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그리고 죽어 5
토요다 미노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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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4.13.

온하루를 바쳐서


《이거 그리고 죽어 5》

 토요다 미노루

 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4.12.31.



  《이거 그리고 죽어 5》을 아이들하고 즐겁게 읽습니다. 반갑게 맞이해서 기쁘게 읽는다고 할 만합니다. 언제쯤 다음걸음이 한글판으로 나오려나 손꼽아 기다리면서, 되읽고 새로읽고 다시읽곤 합니다. 《이거 그리고 죽어 5》에서는 그야말로 온힘을 쏟아부어서 그리는 마음이란 무엇인지 짚습니다. 언뜻 보면 “활활 불태운 붓끝”이기에 이제 한 줌 재가 된 듯싶습니다. 그러나 온힘과 온마음과 온넋을 그러모아서 빚은 그림 한 칸이란, ‘불태우기·불사르기’가 아닌 ‘붓기(쏟아붓기)’입니다. 불이란 불길(분노)이게 마련이라 그만 잿더미로 갑니다만, ‘붓다’일 적에는 여름날 소나기나 봄날 눈녹임비처럼 온누리를 푸르게 적셔요.


  마지막 기운까지 쏟아붓고서 드러눕기에 어느새 기운을 차려서 일어나고, 다시 붓을 쥐면 뜻밖에도 예전에는 느끼지 못 하던 찌릿찌릿 벼락이 온몸으로 퍼지는 줄 알아차리지요. 다 쏟아부었다고 여겼기에, 예전 몸짓을 모두 녹여낸 셈이요, 바야흐로 새몸으로 거듭나서 새그림을 빚을 수 있습니다. 불태움질이 아닌 쏟아붓기일 적에는 풀벌레가 허물벗기를 하듯 ‘낡은 우리 몸을 스스로 벗는’ 길입니다.


  우리말 ‘기쁨(기쁘다)’이란 ‘깊다’하고 밑동이 같습니다. ‘길다’와 ‘길’에다가 ‘기르다’와 맞닿기도 합니다. ‘기쁨’이라고 할 적에는, 깊이 스미면서 차오르는 빛일 뿐 아니라, 길디길게 잇는 길처럼 스스로 나아가는 빛살로 뻗고, 스스로 살리고 살찌우고 북돋우듯 기르면서 ‘기운’을 일으키는 몸짓이자 마음이라고 할 만합니다.


  기쁠 적에는 굳이 안 웃으면서 차분히 있기도 합니다. 속으로 기운과 빛이 넘쳐오르니 굳이 겉으로 티를 내지 않더라도 둘레를 밝혀요. 이와 달리 ‘즐거움(즐겁다)’일 적에는 즐거운 티가 풀풀 나면서 활짝 웃고 떠듭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즐겁다’는 ‘즈믄(1000·천)’이라는 셈값을 나타내는 낱말하고 밑동이 같고, ‘졸졸·줄줄’이며 ‘줄기·줄기차다·줄거리’에 ‘지며리’처럼 맑고 밝게 흐르는 물빛으로 노래하는 결이거든요. 이리하여 ‘즐겁다’는 ‘짓다·집’으로 잇는 낱말이라서, 맑고 밝게 피어나는 웃음과 이야기로 살림을 짓는 보금자리(집)로 나아가는 마음과 몸짓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쁨이나 즐거움은 꼭 ‘좋은일’에서만 느끼지 않아요. 좋든 안 좋든, 언제나 우리 스스로 이 삶을 배우고 누리고 나누고 베풀고 받아들이고 다시금 주고받는 사이에 피어나는 마음입니다. 가시밭길도 기쁘고 즐겁습니다. 꽃길도 즐겁고 기쁩니다. 온하루가 늘 사랑인 줄 알아보는 눈빛이기에 기쁘고 즐겁게 마음을 다스려서 이 삶을 짓고 가꾸면서 길이길이 나아간다고 느낍니다.


  《이거 그리고 죽어》는 기쁜 길이 무엇인지 짚는다고 여길 만합니다. 이러면서 즐거운 노래가 무엇일까 하고 곱씹는다고 여길 만합니다. 기쁨과 즐거움을 왼손과 오른손에 놓으면서, 둘 사이를 가만히 오가고 지켜보고 하나로 어우르는 삶을 찾아보려는 매무새라고도 여길 만합니다.


  더 빼어난 붓끝은 없습니다. 더 높거나 낮은 붓질도 없습니다. 그저 이곳에서 스스로 차분히 짓는 붓끝입니다. 오늘은 오늘까지 쏟은 땀방울로 눈망울이 빛납니다. 오늘을 실컷 누리기에 오늘부터 맞이할 새날에는 이슬 한 방울과 빗물 한 톨을 두 손에 놓고서 새롭게 일어설 수 있습니다.


ㅍㄹㄴ


“천재란 게 칭찬인가? 내가 아이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건, 엄마가 인기 만화가여서도, 타고난 센스가 있어서도 아니야. 아이의 몇 백 배나 그렸으니까 그런 거지. 자기가 노력 안 하는 것에 대한 변명 아냐?” (14쪽)


‘그리고 싶다. 빛을. 그림자를. 봄 햇살의 따뜻함을. 여름날의 생명력 넘치는 하늘을. 가을날의 차분한 평온함을. 겨울날의 차갑게 맑은 공기를.’ (36∼37쪽)


“난폭해! 무모한 설정을 무모한 설정으로 받아쳤어! 고민하고 있어! 마음 착한 후지모리가 고민하고 있어!” (67쪽)


“그건 테시마 선생님한테 너무 심하게 굴어서.” “날 위해서 그린 겁니까? 그런 부탁 한 적 없습니다만.” “아뇨, 제가 화가 나서.” “그럼 개인적인 분노를 위해 사람을 한 번만 보고 폄하하고 모욕한 겁니까? 만화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것일 텐데요.” (107쪽)


“다음번엔 제대로 재미있는 만화로 싸우겠습니다!” (116쪽)


“정마아아알? 《기생수》보다 재미있었냐아아아아∼?” “뭐랑 비교하는 거니. 뻔뻔도 해라!” (177쪽)


“열심히 노력했지만 내가 졌어. 이거 그렸으니까 죽을까?” (195쪽)


#これ描いて死ね #とよ田みのる


+


《이거 그리고 죽어 5》(토요다 미노루/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4)


내가 원하던 건 바로 이거였어

→ 나는 바로 이 길을 바랐어

→ 난 이렇게 하고 싶었어

141쪽


그렇게 대단한 애가 신입부원이라니

→ 그렇게 대단한 애가 새내기라니

→ 그렇게 대단한데 새사람이라니

142쪽


차분하게 부감해서 생각하자

→ 차분히 내려다보며 생각하자

→ 차분하게 새보기로 생각하자

172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사전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내가 사랑한 사진책》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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