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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와 만도 씨 ㅣ 창비아동문고 290
안미란 지음, 정인하 그림 / 창비 / 2017년 12월
평점 :
숲노래 어린이책 / 맑은책시렁 2025.5.16.
《뭉치와 만도 씨》
안미란 글
정인하 그림
창비
2017.12.8.
서울비둘기하고 멧비둘기는 몸도 깃도 무늬도 다릅니다. 둘은 다른 터전에서 다르게 살기에 울음소리도 다릅니다. 날갯짓마저 달라요. 서울에서는 부딪힐 만한 곳이 많고 시끄럽고 어지럽고 빽빽하기에 비둘기도 크고작은 새도 제대로 날지 못 합니다. 이와 달리 시골에서는 너른하늘을 마음껏 누비기에 날갯짓부터 확 다르면서 울음소리가 사뭇 다르지요.
나무 한 그루가 우람하게 들어앉아서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는 시골이라면, 나무 열 그루를 줄지어 심어도 제대로 못 자라고 가지치기에 시달리는 서울입니다. 그러나 요즈음 시골도 나무를 괴롭혀요. 멀쩡한 줄기에 가지를 뭉텅뭉텅 잘라내는 ‘서울스런 사람’이 모질게 늘었습니다.
《뭉치와 만도 씨》는 ‘집개’하고 얽힌 줄거리를 부산을 터전으로 들려주는 듯하지만, 여러 글감이 뒤엉켰다고 느낍니다. 무엇보다도 ‘곁짐승(반려동물)과 함께살기’라는 글감이라기보다 ‘오직 서울사람 눈금으로 재는 틀’이라는 글감에서 맴도는구나 싶어요.
서울비둘기가 “그야말로 뻔뻔(24쪽)”할 수 있을까요? 벌레가 살아갈 틈이며 나무 한 그루가 설 짬마저 모두 잡아먹는 서울사람이야말로 뻔뻔하지 않나요? ‘새대가리’란 말은 누가 했고, 누가 그냥그냥 받아쓰기를 할까요? 스스로 사람다움을 잊고 잃은 사람이기에 ‘새대가리·소대가리·돼지대가리’ 같은 말을 함부로 씁니다.
“국경선을 넘은 난민들처럼 완전 초라(94쪽)”하다는 말을 함부로 쓸 수 있을까요? 아리송합니다. “생명을 돌보는 책임감(35쪽)”이란, 집에 가두어 똥을 치우고 먹이만 바치는 굴레하고 멉니다. ‘가두리’는 돌봄길이 아니에요. 잡아먹으려는 죽임길일 뿐입니다.
새를 우리에 가두는 몸짓은 곁짐승을 돌보는 길하고 맞닿을 수 없지 않을까요? 하늘빛을 머금고 바람빛을 노래로 베푸는 새가 우리 곁에 깃들 수 있는 마당과 뜰과 밭과 숲정이를 건사하는 길이 비로소 ‘곁’에 두는 이웃일 테지요.
《뭉치와 만도 씨》를 써낸 뜻은 깊다고 할 수 있겠지만, 딸바보라는 얼거리를 일부러 억지스레 맞춰야 하지 않고, 아무 말이나 뱉는 아버지로 구태여 그려야 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쪽까지 종잡기 어렵게 이리 튀고 저리 튀다가 어영부영 맺는다면, 이런 줄거리에서 어떤 마음을 읽거나 느낄 만한지 모르겠습니다. ‘동물권’을 외치기보다는,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 굴레에 갇히면서 뭇숨결도 나란히 굴레에 가두려 하는지 짚어야 할 텐데 싶습니다. 아이들이 마냥 “해 줘! 사 줘!” 하고 외치는 모습을 그냥그냥 담는다고 해서 ‘어린이 마음’에 다가설 수 있지 않기도 합니다.
ㅍㄹㄴ
비둘기는 도망가는가 싶더니 다시 내려앉아 기어이 콩 한 알을 더 쪼아먹고 갑니다. 그야말로 뻔뻔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24쪽)
“오호, 이런 좋은 방법이 있군. 역시 새들은 머리가 나빠. 괜히 새대가리 같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니거든.” (25쪽)
“꼬마 숙녀님들, 여기 새 모이 대령이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세요. 이 아버지가 다 구해 줄게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영이가 말했습니다. “나도 앵무새 사 줘요!” (28쪽)
아영이랑 함께 똥도 치우고 모이도 주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딸이 생명을 돌보는 책임감을 키울 수 있겠군.’ (35쪽)
“우리 꼴이 말이 아닙니다.” “그러게요. 꼭 국경선을 넘은 난민들처럼 완전 초라한데요.” (94쪽)
“아니, 무슨 멧돼지가 산에 있지 않고 이제는 바다까지 넘나들어?” “쟤들이 도대체 어디서 온 거지? 멧돼지 맞기는 맞아요?” (108쪽)
아내는 모릅니다. 아침에 만들어 놓은 나물 반찬을 만도 씨가 점심에 어떻게 요리해 먹는지를. 고춧가루와 설탕, 햄을 듬뿍 섞어서 만도 씨표 볶음밥이나 만도 씨표 섞어찌개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을요. (134쪽)
응원석에 있던 만도 씨는 화가 나서 콧김을 쉭쉭 내뿜을 지경이었습니다. “저놈이 대체! 왜 남의 귀한 딸 주위를 알짱거려? 당장 운동장 밖으로 끌어내야지.”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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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와 만도 씨》(안미란, 창비, 2017)
개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 개라는 자리에서 보면
→ 개로서 보면
→ 개가 보면
7쪽
만도 씨의 무남독녀 외동딸입니다
→ 만도 씨 외동딸입니다
8쪽
만도 씨의 약을 살살 올려놓습니다
→ 만도 씨를 살살 약올립니다
14쪽
물기가 남김없이 흩뿌려집니다
→ 물을 남김없이 흩뿌립니다
18쪽
새가 집에서 키워지면 스트레스에 약한 건 당연해
→ 새를 집에 가두면 짜증이 날 수밖에 없어
→ 새를 가둬서 키우면 힘들 수밖에 없어
→ 새를 가둬서 키우면 골을 부릴 테지
36쪽
덥석 사 주는 건 결사반대
→ 덥석 사주지 마
→ 덥석 사주기 안 돼
38쪽
이 거친 삶의 전선에 나서는 거니까
→ 이 거친 삶에 나서니까
→ 이 거친 싸움터에 나서니까
51쪽
내 집에 들어와도 괜찮은 짐승이 있고
→ 이 집에 들어와도 되는 짐승이 있고
→ 집에 들어올 수 있는 짐승이 있고
52쪽
시장 골목을 시찰하듯이 한 바퀴 돕니다
→ 저잣골목을 한 바퀴 돕니다
→ 저잣골목을 한 바퀴 둘러봅니다
59쪽
마당이 널찍한 촌집을
→ 마당 널찍한 시골집을
102쪽
희망퇴직 한 거 맞죠?
→ 그만두셨죠?
→ 옷벗으셨죠?
→ 물러나셨죠?
105쪽
사실은 만도 씨의 절대미각에 질투가 났습니다
→ 그런데 만도 씨 입맛이 부러웠습니다
→ 막상 만도 씨 혀끝을 시샘했습니다
123쪽
내가 마신 게 몇 포더라
→ 내가 몇 자루 마셨더라
→ 내가 몇이나 마셨더라
133쪽
나의 아이들이
→ 우리 아이들이
→ 우리집 아이가
162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