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 어느 여성 청소노동자의 일기
마이아 에켈뢰브 지음, 이유진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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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8.9.

인문책시렁 445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마이아 에켈뢰브

 이유진 옮김

 교유서가

 2022.8.1.



  1970년에 스웨덴에서 처음 나온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는 “어느 여성 청소노동자의 일기”라고 합니다. ‘청소부’라는 이름이 낮춤말이라 여기면서 ‘청소노동자’로 쓰기도 하고, ‘도시환경 담당 주임’이라든지 ‘환경미화원’이라든지 ‘미화 근로자’라든지 ‘환경실무원’으로 자꾸자꾸 바꾸기도 합니다. 그런데 ‘환경미화’라는 이름은 그야말로 ‘미화’하는 셈입니다. 겉만 꾸미는 그럴싸한 허울입니다. 집살림을 한다면 누구나 쓸고닦는 일을 할 노릇입니다. 한집을 이루는 모든 사람이 쓸고닦아야지요.


  그렇지만 이 나라는 아주 오래도록 우두머리는 빗자루나 걸레를 안 쥐었습니다. 위아래로 가르는 굴레에서는 ‘쓸고닦기(청소)’는 애들이나 밑사람이나 가시내한테만 시키는 후줄근한 ‘밑바닥일’로 삼았습니다. 살아가고 살림하는 길에 ‘청소(쓸고닦기)’를 안 할 까닭이 없어요. ‘청소’라는 한자말을 ‘환경미화’라는 한자말로 바꾼들, 더구나 ‘환경실무원’이나 ‘환경미화원’처럼 ‘-원’이라는 한자를 붙인들, 일자리는 안 바뀝니다.


  우리말로 헤아린다면 ‘말끔님’이나 ‘깔끔님’이나 ‘반짝님’으로 나타낼 만합니다. 쓸고닦은 자리는 말끔하거나 깔끔하게 거듭납니다. 쓸고닦기에 반짝반짝합니다. 말끔하게 가꾸고 깔끔하게 돌보고 반짝반짝 바꾸기에 ‘말끔님·깔끔님·반짝님’이라 할 만하고 ‘깨끗님·꽃가꿈이’라 해도 어울립니다.


  그나저나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는 꽤 예전에 말끔님으로 일하던 분이 하루하루 남긴 글을 그러모았다고 하는데, 옮김말씨가 너무 먹물스럽습니다. 줄거리는 찬찬히 짚으면서 돌아볼 만하되, 옮김말씨는 “일하는 사람이 쓴 말” 같지 않습니다. 옮긴이 스스로 빗자루와 걸레를 쥐고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할 적에도 이런 말씨로 하루글을 남길는지요? “살림하는 사람이 쓰는 말”이란 ‘살림말’입니다. 말끔하게 가꾸는 살림길을 추스르는 사람은 “책상물림이 머리로 꾸미는 억지스런 말”을 안 씁니다.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같은 책이름도 퍽 아리송합니다. 말끔지기는 “바닥을 숱하게 닦을” 뿐이거든요.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지 않아요. “바닥을 + 숱하게 + 닦”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여느 어머니가 어떤 말로 살림과 삶과 사랑을 그리는지 헤아려야지 싶습니다. ‘엄마말’이란 ‘모국어’가 아닌 ‘살림말’이자 ‘숲말’이고 ‘사랑말’입니다. 아이곁에서 나란히 어깨동무하는 아늑하며 포근한 말씨인 “일하고 살림하는 엄마가 쓰는 말”입니다.


ㅍㄹㄴ


오늘날 청년들은 많은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일자리를 얻으려면 온갖 종류의 학위가 있어야 한다. (66쪽)


가난하다는 것은 가슴속에 항상 큰 응어리가 맺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담배를 피우거나 다른 식으로 낭비할 때 늘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이다. (93쪽)


‘우리’ 택시 기사들이 셰익스피어도 읽지 않는다고 그녀는 어떻게 저리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 저임금노동자 대부분은 고전 읽기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알아서 책을 읽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104쪽)


그들은 골프가 저렴한 스포츠라는 점에 관해 이야기했다. 300크루나만 있으면 골프 클럽 회원이 될 수 있고 200크루나에서 300크루나만 있으면 골프채를 구할 수 있다고. (198쪽)


스웨덴은 광고비로 20억 크루나를 쓴다. 개발도상국 지원금 액수보다 다섯 배 많다고 텔레비전에서 말했다. (227쪽)


춤을 추며 노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거의 잊었다. (247쪽)


빌리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가 아니었다. 저 공간에서 잘 지내지 못했다. 타자기는 내가 싫어하는 수석 사회복지사 자리에 있었다. 그곳을 청소할 때마다 그녀가 무시하는 말들이 떠올랐다. (295쪽)


#Rapport fran en skurhink (1970년) #MajaEkelof


+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마이아 에켈뢰브/이유진 옮김, 교유서가, 2022)


쌍둥이 유아차는 끌기 무겁다

→ 나란둥이 수레는 끌기 무겁다

11쪽


지금 그날을 되씹으며 내 이웃이 스웨덴 사회의 시민들이 받을 사회적 혜택에 대해 신문에서 읽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오늘 그날을 되씹는다. 이웃이 글로 스웨덴사람이 받을 보람을 읽은 줄 깨닫는다

11쪽


아이들에게 필요한 옷의 목록을 작성하라고 말한다

→ 아이들이 입을 옷을 죽 적으라고 말한다

→ 아이들이 입을 옷을 적어 보라고 말한다

→ 아이한테 챙길 옷을 써 보라고 말한다

14쪽


야간학교 가을학기 소집이 있었다

→ 밤배움터 가을마당으로 모였다

→ 별밤배움 가을자리로 모였다

32쪽


이 화려한 테이블에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 이 눈부신 자리에서 즐겁게 보낼 수 있었으니

→ 이 빛나는 자리에서 신나게 보낼 수 있었는데

39쪽


시청 청사로 향했다

→ 고을터로 갔다

→ 고장터로 갔다

40쪽


내가 과잉보호하는 엄마가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 내가 감싸는 엄마가 아니라면 나을 텐데

→ 내가 두남두는 엄마가 아니라면 될 텐데

58쪽


크리스마스 햄이 삶아지고 있고

→ 섣달 고기떡을 삶고

→ 섣달잔치 함박고기를 삶고

61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계속 글을 쓸 것 같다

→ 그러나 이따금 글을 쓸 듯하다

→ 그래도 이따금 글을 이을 듯하다

68쪽


우측통행은 아직 실행되지 않고 있다

→ 오른쪽은 아직 펴지 않는다

→ 오른걷기는 아직 하지 않는다

→ 오른길은 아직 가지 않는다

81쪽


왜냐하면 즐거움을 너무 급작스럽게 느끼기보다는 나들이를 기다리는 설렘의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 너무 급작스러울 때보다 설레며 기다릴 때에 나들이가 즐겁다

→ 너무 급작스러울 때보다 기다리며 설렐 때에 나들이가 즐겁다

110쪽


그후 아이들에게 줄 음식을 만들었고

→ 이러고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줬고

→ 이런 뒤 아이들 밥을 지었고

165쪽


농장에 갈 수는 없어도 주말에 날씨가 좋으면 좋다

→ 숲밭에 못 가도 이레끝 날씨가 맑으면 즐겁다

→ 한밭에 못 가도 이레끝 날씨가 개면 개운하다

190쪽


이 세상에는 협잡질이 너무 많다

→ 온누리에는 거짓질이 너무 많다

→ 이 땅에는 뻥질이 너무 많다

→ 이곳에는 노가리가 너무 많다

207쪽


내가 쓴 무언가를 본 누군가가 있을 수 있다고

→ 내가 쓴 무엇을 본 누가 있을 수 있다고

→ 내가 무엇을 쓰면 누가 볼 수 있다고

226쪽


분수를 영리하게 바꾸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 나눔값을 똘똘하게 바꾸는 길을 못 배우고

→ 나눔치를 밝게 바꾸는 길을 배우지 못하고

229쪽


이곳에 와서 담소를 나누었다

→ 이곳에 와서 얘기를 했다

→ 이곳에 와서 도란도란했다

255쪽


이 광경은 나에게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 이 모습을 보니 어릴적이 떠오른다

→ 이 모습에 어린날이 떠오른다

259쪽


모든 슬픔의 한가운데에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 모두 슬프지만 즐거운 한때였다

→ 모두 슬픈 날이지만 즐거웠다

→ 모두 슬픈데 즐겁게 보냈다

265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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