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누구를 보든



  한 달 즈음 퐁당퐁당 잇던 비날이 가셨다. 이제 닷새 즈음 해날이고, 이 해날을 모처럼 길게 이을 듯싶다. 시골은 벼베개(콤바인)만 시끄럽다. 논둑길을 거닐며 들여다보면, 벼베개에 앉은 사람은 거의 이웃일꾼이다.


  집짓기를 하는 일꾼도 시골에서 논밭을 돌보는 일꾼도 어느새 이웃일꾼이 거의 다 차지한다. 나라에서는 ai에 억수로 돈을 쏟고 스마트팜에도 벌써 억수로 돈을 퍼부었다. 반도체가 나라를 먹여살린다고 헛바람을 넣지만, 밥이든 빵이든 과일이든 남새이든 안 먹어도 되는지 돌아볼 노릇이다.


  어린배움터와 푸른배움터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열린배움터는 젊은이를 시골로 보낼 수 있는가? 아니, 군수부터 시골집에서 안 살고, 거의 모든 시골공무원도 아파트에서 산다. 교수와 교사는 어떻지? 도지사나 시장은 어떤가. 다른 벼슬아치뿐 아니라 글바치와 그림바치는 어떤가?


  풀벌레노래가 거의 잠든다. 한가을이라서 개구리는 이따금 왁왁 괙괙 외마디노래를 들려준다. 늦가을꽃이 있으니 아직 나비가 날고, 하늘을 누비는 새는 올들어 부쩍 줄어서 여러모로 허전하다.


  예전에 마을지기(이장)이던 아재는 이제 할배가 되어 종이(면허증)를 내려놓고서 처음으로 시골버스를 타신다. 면도 읍도 어린이와 푸름이가 잔뜩 줄어서 시골버스가 붐빌 일은 아주 없다시피 하다. 이런 판에 고흥군은 유자잔치를 으리으리하게 연다. 서울서 노래꾼을 한아름 부른다. 돈을 참 잘 쓰지만, 웬만한 돈은 몇몇 주머니랑 서울로 간다.


  시골은 시골을 안 보고 서울바라기인데, 서울은 서울만 쳐다보기에도 바쁘고 힘드니 시골은 아랑곳않는다. 돈될 길이나 놀러갈 적에만 살짝 흘깃 구경하고 그친다.


  서울과 제주와 큰고장에 크고작은 책집이 많다. 이 많은 책집을 즐기는 분이 있고, 안 쳐다보는 분이 수두룩하다. 날마다 갖은 책이 신나게 나온다. 이 갖가지 책을 반기며 살피는 분이 있고, 뮈가 나오거나 말거나 등진 분이 흘러넘친다.


  나는 나부터 본다. 이윽고 곁님과 두 아이를 본다. 이러고서 풀꽃나무와 새와 나비와 벌레를 본다. 바람과 하늘을 보고, 빗물과 바다를 본다.


  너는 너부터 보면 된다. 우리는 서로 스스로 바라보고서 두마음 한하늘을 품으면 된다.


  퇴직대통령이나 퇴직공무원은, 또 퇴직군인과 퇴직노동자는 모두 똑같이 ‘꽃돈(노령연금)’을 받아야지 싶다. ‘나라돈(국민연금)’은 모든 사람이 똑받아야지 싶다. 꽃돈과 나라돈을 더해서 150만 원이 안 넘어야지 싶다(2025년 눈금). 누구나 고르게 꽃돈과 나라돈만 받으면서 작고 수수하게 살려고 해야 이 나라에 앞날이 있다.


  퇴직대통령은 30평 넘는 집에서 살면 안 된다. 20평 오두막에서 경호원 없이 두멧시골에서 밭일을 하며 살아야지 싶다. 경호원이 없으면, 퇴직대통령은 길에서 뺨따귀를 맞을 수 있다. 그러니까, 일을 못했으면 기꺼이 뺨을 맞으며 걸어다니는 대통령이 있어야 말썽(부정부패)이 사라진다. 퇴직대통령은 “인터뷰 금지 + 출판활동 금지 + 강연활동 금지”를 걸 만하다. 이 나라 다른 사람들이 말해야 한다, 그들은 입을 다물어야 한다.


  고흥을 떠난 시외버스가 너른길을 달린다. 호젓이 조용히 달린다. 하늘이 파랗고 멧숲이 푸르다. 바깥일을 하며 배우는 바를 차분히 삭여서 보금숲으로 돌아가자. 따뜻하게 번지는 아침볕이다. 2025.10.24.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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