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냄비 2025.6.5.나무.



네가 사는 나라에서는 ‘솥’을 썼어. 묵직하고 커다란 살림이란다. 너희 이웃나라에도 솥이 있는데, 가볍고 얇은 솥인 ‘냄비(なべ)’를 즐겨썼어. 너희 나라 사람들은 묵직하고 큰 솥은 다루거나 씻거나 나르기 힘들다고 여기면서 어느새 ‘솥’을 버리고서 ‘냄비’라는 ‘일본 얇은솥’으로 바꾸었단다. 그런데 가만히 짚어 보렴. 끓이는 살림이라면, 크기나 빛깔이나 모습을 바꾸어도 ‘솥’이지 않아? 왜 말까지 덩달아 버릴까? 모든 벌레는 다르지만 ‘벌레’라는 이름이고, 모든 꽃은 다르지만 ‘꽃’이란 이름이야. 너희 나라하고 아주 먼 나라에서 들여와도 그저 ‘나무’라는 이름이지. 그러니까 이름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해. 왜 어느 이름은 그대로 가는데, 어느 이름은 슬그머니 바꿀까? 더 들여다보면 요사이는 ‘플라워’나 ‘보태니컬’처럼 대놓고 바깥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쓰기도 하고, 이런 이름이어야 멋스럽거나 뜻있다고 여기기도 해. 비닐을 덮는 시골사람조차 ‘덮기’가 아닌 ‘멀칭’이라는 영어 이름을 쓴 지 한참이야. 들숲에 돋는 풀을 왜 ‘풀’이라 하지 않고서 ‘잡초·약초·야생초’나 ‘식물’이라고 할까? 풀을 ‘풀’이라 하지 않을 적에는, 사람들 스스로 풀빛과 풀내음과 풀살림을 잊다가 잃어. 솥을 ‘솥’이라 하지 않을 적에는, 바로 너희 스스로 밥살림과 집살림을 다 잊고 잃는 굴레로 나아간단다. 이름을 잊거나 버릴 적에는 ‘임·있음’을 잊거나 버려. “내가 나로 있는 이곳”을 잊고 잃는단다. 너는 무엇을 보겠니? 너는 어디로 가겠니? 너는 어떻게 있겠니? 너는 어떤 ‘임’으로 서겠니? 너는 살림을 짓고 이루겠니? 아니면 살림시늉으로 가겠니?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