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8.1. 오늘부터 하면 된다



  아주 쉽다. 오늘부터 하면 된다. 오늘 다시 해보는데 안 되면 쉬면 된다. 이러고서 이튿날을 ‘새오늘’로 삼으면 된다. 이튿날에도 그 이튿날에도 안 되면, 자꾸자꾸 새오늘을 맞이하면 된다. 끝내 삶을 마치는 날까지 한 발짝조차 못 떼어도 된다. 늘 새오늘을 맞이하며 걸어가려 하면 이대로 넉넉하다.


  어렵거나 힘든 일을 안 할 까닭은 없다. 다만 남들이 어렵거나 힘들어한대서 내가 어렵거나 힘들어할 까닭이 없다. 나는 늘 나로서 오늘걸음을 새로 디디고 다시 디딘다. 너는 늘 너대로 네 오늘노래를 신나게 부른다. 쉽기에 쉽다고 느끼고 배우면서 걷는다. 어렵기에 어렵다고 느끼고 배우면서 나아간다. 바라보는 곳은 ‘쉬우냐 어려우냐’가 아닌 ‘오늘 스스로 할 일’ 하나이다.


  치마바지를 입고서 걸어다닌다. 낯과 목과 팔다리에 햇볕을 듬뿍 먹이며 걷는다. 거님길에서 오토바이를 역주행으로 밀어붙이는 아재가 어느 고을에나 넘친다. 아무도 창피해하지 않는다. 다들 거님길에서 사람이 왜 안 비키느냐고 눈치를 먹이려 든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여기는 거님길이고 아재가 역주행으로 들어왔습니다” 하고 짚어준다. 나는 거님길에서 비키거나 물러설 까닭이 없다. 마구 치고 들어오는 오토바이 아재가 이 거님길에서 나가야 할 뿐이다.


  길도 논밭도 서울도 학교도 책집도 같다. 아무 데나 부릉부릉 달려들면서 우쭐댄다. 멀쩡한 사람은 잘못이 없어도 큰쇠와 작은쇠 앞에서 굽실굽실 엉거주춤 비켜야 한다. 큰쇠와 작은쇠가 거님길을 통째로 차지하고 눌러앉으면 멀리 돌아가야 하고, 찻길에까지 내려가서 두리번대며 휙 지나가야 한다.


  아주 작다고 여기는 데부터 안 착하고 안 참하고 안 아름답다. 벼슬과 이름과 힘과 뒷주머니를 꿰차려는 이들은 아주 마땅히 작은길에 선 적이 없으니 작은살림을 모른다. 작은집에서 사는 작은사람은 스스로 작은빛을 잃어간다. 작은씨 한 톨이 깃들 틈이 넉넉하기에 아름드리숲으로 자라는 줄 다같이 잊어간다. 큰책(자랑책·잘난책·베스트셀러·고전)만 쥐는 분은 작은책(삶책·살림책·숲책·시골책)을 쥐는 일이 없다시피 하고, 어쩌다가 쥐더라도 뭔 소리인지 못 알아듣더라. 집안일을 해본 적 없는 어린씨와 푸른씨도 작은책을 멀리하고 큰책을 쥐고서 셈겨룸(대학입시)에 나서려고 한다. 배움불굿(입시지옥)을 이겨낸 젊은이는 노느라 바쁘고, 곁일(알바) 뛰느라 부산하기에, 이때부터는 작은책은커녕 큰책을 쥘 틈이 없기도 하다.


  작은책을 놓을 책시렁이 사라지면, 큰책집과 이 나라는 나란히 무너지리라. 작은고추가 맵고, 작은책이 사랑스럽다. 작은별이 반짝이고 작은꽃이 너울댄다. 작은일을 하는 사람이 아름답고, 작은집에서 작은살림을 꾸리는 사람이 스스로 사랑을 일군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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