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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앙스 - 성동혁 산문집
성동혁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12월
평점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8.7.
인문책시렁 438
《뉘앙스》
성동혁
수오서재
2021.12.3.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려고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태어난’ 누구나 노래님이자 수다꾼이거든요. 태어난 사람은 모두 이녁 삶을 노래하는 하루를 살면서, 스스로 이 하루를 도란도란 재잘재잘 이야기꽃으로 피웁니다.
우리는 저마다 삶지기요 살림꾼입니다. 다 다르게 태어난 하루를 배웁니다. 언제나 다르게 흐르는 오늘을 사랑합니다. 늘 새롭게 마주하는 이 삶을 차곡차곡 가꾸고 돌봅니다.
《뉘앙스》는 글님이 보낸 아픈날을 차곡차곡 여민 꾸러미입니다. 아프고 앓기에 으레 드러눕습니다. 드러누워서 기다리는 몸이지만, 숱한 이웃과 동무가 손길을 나누면서 예전에는 알 길이 없던 나날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웃는 하루는 웃음길입니다. 우는 하루는 울음길입니다. 이 삶에는 꽃길과 가싯길이 나란합니다. 꽃길이기에 늘 웃지 않고, 가싯길이라서 늘 울지 않아요. 어느 길에서건 스스로 노래님인 줄 알아보기에 웃고, 어느 곳에서나 스스로 수다꾼인 줄 알아채기에 울음꽃을 피웁니다.
바깥말 ‘뉘앙스’는 우리말로 ‘말결’이나 ‘말가락’이나 ‘말느낌’이나 ‘말씨’나 ‘말품새’를 가리킵니다. 낱말 한 마디에 흐르는 숨결을 읽으면서 물결처럼 노래가 번집니다. 낱말 두 마디에 감도는 가락을 헤아리면서 바람처럼 노래가 피어납니다. 낱말 석 마디를 가만히 느끼면서 스스로 노래씨앗을 낳고, 낱말 넉 마디를 짚는 동안 둘레를 고루 품는 푸른길을 걷습니다.
걷기에 읽습니다. 안 걸으면 못 읽습니다. 아프고 앓기에 잇습니다. 아프거나 앓는 곳이 없으면 몸과 마음을 잇는 길을 모릅니다.
ㅍㄹㄴ
어쩌면 나는 정말 시인이 되기 위해 여전히 걷는 사람일 수도 있다. (114쪽)
이제 꽃을 사지 않는다. 꽃을 사지 않은 지 꽤 된 듯하다. 꽃을 사는 일은 원고료로 할 수 있는 가장 값진 일이었다. (148쪽)
출판사는 편당 15만 원, 10만 원, 5만 원으로 시의 가치를 책정했다. 선생님, 선생님이라고 존칭을 쓰지만 그들이 나의 노동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나는 선생님이라는 칭호를 듣고 싶은 게 아니다. (152쪽)
하지만 저는 이제 조금 지쳤고 그저 조용히, 누군가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책을 읽기 위해 서점을 들르고 싶었어요. 작가의 말을 직접 듣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쓴 문장을 조용히 읽고 싶었어요. (158쪽)
창작기금을 탄 기념으로 엄마에게 선물을 해 준다고 했더니 엄마는 그 돈 아껴 일 년 동안 잘 쓰라며 됐다고 했다. 그러던 엄마가 핸드폰 케이스가 고장 났다며 선물로 케이스 하나 사 달라고 했다. (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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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앙스》(성동혁, 수오서재, 2021)
주인분께서 제게 한 말이었습니다
→ 지기님이 제게 한 말입니다
4쪽
많은 것이 피곤했고 쌓이는 자극들이 불편했습니다
→ 여러모로 지치고 쌓인다고 느껴 힘들었습니다
→ 이래저래 고단하고 쌓이네 싶어 거북했습니다
4쪽
지상이 가을을 담는 커다란 그릇이 될 것이다
→ 땅이 가을을 담는 커다란 그릇이 된다
15쪽
우는 슬픔보다 울지 않는 슬픔이 더 슬프게 느껴질 때가 있다
→ 우는 슬픔보다 울지 않는 슬픔이 더 슬플 때가 있다
→ 울 때보다 울지 않을 때 더 슬프다고 느끼기도 한다
16쪽
누구에게나 친구는 특별한 존재겠지만
→ 누구한테나 동무는 남다르겠지만
→ 누구한테나 벗은 대단하겠지만
→ 누구한테나 동무는 다르겠지만
18쪽
많은 불가능 속에서 살고 있다
→ 거의 못 하며 산다
→ 못 하는 일에 싸여 산다
→ 할 수 없는 일이 많다
20쪽
원고지에 편지를 쓰는 게 나를 평온케 했다
→ 글종이에 글월을 쓰면 따사롭다
→ 종이에 글월을 쓰면 고즈넉하다
→ 종이에 글을 쓰면 차분하다
22쪽
누군가와 같은 공간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 누구랑 같은 곳을 쓰는 뜻은 무엇일까
→ 누구하고 같은 곳을 쓰는 삶은 어떠할까
25쪽
투고한 날에는 근사한 식당에 가서
→ 글보낸 날에는 멋진 밥집에 가서
31쪽
마비가 왔고, 숨이 점점 안 쉬어지다가 기절을 했어
→ 굳었고, 숨을 차츰 못 쉬다가 뻗었어
→ 뻣뻣했고, 숨을 더 못 쉬다가 쓰러졌어
38쪽
나름의 방법으로 하루하루를 잘 지내려 하고 있다
→ 이럭저럭 하루하루를 잘 지내려 한다
→ 그냥그냥 하루하루를 잘 지내려 한다
57쪽
많은 배려 속에서 살고 있다
→ 곁에서 늘 돌봐준다
→ 둘레에서 많이 봐준다
→ 헤아려 주는 분이 많다
59쪽
상대를 감싼 모든 것이 그의 언어임을 알고 풍경을 눈여겨볼 때가 있다
→ 그를 감싼 모두가 그이 말이기에 둘레를 눈여겨볼 때가 있다
→ 그대를 감싼 모두가 그대 말이라서 빛을 눈여겨볼 때가 있다
67쪽
여전히 슈트가 어울리지 않고 직장도 없어
→ 아직 갖춘옷이 안 어울리고 일터도 없어
→ 아직 차린옷이 안 어울리고 일자리도 없어
124쪽
쓰레기는 시간을 갖기 마련이다
→ 쓰레기는 하루를 담게 마련이다
→ 쓰레기는 삶을 품게 마련이다
164쪽
비성수기의 텅 빈 바다를 혼자만의 것처럼 누렸었다
→ 뜸한철에 텅빈 바다를 혼자만 누렸다
→ 쉬는철에 텅빈 바다를 혼자만 누렸다
171쪽
기저질환을 가진 어린이들과 보호자들 또한 긴장 속에서 지내고 있다
→ 밑앓이인 어린이와 어버이도 애태우며 지낸다
→ 속앓이인 어린이와 엄마아빠도 떨면서 지낸다
189쪽
미니멀리스트를 꿈꾸지만 호더에 더 가깝다
→ 작은이를 꿈꾸지만 자꾸 긁어모은다
→ 단출하기를 꿈꾸지만 또 쌓고 만다
→ 조촐하기를 꿈꾸지만 쟁여놓고 만다
195쪽
슬픈 일이 많았지만 감사 헌금을 낸다
→ 슬픈 일이 많았지만 꽃돈을 낸다
→ 슬픈 일이 많았지만 꽃바침돈을 낸다
206쪽
누군가에게 문학은 액세서리이고, 누군가에겐 지금 여기의 좌표이며
→ 누구한테 글은 노리개이고, 누구한텐 오늘 여기 눈금이며
→ 누구한테 글은 겉멋이고, 누구한텐 오늘 여기 길눈이며
219쪽
기억이 안 날 만큼 휘발된 얼굴 또한 많다
→ 안 떠오를 만큼 사라진 얼굴 또한 많다
→ 생각 안 날 만큼 스러진 얼굴 또한 많다
223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