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책넋
2025.10.14. 들깨씨
살아야 살림길을 돌아보면서 익힌다. 삶과 살림이 맞물리는 나날을 익히는 동안, 저마다 “내가 사람이구나” 하고 느껴서 사랑을 그리면서 찾아간다. 살지 않으면 살림길을 안 돌아보고 안 익힌다. 목숨만 이을 적에는 삶과 살림길이 없다. 모든 가두리(감옥·양식장)에는 아무런 삶이나 살림길이 없기에, 사람빛과 사랑씨가 없다.
낳고 태어나는 사랑이 이미 누구나 몸마음에 깃든다. 이 사랑씨는 언제라도 깨어나서 싹트려고 기다린다. 다만, 사랑은 사람씨앗이지만 ‘좋음·좋아함’은 불씨이다. 좋아한다며 타오를 적에는 불씨이기에 확 달아오르고 훅 사그라들기에, 늘 다투거나 싸우거나 시샘하거나 미워하거나 밀치거나 끌어당기다가, 담을 쌓고서 닫는다. 팬심과 팬덤은 늘 불씨이니, 팬을 거느리는 이라면 그이부터 스스로 타오르며 갉는 굴레이다. 낳고 태어나는 사랑과 사람은 ‘팬’이 아닌 ‘아이’랑 ‘짝꿍’을 곁에 둘 뿐이다.
사람으로서 사랑이라면 타오르거나 뜨거울 일이 아예 없다. 사랑은 사람씨에 살림씨를 더하는 삶길이다. 삶과 살림과 사람을 숲빛으로 품을 적에 비로소 사랑씨가 가만히 깨어나서 싹트고 자란다. 이때에는 나랑 너랑 우리랑 모두를 고루 밝힌다. 밝아서 반짝이는 별빛이 바로 사랑이라는 빛살이다. 사람은 스스로 별빛인 줄 알아보고서 품을 적에 사랑을 할 수 있다.
한가을 들깨는 조용히 꽃피우고서 조용히 씨를 맺는다. 이웃님한테 띄울 책을 꾸린다. 시골버스에서 노래와 글을 쓰고서, 고흥읍 나래터에서 부친다. 이제 우리 보금숲으로 돌아가서 저녁을 차리면 이내 곯아떨어질 테지.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조금 더 기운을 낸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노래 한 자락과 하루글을 더 쓴다. 올해 한가을에는 가랑비도 소낙비도 잦다. 한가을비 사이사이 풀벌레와 개구리가 노래를 곁들인다. 바야흐로 마을 앞이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