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살 위로 사전 - 나를 들여다보는 100가지 단어
박성우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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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8.10.

까칠읽기 87


《마흔 살 위로 사전》

 박성우

 창비

 2023.9.29.



  《마흔 살 위로 사전》을 읽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미운놈을 콕 찍어서 그놈만 미워하고 불타오르면 저절로 우리 마음을 달래거나 다독일 수 있는 듯 여기는 줄거리 같다. 참말로 어느 미운놈이 우리 눈앞에서 사라지면 즐거울까? 미운놈을 미워하면 우리 마음에서 타오르던 불길이 가라앉거나 사그라들까?


  미움이란 불길이다. 미움은 모두 태운다. 남이 아닌 나를 불태워서 잿더미로 바꾸는 굴레이기에 미움이다. 미워하는 사람은 터럭만큼도 안 개운하고 안 후련하고 안 시원하다. 미움씨를 뿌리는 사람은 ‘이놈’이 사라지면 “새롭게 미워할 ‘저놈’을 바라”게 마련이다.


  화살을 밖으로 돌리면 스스로 망가진다. 남한테 화살을 돌리기에 언뜻 ‘나를 돌보거나 달래는’ 듯 보일 수 있을 테지만, 내가 나부터 똑바로 들여다보지 않을 적에는, 늘 내가 나를 죽이고 괴롭힌다. 우리 스스로 쳇바퀴에 가둔 채 헤어나오지 않는 얼거리인 《마흔 살 위로 사전》이라고 느낀다. 남이 나를 아끼는 말을 들려주기에 ‘달램(위로·위안·치유·힐링)’이 될 턱이 없다. 남한테 바라기에 얽매이고 길들면서 서울에 갇힌다. 그저 우리 스스로 서울을 떨치고서 시골에서 보금살림을 일구면 넉넉하다.


  왜 서울을 떨쳐야 하는가? 서울은 언제나 쳇바퀴로 가두고 길두는 틀이다. ‘서울틀’에 우리 몸을 맡기면 ‘돈’이 나오되, 이 돈이 나오는 만큼 언제까지나 ‘나를 깎고 갉고 할퀴는 수레바퀴’를 굴려야 한다. 맛나다는 잔칫밥을 날마다 받더라도 기쁘거나 즐거울 수 없다. 손수 밭을 가꾸면서 이따금 한두 가지 남새나 나물을 손수 얻어서 스스로 손질해서 손수 밥을 차릴 적에 비로소 ‘기쁨(행복)’이 무엇인지 알아챌 수 있다.


  ‘남’이 나쁠 일이란 없다. ‘나’를 잊기에 ‘남’을 쳐다보고 “남 눈치”에 사로잡힌다. “남 눈치”에 붙잡히기에 “누가 날 좀 달래 줘!” 하고 바랄 수밖에 없다. 호미를 쥐고서 땅을 쪼고, 낫을 쥐고서 풀을 눕히고, 부엌칼을 쥐고서 통통 도마질을 하고, 수세미를 쥐고서 설거지를 하고, 빨래비누를 쥐고서 느긋이 손빨래를 하고, 두다리로 거닐며 저잣마실을 다녀오고, 아이랑 손을 잡고서 마당에서 해바람별춤을 노래하노라면, 누구나 스스럼없이 마음을 달래고 북돋운다. 이렇게 ‘손수살림’을 일구는 시골살이를 느슨히 이을 수 있으면 누구나 그저 스스로 마음을 밝히고 빛낸다.


ㅍㄹㄴ


[몽롱하다] 창가 빗물과 창밖 불빛이 아른아른 : 몽롱하다는 것은, 봄바람에 흔들리는 보랏빛 수수꽃다리를 바라보다가 나도 수수꽃다리처럼 흔들리고 있다는 것. ㄱ 길을 가다 우연히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만났을 때. ㄴ 어렵게 찾아낸 흡연 구역에서 참았던 담배를 한대 피울 때. ㄷ 더는 견딜 수 없어서 빈속에 감기약을 먹게 될 때. ㄹ 허공으로 떠올라 흔들리는 중심을 잡아 끌어내린다. (92쪽)


[사랑스럽다]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는 너 : 사랑스럽다는 것은, 내 안의 나를 은근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 ㄱ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자라주는 아이가 새근새근 잠든 모습을 바라볼 때. ㄴ ‘넌 풋내기 때부터 귀여운 데가 있었어.’ 이십년 가까이 생일을 챙겨주는 대학동기를 볼 때. ㄷ ‘여기, 엄마.’ 유년 시절에 찍은 단체사진을 보자마자 나를 딱 짚어내는 아이를 볼 때. ㄹ 여드름이 나기 시작한 시절부터 지금까지 밤마다 껴안고 자는 곰인형을 볼 때. (124쪽)


[안쓰럽다] 허겁지겁 샌드위치를 먹는 모습 : 안쓰럽다는 것은, 엄마를 기다리다가 깜빡 잠이 든 아이를 바라본다는 것. : ㄱ “며칠 만에 쉬는 건지도 모르겠어.” 퇴근한 후에 대리운전까지 한다는 친구가 땀을 흘리며 밥을 먹을 때. ㄴ “어제도 교정지 들고 퇴근했어?” 출판사 다니는 후배가 교정지를 들여다보느라 밤을 새우고 다시 출근한다고 할 때. ㄷ 회사 앞 학교 교문을 빠져나온 아이들이 우르르 학원버스에 오르는 모습을 볼 때. (140쪽)


+


《마흔 살 위로 사전》(박성우, 창비, 2023)


언제나 곁에 있으면 좋겠어

→ 언제나 곁에 있기를 바라

10


기쁨과 행복은 언제나

→ 기쁨과 빛은 언제나

→ 기쁨과 꽃길은 언제나

11


너를 떠올리면 한없이 깊어진다

→ 너를 떠올리면 가없이 깊다

→ 너를 떠올리면 그저 깊다

11


오늘 안에 처리할 수 있지?

→ 오늘 할 수 있지?

→ 오늘 마칠 수 있지?

14


마음도 몸도 혹한이다

→ 마음도 몸도 춥다

→ 마음도 몸도 언다

15


내가 보는 것을 너도 보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 내가 보는 곳을 너도 볼 듯하다

→ 내가 보는 대로 너도 보지 싶다

→ 내가 보면 너도 볼 듯하다

→ 내가 보니 너도 볼 테지

19쪽


고속도로 위, 엉금엉금 기어가는 차 안에서

→ 빠른길에서 엉금엉금 기어가는 곳에서

→ 빠른길에서 엉금엉금 기어가는데

20


순간순간 필요로 하는 것들이 바뀐다

→ 그때그때 다르게 바란다

→ 문득문득 달리 바란다

→ 노상 새롭게 바란다

→ 늘 새로 바란다

29쪽


한달 만에 얼근한 음식을 먹게 될 때

→ 한 달 만에 얼근한 밥을 먹을 때

→ 한 달 만에 얼근밥을 먹을 때

30


길을 가다 우연히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만났을 때

→ 길을 가다 얼핏 꿈에 그리던 님을 만날 때

→ 길을 가다 문득 꿈에 그리던 그분을 만날 때

→ 길을 가다 꿈에 그리던 사랑을 만날 때

92


허공으로 떠올라 흔들리는 중심을 잡아 끌어내린다

→ 하늘로 떠올라 흔들리는 나를 잡아 끌어내린다

→ 붕 떠올라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 끌어내린다

92


내 안의 나를 은근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

→ 내 마음을 가만히 바라본다

→ 내 빛을 나긋나긋 바라본다

→ 내 속빛을 넌지시 바라본다

→ 내 넋을 고요히 바라본다

→ 참나를 차분히 바라본다

124


여드름이 나기 시작한 시절부터 지금까지

→ 여드름이 나던 무렵부터 오늘까지

→ 여드름이 나던 즈음부터 여태까지

124


며칠 만에 쉬는 건지도 모르겠어

→ 몇날 만에 쉬는지도 모르겠어

→ 얼마 만에 쉬는지도 모르겠어

140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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