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물
속이 쓰리다. 졸립지는 않은데 눕고 싶다. 잠깐 숨을 멎고 그대로 누운 채로 눈을 뜨고 있어 본다. 내가 이대로 숨을 거두고 죽는다면? 내 삶은?
몇 분이었을까, 아니 일 분쯤이었겠지. 이러고 있자니, 죽음이란 참 부질없는 노릇이라고, 이대로 숨을 거둔들 무엇이 아깝겠으며, 여기에서 더 산다 한들 무엇이 더 넉넉하겠느냐 싶다. 나는 나대로 내 깜냥껏 하는 만큼 살면 되지 않겠느냐. 무엇을 더 바라고, 무엇을 덜 바라느냐. 무엇이 더 있으면 좋고 무엇이 더 없으면 나으냐.
얼마쯤 잠자리에서 뒤척이다가 일어난다. 옷을 하나씩 벗는다. 알몸뚱이가 되어 씻는방으로 들어간다. 빨래를 한다. 빨래 하나 마친 뒤 몸을 씻어야겠다고 느낀다. 몸을 씻는다. 찬물이 말 그대로 차갑게 살갗으로 와닿는다. 조금 있으면 괜찮아진다. 아직 날씨도 영상 십오륙 도쯤 되지 않는가? 십일월이 코앞인데 이런 날씨이다. 아직 보일러는 돌리지 않는다. 아니, 보일러는 고장이 나서 돌릴 수 없다. 올겨울은 보일러 없이 날 수 있을까? 보일러를 돌린다 해도 기름값이 걱정이다. 올겨울은 옷 두툼하게 껴입고, 바닥에는 깔개를 잔뜩 깔아 놓은 채 버틸 수 있을까?
어쩌면, 어쩌면 버티리라. 해가 다르게 날이 따뜻해진다. 아니, 더워진다. 가게에서 사 온 비름나물에 곰팡이가 피었다. 부랴부랴 냉장고에 다시 돼지코를 꼽는다. 잠들 뻔하던 모기가 다시 깨어났다. 아직도 잠잘 때 모기장에서 자야 한다. 모기는 모기장 바깥이 온통 제 세상이다. 사람은 조그마한 모기장이 자기 집이다. 이제는 여름만이 아니라 봄가을도, 겨울마저도 사람이 모기장 신세를 져야 할 판이다.
겨울이 따뜻하면 겨울이라는 이름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겨우나기를 하며 기름을 안 쓸 수 있겠지. 빨래를 할 때 조금 손이 차지만, 겨울 빨래처럼 손이 시리거나 얼어붙지 않는다. 한두 가지 빨래를 하고 나면 손에도 피가 몰려서 따뜻하다. 찬물이 따순 물처럼 느껴진다.
빨래를 셋, 넷까지 하고 다섯까지 한 다음 하나를 남긴다. 저녁에 걸레를 빨거나 내일 아침에 씻을 때 빨려고. 씻을 때 빨아야 물을 덜 쓴다.
빨래 두 가지는 빨래집게에 집어 마당으로 가지고 나와 널어 놓는다. 햇볕이 괜찮다. 이불 둘 들고 나와서 담벼락에 널어 놓는다. 저 멀리, 담벼락에 이불 널어 놓은 집, 빨래를 빨랫줄에 줄맞춰 널어 놓은 집이 보인다. 아파트라면 빨래 구경도 못할 테지.
마당이 있어(옥상 마당이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며 구름을 느끼고 햇볕을 쬘 수 있어 좋다. 이웃집 옥상과 마당을 바라다볼 수 있어 좋다. 이웃집 창문으로 살림살이를 살며시 들여다보기도 하고, 우리 집 살림살이가 우리 집 창문을 거쳐 이웃집에 들여다보여지기도 한다.
기차가 지나간다. 전철도 지나간다. 집이 옹옹옹 울린다. 옆지기가 예전에 말했다. 그렇게 옹옹옹거려도 이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긴, 그렇겠지. 올해로 쉰 살을 먹은 이 집은 여태껏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는데. 이 집이 무너지면 이웃집들은 오죽하겠는가. (4340.10.29.달.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