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9.8. 새낫
낫질을 가르치는 배움터는 몇 곳이나 있을까. 집에서 아이랑 함께 낫질하는 어버이는 얼마나 될까. 아니, 요즈음은 ‘낫’이나 ‘호미’ 같은 수수한 연장을 아예 못 보거나 이름조차 모르는 아이어른이 수두룩할 듯싶다.
시골에서는 낫과 숫돌을 쉽게 산다. 나들가게(편의점) 구경이 어렵고, 나름밥(배달음식)이 없는 시골은 낫질로 신나는 풀밭이다. 낫질은 노래하면서 슬금슬금 석석 긋는 풀밭일이다. 낫질을 하되 노래없이 서두르거나 아예 안 쉬면서 끝까지 밀어붙이려 하면 으레 손가락이나 팔뚝을 슥 베고 만다.
한 손에 낫을 쥐면, 다른 손은 풀을 쥔다. 한 손에 책을 쥐면, 다른 손에 바람을 쥔다. 한 손에 부엌칼을 쥐면, 다른 손으로 해를 쥔다. 한 손에 아이 손을 쥐면, 다른 손에 붓을 쥔다. 낫을 쥐고서 풀밭을 눕히면 여치 메뚜기 귀뚜라미 풀무치 사마귀 방아깨비 노린재 잎벌레 딱정벌레 무당벌레 들이 여기저기에서 뛴다. 때로는 풀개구리와 참개구리가 나란히 뛰고, 혀를 날름거리면서 무서워하는 뱀도 만난다.
나는 모든 풀이웃한테 속삭인다. “걱정 마랑께. 풀은 곧 새로 자라고, 너희 쉼터이자 삶터를 없앨 마음이 아니여. 조금만 눕힐 뿐이여. 조금만 풀내음 맡으며 놀다가 갈게.”
구름이 끼면 날이 흐리다. 구름이 걷히면 날이 갠다. 가을낮해를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간다. 새낫 두 자루하고 새숫돌 하나를 이웃고장 이웃님한테 드린다. 이웃고장 이웃님은 여태 “낫을 갈아 본 적이 없다”고 말씀한다. 빙그레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숫돌에 낫을 대고서 “이렇게 슥슥 날을 벼려요. 엄지손가락으로 날을 지긋이 누르면서 천천히 옆으로 움직여서 시퍼런 날이 반짝이도록 갈지요. 이렇게 죽 한쪽을 갈고 나서, 뒤집어서 맞은쪽을 갈지요. 조선낫은 쓰고 나서 꼭 갈아 놓고, 꾸준히 갈아서 쓰면, 낫 한 자루로 쉰 해쯤 잘 쓸 수 있답니다.”
부산에서 고흥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낫과 숫돌을 건네느라 비운 등짐은 책으로 그득히 채운다. 시외버스에서 달게 눈을 붙이고서 신나게 읽자. 시골집으로 돌아가면 여러 날에 걸쳐서 책가을 책하루 책노래를 흐벅지게 누리자.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뭐, 낫질과
숫돌질이란
바로 '멸종' 이야기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