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4.18. 조세희 뿌리
다시 못 태어나는 책이 수두룩한데, 이 가운데 하나로 《침묵의 뿌리》가 있다. ‘'이성의힘’에서 새로 내주면 고마울 텐데 언제 그날을 맞을는지 아직 알 길이 없다.
서울에서 살며 날마다 두서너 군데 마을책집을 다니던 1995∼2003년 사이에는 해마다 한두 자락쯤 만났지만, 서울을 떠나서 시골로 옮긴 뒤에는 2024년에 이르러 부천 〈용서점〉에서 드디어 만났다. 그동안 이웃한테 드릴 책만 샀다면 스무 해 만에 스스로 되읽을 책을 장만했고, 다섯 달째 아주 천천히 곱새기며 읽는데, 읽다가 처음으로 돌아가고 또 처음으로 돌아간다.
1970∼80년대에는 길에서 나이든 아재 아지매가 낯선 어린이나 푸름이를 마구 때리고 나무랐다. 이때 얻어맞으며 악에 받친 아이들은 저희보다 어리고 여린 또래나 동생을 두들겨패거나 밟았다. 1970∼80년대 이야기가 그득그득 흐르는 《침묵의 뿌리》를 읽으면서 지난날 하루하루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때 날마다 얼마나 여기저기에서 얻어맞으며 눈물지었던가.
예나 이제나 조세희이든 김세희이든 최세희이든, 일하는 사람보다는 책읽는 사람이 책을 읽게 마련이다. 우리나라가 아직 뒷걸음이라면, 일하는 사람은 책을 쥘 틈도 빛나는 책을 알아볼 틈도 모자라기 때문이리라. 일하는 사람이 느긋이 나긋이 책을 쥘 때라야 이 나라가 뿌리부터 갈면서 바꾸어 갈 만하지 싶다. 일하고 살림하는 사람한테는 책 한 자락을 건네자. 책읽는 사람한테는 책을 내려놓고서 들숲메바다로 찾아가서 맨손과 맨발과 맨몸으로 들바람과 숲바람과 멧바람과 바닷바람을 쐬라고 하자.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