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기슭에서, 나 홀로
우에노 지즈코 지음, 박제이 옮김, 야마구치 하루미 일러스트 / 청미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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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6.6.

인문책시렁 428


《산기슭에서, 나 홀로》

 우에노 지즈코 글

 야마구치 하루미 그림

 박제이 옮김

 청미

 2025.2.20.



  전남 고흥에는 즈믄나무(1000년수)가 있습니다만, 군청은 “관리하기 귀찮”아서 숲빛(천연기념물)으로 올리지 않더군요. 그냥 팽개칩니다. 이뿐 아니라, 즈믄나무 바로 옆에 있는 어느 밥집은 저희 가게로 나뭇가지가 그늘을 드리운다고 하면서 함부로 가지를 동강내었고, 군청은 나무한테 바짝 붙여서 정자까지 짓느라 굵은가지를 치기도 했습니다.


  할 말을 잃을 만한 짓이어서 이제 더는 군청에 대고 말을 안 합니다. 그저 고흥읍 한켠에 선 즈믄나무 옆을 지날 적마다 나뭇잎을 살살 쓰다듬으면서 “너는 늘 푸르고 튼튼해. 즈믄해를 살아왔으니 요 몇 해쯤 너한테는 아무것이 아닌 줄 알 테지.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쯤 지나가면 이 모든 부스러기는 다 사라질 테니까, 아무쪼록 새롭게 즈믄해를 살아가기를 바라.” 하고 속삭입니다.


  《산기슭에서, 나 홀로》를 읽었습니다. 지난 2020년 언저리에 돌림앓이로 푸른별이 들끓을 즈음 큰고장을 떠나서 멧자락에 깃들며 지낸 이야기를 풀어낸 꾸러미입니다. 글쓴이는 돈이 있기에 멧자락에 땅을 사고 집을 얻어서 지내었지만, 돈이 없거나 적은 분은 시골살이를 엄두를 못 내었겠지요. 그러나 시골살이는 돈만으로 하지 않아요. 서울살이(도시생활)를 내려놓으면 얼마든지 ‘우리 집과 땅’을 장만해서 고즈넉이 지낼 만합니다.


  ‘서울살이’에 길든 몸을 ‘멧골살이’로 바꾸기란 어려울 만한데, 애써 매무새를 바꾸려 하기보다는 천천히 놀면 됩니다. 아이도 어른도 새길을 배우려면 여러 해를 느긋이 들일 노릇이에요. 하루아침에 못 배웁니다. 하루아침에 장작패기를 잘 해낼 사람은 없습니다. 한 달도 안 되어 호미질을 솜씨있게 할 사람은 없습니다. 한 해만에 심고 거두는 흙살림을 훌륭히 하지 않습니다.


  서울에 처음 깃들어 자리를 잡기까지도 꽤 길게 보내야 합니다. 어느 고장이든 적어도 열 해쯤은 눌러앉고서 이리 부딪히고 저리 흔들려 보아야 비로소 고을빛을 느끼고 마을빛을 헤아리지 않나요? 시골에서도 열 해쯤 느긋이 놀듯 보낼 적에 비로소 시골빛을 헤아리면서 품을 만합니다. 이런 대목으로 본다면 《산기슭에서, 나 홀로》는 꽤 섣부른 줄거리입니다. 몇 해 살지 않고서 덥석 써낸 글이라서 이모저모 아쉽거나 아리송하더군요. 글을 꾸준히 썼더라도, 열 해쯤 시골살이를 한 발자취를 가다듬어서 책으로 꾸렸다면 빛났으리라 봅니다.


ㅍㄹㄴ


장마가 끝나면 반딧불이의 계절도 끝난다. 어느 날 문득, 늦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올해도 반딧불이의 계절을 놓치고 만 것이다. (35쪽)


우물물을 퍼 올리는 펌프도 고장 나서 교체했었다. 2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니 기계가 못 버텨줄 뿐 아니라 고치려 해도 부품이 없다고 했다. (47쪽)


나에게 이렇게까지 ‘집순이’ 기질이 있었던가 싶어서 놀란다. 그랬다. 어릴 때부터 ‘읽기’와 ‘쓰기’가 좋았다. (75쪽)


옛날 사람들은 다리가 튼튼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시골사람일수록 걷는 거리가 적다. 아주 조금 떨어진 곳이나 장을 보러 갈 때도 자동차로 가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114쪽)


#上野千鶴子 #八ヶ岳南麓から


+


《산기슭에서, 나 홀로》(우에노 지즈코/박제이 옮김, 청미, 2025)


친구란 참 고마운 존재여서 일단 신뢰 관계가 생기면

→ 동무란 참 고마워서 문득 믿으면

→ 동무란 참 고마우니 암튼 믿으면

7쪽


줄곧 이 산속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 줄곧 이 멧집에 머무른다

→ 줄곧 이 멧골집에 머문다

10쪽


활엽수가 나뭇잎을 죄 떨구고, 낙엽송마저 바늘 같은 잎을 떨구고 나면 숲은 순식간에 환해진다

→ 넓은잎나무가 잎을 죄 떨구고, 잎갈나무마저 바늘 같은 잎을 떨구고 나면 숲은 어느새 환하다

14쪽


산속 집을 불규칙하게 오가다 보니

→ 멧골집을 더러 오가다 보니

→ 멧집을 이따금 오가다 보니

→ 멧집을 드문드문 오가다 보니

20쪽


하계(下界)의 벚꽃이 다 지고

→ 땅에는 벚꽃이 다 지고

→ 이곳은 벚꽃이 다 지고

22쪽


주변에 종묘 농가가 여럿 있어서

→ 마을에 씨앗집이 여럿 있어서

→ 모를 파는 여러 집이 있어서

26쪽


산에 살아서 좋은 점은 화목 난로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 멧골서 살면 나무를 땔 수 있어서 즐겁다

→ 멧집에서는 불을 땔 수 있어서 신난다

→ 멧골에서는 나무로 불을 때니 포근하다

39쪽


산 땅의 지목은 산림이다

→ 산 땅은 숲이다

→ 산 땅은 갈래가 숲이다

42쪽


두 번째 초간단요리는 역시나

→ 둘째 단출밥은 아무래도

→ 다음 쓱삭밥은 뭐

→ 이다음 뚝딱밥은

63쪽


1년에 한 번 산나물 튀김 파티를 주최하는데, 무척 큰 즐거움이다

→ 해마다 멧나물튀김잔치를 여는데 무척 즐겁다

→ 봄마다 멧나물튀김잔치를 무척 즐겁게 연다

86쪽


너무나도 훌륭한 싱글 라이프이기에 나는 명함도 못 내밀겠구나

→ 혼길이 더없이 훌륭하기에 나는 이름도 못 내밀겠구나

→ 혼살림이 무척 훌륭하기에 나는 얼굴도 못 내밀겠구나

→ 혼자서 참으로 훌륭히 살기에 나는 쪽도 못 내밀겠구나

89쪽


주변에 나 홀로족이 점점 늘고 있다

→ 둘레에 나홀로가 차츰 는다

→ 곳곳에 혼살림이 꾸준히 는다

101쪽


로그아웃만 하면 순식간에 나만의 시간으로 돌아온다

→ 나오기만 하면 바로 내 틈으로 돌아온다

→ 떠나기만 하면 곧장 내 삶으로 돌아온다

106쪽


주소를 하나로 정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 집을 하나로 둘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 사는곳이 하나일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113쪽


마당이 딸린 단독 주택을 지으리라는

→ 마당이 딸린 한채를 지으리라는

→ 마당이 딸린 홑채를 지으리라는

150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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