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사이에 깃들어 (2025.4.28.)

― 서울 〈뿌리서점〉



  서울 용산나루 너른터 한켠에 ‘절대금연구역’이라고 큼직하게 새긴 글씨 옆으로 담배를 뻑뻑 피우는 사람이 스물 남짓 있습니다. 시골에서 늘 보던 모습을 서울에서도 새삼스레 봅니다. 담배는 안 나쁘되, 때와 곳에 따라 삼갈 노릇입니다.


  아프거나 괴로울 적에 “눈물을 짓는다”고 말합니다. 즐겁거나 신날 적에 “웃음을 짓는다”고 말합니다. 얼굴로 드러나는 눈물과 웃음이기에 ‘얼굴짓’이라고 합니다. 손으로 하기에 ‘손짓’이고, 발로 보이기에 ‘발짓’이에요.


  밥을 짓고, 생각을 짓고, 꿈을 짓고, 노래를 짓고, 이야기를 지어요. 살림을 짓고, 마을을 짓고, 하루를 짓지요. ‘짓다’란, 이곳에 처음으로 나타나도록 우리 스스로 몸과 마음을 다하여 기운을 써서 이루는 일을 나타냅니다. 말과 글은 삶과 살림을 지으면서 이 삶과 살림을 밝히려고 짓습니다.


  저물녘에 〈뿌리서점〉에 깃듭니다. 등짐과 앞짐을 다 내려놓고서 책시렁 사이를 거닙니다. 책집마실을 하며 “이미 사읽은 책이 잔뜩 있되, 아직 모르는 책이 더 많다”고 느낍니다. “여태 돌아본 책이 참 많더라도, 이제부터 새로 만나서 배울 책은 훨씬 많다”고 여깁니다. 이 책을 읽다가 제자리에 놓고는, 저 책을 읽다가 차곡차곡 쌓습니다. 버스와 전철에서 읽을 책을 챙기다가 어느덧 수북하게 쌓습니다. 새로 사려는 책더미를 마주하며 “또 이만큼 배우는 길이구나” 싶어요.


  누구나 모든 책을 처음부터 몽땅 알아보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스치거나 놓칠 수 있고, 뒤늦게 알아채거나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배우려는 사이에 새롭게 눈에 들고, 익히려는 동안에 다시금 마음에 남습니다. 〈뿌리〉 지기님이 볼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웁니다. 책집 전화를 받고, 다른 손님이 찾는 책을 알려줍니다. 저도 책손이지만 여러 책손이 바라는 책이 있는 칸을 나란히 살핍니다.


  용산에서 화곡동으로 넘어가는 길에 읽을 책을 손에 쥐고서 등짐을 질끈 멥니다. 책무게에 기우뚱합니다. 큰길을 뒤뚱뒤뚱 걸으며 책을 읽습니다. 전철을 타고서 비로소 내려놓고, 갈아타면서 다시 멥니다. 또 짐을 내려놓고서 읽다가, 우장산나루에서 내리고는 얼른 달립니다.


  해가 집니다. 한봄이 떠납니다. 서울은 왁자하고 사람물결입니다. 이 사이에 새 한 마리가 머물 틈이 있기를 빕니다. 이 곁에 나비 한 마리가 바람을 타면서 마음껏 봄빛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문득 생각해 봅니다. ‘국회법’이나 ‘대통령법’을 바꿔서, 벼슬자리에 앉는 이들 누구나 “날마다 1시간씩 책만 읽는 틈”을 빼서 늘 스스로 새롭게 배우고 익히라고 한다면, 이 나라가 아름답게 바뀌겠지요.


ㅍㄹㄴ


《文藝 第七卷 第二號》(佐佐木幸綱 엮음, 河出書房新社, 1968.2.1.)

《師大學報 第二卷 第一號》(김선양 엮음,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학예부, 1956.1.10.)

《펭귄 블룸》(캐머런 블룸·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박산호 옮김, 북라이프, 2017.4.15.)

#PenguinBloom #Cameron Bloom #BradleyTrevorGreive

《新版 標準 國語 三年 下》(西尾實 감수, 敎育出版株式會社, 1975.6.10.)

《新韓國文學全集 32 女流新銳作家選集》(편집부, 어문각, 1977.7.20.)

《자연속의 새》(김수만, 아카데미서적, 1988.8.1.)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조영래변호사를 추모하는 모임, 창작과비평사, 1991.12.5.첫/1992.1.20.3벌)

《狀況과 認識》(이광주와 여섯 사람, 한길사, 1980.5.15.)

《韓國水資源開發 初創期의 回顧》(이문혁, 길전출판사, 1985.9.20.)

《포스트모던의 조건》(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유정완·이삼출·민승기 옮김, 민음사, 1992.12.10.)

《낙서형제 4B 2》(오수, 우창, 1994.5.15.)

《현경과 앨리스의 神나는 연애》(현경·앨리스 워커, 마음산책, 2004.5.25.)

#AliceWalker

《실천을 위한 역사학》(쟝셰노/주진오 옮김, 화다, 1985.11.25.)

《로자 파크스 나의 이야기》(로자 파크스·짐 해스킨스/최성애 옮김, 문예춘추사, 2012.3.15.)

#RosaParksMyStory #RosaParks #JimHaskins

#RosaLeeLouiseMcCauleyParks

《새화여자중학교 5회》(1985)

《휘경여자고등학교 5회》(1981)

《서울여자고등학교 23회》(1983)

《산청여자종합고등학교 8회》(1988)

《산청여자종합고등학교 10회》(1990)

《수도여자고등학교 39회》(1986)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29회》(1981)

《그 아내의 手記》(모윤숙, 일문서관, 1959.12.20.첫/1962.2.20.2벌)

《순례자》(정동주, 민음사, 1984.12.10.)

《아무도 모르지》(박철, 창비, 2024.5.10.)

《콧구멍만 바쁘다》(이정록, 창비, 2009.10.5.)

《수런거리는 뒤란》(문태준, 창작과비평사, 2000.4.1.첫/2005.12.15.7벌)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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