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8.28. 농약논 (공장식농업)
풀죽임물(농약)을 듬뿍 치더라도 벌레가 먹을 수 있다. 벌레는 풀죽임물에 죽기도 하지만, 꿋꿋하게 살아남으며 더 악착같이 굴곤 한다. 그런데 풀죽임물은 모름지기 논밭에 심은 벼하고 낟알하고 남새하고 열매에 듬뿍 스민다. 풀벌레하고 ‘딴풀(안 심은 풀)’을 죽이려고 듬뿍 뿌리는 풀죽임물은 으레 사람한테 돌아와서 사람을 갉는다.
요즈음은 가두리(공장식 축산)를 따지고 나무라는 책과 글이 꽤 나온다. ‘고기밥(육식)’을 하는 이한테 ‘짐(죄책감)’을 심으려고 하는데, 이미 들숲메바다를 등진 채 서울(도시)에 살 뿐 아니라, 골목집이 아닌 잿더미(아파트)에 스스로 갇힌 사람은 가두리에 갇힌 슬픈짐승처럼 슬픈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제 손으로 돌볼 밭뙈기 한 뼘이 있어야 풀밥(채식)을 하게 마련이다.
이제는 논밭까지 가두리이다. 이른바 ‘공장식 농업’이라는 뜻이다. 비닐·비료·농약·농기계 넷을 한덩이로 굴리는 판이요, 여기에 항생제·첨가물·보존제(방부제)를 덤으로 얹고 착색제·발색제도 더 베푼다.
간추려 보자면, 서울나라(도시국가)에서는 풀밥도 고기밥도 새길(대안)하고 멀다. 새길은 그저 하나이다. 언제쯤 서울을 떠날(탈출) 셈인지 가늠해야 한다. 땅바닥을 디디지 못 할 뿐 아니라, 흙을 만지지 못 하는데다가, ‘나무 심을 땅 한 뙈기’를 못 누리는 서울에서 우리 스스로 하루빨리 벗어날 적에 ‘새길’을 열면서 ‘새밥’을 짓고 나눌 만하다.
이 가두리(공장식 축산)에서도 소와 닭과 돼지가 죽음수렁이라 아프고, 저 가두리(공장식 농업)에서도 벼와 낟알과 남새와 열매가 죽음늪이니 아프다. 우리는 아픈(병든) 밥을 먹으니 저절로 아프다. 게다가 집마저 서울 잿더미에다가 늘 쇳덩이(자동차)를 부릉부릉 몰며 몸마음을 나란히 갉는다.
왜 책을 안 읽거나 멀리할까? 이미 살아도 죽음 같은 삶이지 않나? 사는 보람과 뜻을 팽개친 채 돈만 많이 벌어야 하니, 차분히 ‘나’를 돌아보고 새길 틈이 없다. 가두리밥과 가두리집과 가두리길(공장식 교통·회사)에 가두리글(신문·방송·유튜브)에 길들어서 아프니 병원을 드나드느라 바쁘고 지친다.
풀죽임물을 덜 쐰 논은 아직 논거미가 산다. 논거미가 없는 논은 죽음늪이다. 미꾸라지나 가재나 다슬기까지 바라기 어려워도 논거미가 없는 곳에서 거둔 벼만 먹는다면, 게다가 누런쌀조차 아닌 흰쌀만 먹는다면, 풀밥을 누린다는 분들이 ‘비닐집에 가두어 수돗물과 풀죽임물과 기름(석유)과 갖은 항생제·발색제·방부제 따위를 듬뿍 먹인 풀을 그냥그냥 먹기만 한다면, 고기밥을 먹는 이하고 그저 똑같다. 이 가두리와 저 가두리라는 굴레만 다를 뿐이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