈무리하고 남기고서 글 한 자락을 적는다. 나라지기가 속임말을 하든, 벼슬아치가 꾸밈말을 일삼든 마찬가지이다. 그저 그분들 민낯을 차곡차곡 모은다.


  여러모로 보면, 바른소리(내부고발)를 할 적에는 그곳에서 달아나거나 빠져나와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서울에서 살며 서울길(서울시 행정)을 놓고서 쓴소리 단소리 맵소리를 내려고 하면, 서울에서 떠나야 할 수 있다. 그러나 서울에서 ‘서울쓴소리’를 한대서 나가야 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와 달리 전남 고흥이라든지 경남 함안 같은 시골에서 살며 ‘시골쓴소리’를 한 마디라도 조그맣게 내려고 하면 자칫 집안이 거덜나거나 돌벼락을 맞을 수 있다. 우리는 아직 입벙긋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수렁(감옥·독재·부정부패)에 갇힌 셈이다.


  글을 쓰거나 책을 내는 분을 가만히 보면, 스스로 낸 책이 언제나 ‘별꽃 10(또는 5) 가득’ 받아야 한다고 여긴다. 글쓴이나 책낸이는 스스로 별꽃 10(또는 5)을 꾹꾹 눌러서 줄 만하다. 이래야 맞지. 스스로 별꽃 10(또는 5)을 매길 만하지 않은 책이라면 아예 내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만 둘레에서는 글쓴이와 책낸이와 똑같이 바라볼 수 없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인걸. 그러나 서로 다르기에 일부러 깎아야 하지 않다. 빈구석과 틀린곳을 느낄 적에는 나무랄 만하다. 헛짚거나 못짚거나 설짚은 대목은 기꺼이 나무랄 만하다. 서로서로 즐겁게 나무랄 적에 참말로 “서로 나무로 설 수 있”다. 나무라는 말은 나쁜 말이 아니고, 나은 말도 아니지만, 이곳에서 스스로 푸르게 서는 나무로 나아가려는 말씨 한 톨이다. 보라, 나무는 여름에도 겨울에도 나무이다. 보라, 나무는 해날에도 돌개바람에도 나무이다. 보라, 나무는 꽃이 피건 지건 나무이다. 보라, 나무는 서울에서건 시골에서던 똑같이 나무이다.


  넌 아직 숨어서 말할래? 숨어서 낄낄대고 빈정댈래? 그러고 싶으면 그러렴. 네가 하는 모든 숨은말은 언제나 너한테 고스란히 돌아가거든. 난 해바라기에 비바라기에 별바라기에 바람바라기에 구름바라기로 말할 셈이야. 난 꽃바라기에 풀바라기에 숲바라기에 들바라기로 속삭이려고 해. 숨고 싶으면 마음껏 숨으렴. 넌 네 삶을 보낼 테니까. 난 내 삶을 짓는 이 하루를 지낸단다. 2025.11.15.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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