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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어서 ㅣ 보통날의 그림책 8
한여름과 한겨울 지음, 권남희 옮김 / 책읽는곰 / 2025년 7월
평점 :
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5.7.16.
그림책시렁 1602
《네가 있어서》
한여름과 한겨울
권남희 옮김
책읽는곰
2025.7.4.
깨어나려면 틀을 깨야 합니다. ‘불길(분노)’을 일으키는 마음이라면 못 깨어나는데, ‘여기만 불길(선택적 분노)’인 마음이라면 다같이 안 깨어나기를 바라는 굴레라고 할 만합니다. 깨어나려면 ‘불길’이 아닌 ‘풀길(푸른길)’일 노릇입니다. 온누리를 푸르게 살리는 숨빛인 ‘풀’을 품는 길인 풀길일 때라야 비로소 굴레를 깨트려 잠을 깨웁니다.
《네가 있어서》는 얼핏 “내 곁에 있는 너”를 그리고 아끼는 줄거리인 듯하지만, 오히려 ‘너·나·우리’라고 하는 숨빛을 하나도 안 헤아린 얼개라고 느낍니다. 31쪽에 나오는 “이 세상에는 스스로 원해서 태어난 생명은 하나도 없어. 어떤 생명도 자기 의지로 이 세상에 태어난 건 아냐” 같은 대목은 도무지 말이 안 됩니다. 터무니없어요. 온누리 모든 숨빛은 스스로 바라기에 이 별에서 태어납니다. 사람도 벌레도 새도 짐승도 푸나무도 헤엄이도 고래도, 저마다 스스로 꿈을 그리면서 ‘첫걸음(아기)’을 떼는 몸을 입어요. 어설프게 ‘토닥임(위로·위안·치유·환대·힐링)’이라는 허울을 내걸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구나 어린이한테까지 ‘짝짓기(연애)’를 밀어붙이지 않기를 빕니다.
어린이는 신나게 땀흘려 뛰놀기에 스스로 모든 앙금을 풀고 맺을 줄 압니다. 어린이는 어른 곁에서 소꿉살림을 짓고 익히면서 스스로 일어서는 새길을 엽니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어른답게 일하고 살림하면서 사랑을 속삭이면 넉넉합니다. 글책도 그림책도 ‘뜬구름’이 아니라, 발바닥을 땅바닥에 대는 ‘삶자리’로 돌아와야 하지 않을까요?
ㅍㄹㄴ
《네가 있어서》(한여름과 한겨울/권남희 옮김, 책읽는곰, 2025)
별안간 네가 나를 안아 주었을 때, 온 우주의 별빛이 내게로 쏟아졌어
→ 네가 문득 나를 안을 때, 온누리 별빛이 나한테 쏟아져
→ 네가 불현듯 나를 안으니, 온누리 별빛이 나한테 쏟아져
11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것이 너무나 기뻤어
→ 이렇게 살아가기에 무척 기뻐
→ 이곳에 있기만 해도 그저 기뻐
→ 이 땅에서 사니 더없이 기뻐
11
그렇게 살아가는 것에 관해 눈을 감고 생각해 봤어. 그건 정말 정말 지루한 나날이었어
→ 이렇게 살아가는 길을 눈을 감고 그려 봤어. 이러면 참말 참말 따분한 나날이야
→ 이런 삶을 눈을 감고 헤아려 봤어. 이런 삶은 참말 참말 심심해
12
네가 괜찮아질 수 있도록
→ 네가 나아갈 수 있도록
→ 네가 달가울 수 있도록
→ 네가 거뜬할 수 있도록
16
이 세상에는 스스로 원해서 태어난 생명은 하나도 없어. 어떤 생명도 자기 의지로 이 세상에 태어난 건 아냐
→ 스스로 바라서 태어난 목숨은 하나도 없어. 제맘대로 태어나지 않아
→ 누구도 스스로 바라서 태어나지 않아. 스스로 뜻해서 태어나지 않아
30
모두 저마다의 세계에서, 저마다의 속도로 서로 스쳐 가고 있는 거야
→ 모두 저마다 다른 곳에서 저마다 다른 걸음으로 서로 스쳐가
→ 우리는 저마다 다른 곳에서 저마다 다르게 걸으며 서로 스쳐가
63
세계가 겹친 순간, 서로의 세계를 껴안는 그 순간이 정말 멋진 거야
→ 두 곳을 겹치면, 서로서로 껴안는 이때가 참으로 멋져
→ 두 빛을 겹치면, 서로 다른 빛을 껴안는 때가 참말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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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