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책넋
틀린날짜
부산에서 사흘을 보내고서 서울로 건너왔다. 저녁나절에 쉴 곳을 찾아서 길손집으로 간다. 서울 이웃님이 푹 쉬라면서 미리 한칸 잡아 주었다. 그런데 길손집에 닿고 보니 오늘 아닌 이튿날 잡았다고 알려준다. 마침 오늘 모든 칸이 찼다고도 한다. 속으로 끙 소리가 나지만 어쩔 길이 없다. 누구나 달종이 날짜를 잘못 읽을 수 있지 않은가. 나도 딴 날짜로 엉뚱하게 잡고서 헤맨 바 있을 뿐 아니라, 이름은 같은 다른 길손집으로 잘못 찾아가서 한참 돌아가느라 밤에 택시를 겨우겨우 불러서 애먼 돈을 쓴 적까지 있다.
서울 동작구에서 1.8km 즈음 책짐을 잔뜩 지고 안은 채 걸었다. 한가을이 저무는 이즈음이 춥다고 여기면서 두툼하게 껴입은 사람이 아주 많은데, 나는 아직 민소매에 깡동바지 차림이다. 나는 늦가을 첫머리까지 민소매를 입는다. 여기에 맨발 고무신이기까지 하다. 내가 버선을 꿰려면 -2℃ 즈음은 되어야 한다. 늘 걷고 오래 걸으면 발가락이나 발바닥이 안 시리다. 걸어다니지 않는 사람이라면 발가락도 발바닥도 발목도 시릴 테지. 걸어다니는 사람은 두툼옷을 입을 일이 없다. 책으로 가득 채운 등짐을 즐겁게 지는 사람도 얇게 입고서 늦가을까지 보낸다.
그런데 등짐 왼멜빵이 튿어진다. 이제 이태 즈음 메는 등짐인데 벌써 멜빵이 튿어지다니. 아니, 등짐에 책을 너무 꾹꾹 눌러담은 탓이다. 내가 잘못했다. 멜빵이 튿어질 만큼 등짐에 책을 채우지 말자. 끈으로 묶어서 시골집으로 나르자. 아니, 밤과 새벽에 길손집에서 책을 읽겠다면서 등짐을 괴롭히지 말자. 아니, 길손집에서는 일찍 자고 푹 자면서 책은 그냥 꾸러미에 담아서 시골로 보내자. 책은 시골에서 읽자.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가 잘못했다. 2025.10.27.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