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4.23.
《꽃에 미친 김군》
김동성 글·그림, 보림, 2025.1.7.
고흥교육지원청에 ‘폐교임대신청서’를 손글씨로 적어서 띄우려고 읍내로 나간다. 열다섯 해째 전남 고흥에서 살아가며 돌아본다. 고흥과 전라남도는 문화도 예술도 교육도 희망도 없는 막장이 맞구나 싶다. 그러나 이곳이 막장인 줄 느껴야 이곳을 아름터로 돌보고 손보는 길을 열 수 있다고도 느낀다. 민낯을 들여다보고서 맨손으로 가꿀 마음을 지필 적에 바꾼다. 민낯을 안 보거나 등돌리면 아무 일을 안 하는 셈이다. 겨우겨우 글자락을 써서 다 부치고 나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닷새 동안 거의 안 자면서 몰아치듯 일한 몸이 “좀 쉬어야 안 카나?” 하고 외친다. 이제 비가 그치는 하루이다. 저녁까지 안개가 짙다. 밤에 이르러 구름이 다 걷히면서 개구리소리로 넘실거린다. 이른저녁에 곯아떨어진다. 《꽃에 미친 김군》은 ‘아쉬운책’을 넘어 ‘안타까운책’이다. 이미 느낌글(그림책비평)에 적었는데, 호미 날이 너무 작고, 흙이 너무 허옇고, 이만 한 풀꽃밭이라면 흙이 까무잡잡해야 하고, 나팔꽃을 올리려고 옛사람이 대나무 작대기를 박을는지 아리송하고, 지난날에는 울타리를 저절로 타고서 올랐을 텐데 싶고, 일본에서 땅감(토마토) 기를 적에 쓰던 나무대가 왜 조선 무렵에 나타나는지 모르겠고, 휜 소나무와 등꽃이 엉뚱하고, 꽃을 담은 그릇도 뜬금없고, 18세기 사람인 김덕형인데 20세기에 들어왔다고 여기는 살살이꽃(코스모스)은 안 맞을 텐데 싶더라. 책이름도 안 어울린다. 우리나라 살림자락을 헤아린다면 “꽃에 미친 김씨”나 “꽃아이”나 “꽃돌이”나 “꽃사랑이”쯤으로 붙여야 알맞다. 또한 “꽃을 잘 아는 사람”이란, 한갓진 선비나 나리가 아니라, 흙을 늘 만지고 일하던 ‘여름지기(농사꾼)’이다. 꽃을 알려면 씨앗을 알아야 하고, 싹을 알아야 하고, 흙을 알아야 하고, 날씨와 철을 알아야 하고, 집살림과 들숲메바다를 알아야 하고, 아이를 낳아 돌볼 줄 알아야 하고, 풀과 나무를 두루 알아야 하고, 새와 벌레와 지렁이와 굼벵이와 소똥구리를 알아야 하고, 뱀과 개구리를 알아야 하는데, 이 책 어디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없다. 꽃이란, 씨앗을 맺는 낟알이면서 열매로 가는 끝길이면서 새길이다. “꽃만 쳐다봐도 되는 선비와 나리”는 그만 쳐다보자. 이제 우리가 볼 곳은 “내내 흙을 지은 할매할배”요, 우리 스스로 흙살림을 짓는 시골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이어야 하지 않을까? 수수한 흙지기나 멧사람을 그리면 될 텐데, 수수한 이웃과 동무를 그려내지 못 하는 붓끝으로는 아이어른 모두한테 이바지할 수 없다고 느낀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