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 성동혁 시집 민음의 시 204
성동혁 지음 / 민음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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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10.17.

노래책시렁 516


《6》

 성동혁

 민음사

 2014.9.12.



  아픈 몸으로 글을 쓰면서 동무하고 마음을 새롭게 나누었다고 하는 성동혁 씨가 그린 《6》을 읽으면서 내내 갸웃갸웃했습니다. 이 노래에는 아픈 티가 드러나지 않기도 하고, 스스로 어떤 하루이고 삶인지 잘 안 보이기도 합니다. 노래란, 말 그대로 “삶을 부르는 노래”일 텐데, “문학으로 꾸미려는 시”만 드러납니다. 요새는 이렇게 글을 꾸미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이렇게 꾸며야 이름난 펴냄터에서 ‘노래책’이 아닌 ‘시집’이 나오며 ‘문학비평’을 끝에 붙일 수 있다고 여깁니다만, ‘노래가 아닌 시’로는, 너를 부를 수도 내가 부를 수도 우리가 하늘빛을 부를 수도 없게 마련입니다. 꾸밀수록 꿈이 옅다가 어느새 사라집니다. 꿈을 그릴수록 꾸밀 까닭이 아예 없습니다. 꿈을 안 그리기에 꾸미는 굴레로 기울고, 꿈을 그리기에 꾸밈질을 스스로 떨쳐냅니다. 꾸밈글이란, 스스로 ‘있어 보이’려 하고 ‘커 보이’려 하고 ‘잘나 보이’려 하고 ‘높아 보이’려 하는 허울입니다. 허우대가 좋다고 해서 튼튼몸이지 않아요. 꾸미느라 거꾸로 스스로 하잘것없는 글을 쓰고야 맙니다. 꿈을 그리는 사람은 언제나 삶자리 가장 자그마한 이야기를 담는데, 언제나 이 자그마한 이야기가 숲을 이루는 씨앗으로 거듭납니다.


ㅍㄹㄴ


새들이 빈 나무에 가 투명하게 목매단다 // 저택의 지붕을 찢어 내고 / 햇볕이 부엌까지 든다 // 신성한 가시밭은 골짜기의 초입까지 들어와 자랐다. (면류관/14쪽)


지구가 반으로 잘린다면 내가 너희와 같은 곳에 서 있을 거야 (동물원/24쪽)


어젯밤엔 아편밭을 걸었다 // 서서 지내던 친구들이 누워서 사라진다 / 오래 누워 있으면 조금 더 친해지는 거리 / 계속 걸을 수 있다면 모두와 / 유리창을 깨며 / 나눠떨어지지 않는 웅덩이에서 약속을 잡자 (그림자/42쪽)


나는 기상청에 당신이 언제 그리울지 몰어봤다가 이내 더 쓸쓸해졌다 (바람 종이를 찢는 너의 자세/76쪽)


나는 스스로를 여자라고 부른다 애인의 가슴은 어젯밤 내가 모두 빨았다 하지만 나는 도덕으로 살고 있다 가슴을 깎아 내리면 연필처럼 검은 젖이 나온다 (수컷/113쪽)


+


《6》(성동혁, 민음사, 2014)


이곳이 나의 예배당입니다

→ 이곳이 우리 절집입니다

→ 나는 여기서 비손합니다

→ 난 이곳에서 빕니다

→ 난 여기서 절합니다

5


확장되는 천국 촌스럽게 전도하지 마

→ 늘어난 하늘 구질구질 퍼뜨리지 마

→ 넓힌 하늘길 나달나달 알리지 마

13


새들이 빈 나무에 가 투명하게 목매단다

→ 새가 빈 나무에 가 맑게 목매단다

14


저택의 지붕을 찢어 내고

→ 지붕을 찢어내고

→ 큰집 지붕을 찢어내고

14


신성한 가시밭은 골짜기의 초입까지 들어와 자랐다

→ 거룩한 가시밭은 골짜기 어귀까지 들어와 자란다

14


슬픔은 신에게만 국한된 감정이면 좋을 뻔했다

→ 하늘만 슬퍼하면 될 뻔했다

→ 님만 슬프면 될 뻔했다

→ 하느님만 슬프면 될 뻔했다

16


종량제 봉투 안에 가득 찬 악몽을 들고

→ 쓰레기자루에 가득 든 가위를 들고

→ 쓰레자루에 가득한 늪꿈을 들고

19


그녀가 현관 밖에 사일 동안 서 있고

→ 그는 나들목 밖에 나흘 동안 있고

→ 님은 들머리 밖에 나흘 동안 서고

20


당신의 군락에선 똑바로 설 수 없다

→ 너희 밭에선 똑바로 설 수 없다

→ 너희 무더기에선 똑바로 못 선다

22


역사는 혼색(混色)으로 개혁되었다

→ 그동안 섞어서 바꾸었다

→ 여태껏 버무려서 바꿨다

23


트램펄린 위에서 높게 뛰다 보면

→ 방방이에서 높게 뛰다 보면

→ 붕붕이에서 높게 뛰다 보면

56


손톱의 뿌리가 바다와 맞닿아 있듯 뭍으로부터 떠나온 나는

→ 손톱뿌리가 바다와 맞닿듯 나는 뭍에서 떠나

66


이내 더 쓸쓸해졌다

→ 이내 더 쓸쓸하다

76


난 너의 옆집에 살아

→ 난 너희 옆집에 살아

→ 난 옆집에 살아

86


나는 애인에게 걸음마를 배운 것 같다

→ 나는 곁님한테서 걸음마를 배운다

→ 나는 사랑이한테서 걸음마를 배운다

113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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