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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샌드백 : 하 - 완결
카오리 오자키 지음, 박소현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3년 12월
평점 :
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4.13.
나이는 나무처럼
《개와 샌드백 下》
카오리 오자키
박소현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3.12.30.
새봄을 맞으면 어느새 나비가 팔랑팔랑 들숲을 날아다닙니다. 언제 고치를 틀었고, 언제 날개돋이를 했고, 언제 어디에서 겨울잠을 마치고 일어난 나비일까 하고 한참 바라봅니다. 겨울에는 찬바람과 누렇지만 부드럽게 시드는 풀포기를 가볍게 쓰다듬고, 봄에는 푸릇푸릇 돋는 풀포기에 내려앉는 산들바람과 나비를 문득 지켜보다가 나무한테 다가가서 “겨우내 애썼구나” 하고 쓰다듬습니다.
해마다 넷쨋달을 맞이하면, 마녘 시골에서는 마늘밭에 풀죽임물을 오지게 뿌립니다. 마늘밭이 온통 하얗게 풀죽임물잔치를 이루는 모습을 처음 본 해에는 “마늘을 굳이 먹어야 할까?” 하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한 해를 지나고 다섯 해를 지나고 열 해를 지나고 열다섯 해에 이른 오늘 다시 헤아립니다. 마늘밭이며 논밭 풀죽임물 못지않게 시골과 서울 어디나 부릉부릉 쇳덩이가 매캐한 김을 끝없이 뽑아내요. 풀죽임물만 걱정할 노릇이 아닌, 그저 모든 쇳덩이를 근심할 노릇이더군요.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만히 읊습니다. “바람아, 하늘아, 우리가 잘못했구나. 그렇지만 늘 새롭게 파랗게 불어 주니 고마워.” 바람은 우리 목소리를 듣고는 어느새 돌개바람을 일으켜 풀죽임물을 훅 날립니다. 하늘은 우리 마음을 듣고는 어느새 굵게 빗방울을 떨굽니다.
꽃과 나비와 새 곁에, 나무와 풀벌레와 사람이 나란히 서는 봄입니다. 《개와 샌드백》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제법 나이든 순이와 스물 언저리인 돌이가 몸뚱이에 앞서 마음으로 먼저 만나서, 서로 그동안 스스로 어떤 응어리와 멍울을 온몸으로 새기면서 “남이 아닌 내가 스스로 삶을 갉아먹었”는지 말로 주고받으면서 풀어내는 얼거리입니다.
모든 응어리는 남이 아닌 내가 받아들입니다. 모든 고름은 남이 아닌 내가 내놓습니다. 모든 멍울도 생채기도 우리가 스스로 남깁니다. 햇살이 내리쬐기에 우리 살갗이 다치지 않습니다. 빗방울에 맞기에 우리 몸에 구멍이 나지 않습니다. 누가 옆에서 무어라 쫑알거리든 우리 마음이 다칠 까닭이 없습니다.
예전에 우리 어머니한테 “어머니 어릴적 얘기 좀 들려주셔요.” 하고 여쭈면 한 마디도 안 하기 일쑤였습니다. 떠올리기 싫은 일이 가득하기에 차마 말을 하기도 싫을 뿐 아니라, 떠올리기만 해도 욱씬거리기만 한 줄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요즈음 우리 집 아이들이 저한테 “아버지 어릴적에는 어땠어요?” 하고 물으면 빙그레 웃으면서 지나온 일을 하나하나 그림으로 줄줄이 머릿속에 떠올린다. 낱낱이 짚으면서 그때 겪은 일과 오늘 어떻게 바라보는지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우리 삶은 늘 하나입니다. 오늘과 모레와 어제는 언제나 하나로 흐릅니다. 오늘을 제대로 알려면 어제를 짚을 노릇이고, 어제 왜 그런 일을 겪었는지 궁금하면, 머잖아 다가올 모레를 꿈과 사랑으로 그릴 노릇입니다. 어떤 모레를 맞이할는지 알고 싶다면 바로 오늘 즐겁게 살림씨앗을 가꿀 노릇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사람입니다. 사람이란, 삶이라는 길을 사랑이라는 숨결과 눈빛으로 가꾸는 살림을 숲빛으로 품는 목숨붙이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구나 말로 우리 삶을 그리고, 글로 우리 삶을 그립니다. 우리가 쓰는 모든 말글이란, “우리 이야기”이면서 “아이곁 이야기(육아일기)”이기도 합니다. 순이돌이가 나란히 앉아서 서로 어떤 어린날을 누렸고 젊은날을 보내면서 어른살이를 짓고 싶은지 이야기할 적에, 비로소 이 나라는 천천히 아름답게 바뀌리라 봅니다.
우리가 나눌 말이란, 늘 ‘삶·살림·사랑·숲’ 네 가지입니다. 이 네 가지를 이야깃감으로 삼기에 언제나 어깨동무하면서 집과 마을과 나라와 별을 함께 일굴 수 있습니다. 혼자 살림을 꾸리든, 둘이 같이 살림을 꾸리든, 아이를 낳든 안 낳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삶·살림·사랑·숲’ 네 가지를 마음으로 담아내어 몸으로 녹아내기에 사람일 뿐입니다.
말 한 마디란 말씨이고, 글 한 줄이란 글씨입니다. 어떻게 말씨앗과 글씨앗을 남겨서 스스로 돌아보고, 이웃과 아이한테 베풀려 하는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생각하기에 사람이고, 생각을 안 하기에 사람이 아닌 겉껍데기 살가죽입니다.
ㅍㄹㄴ
“이렇게 멋진 여자를 어설프게 사랑해선 안 돼!” (47쪽)
“영혼은 배신하지 않아. 좋아해요, 니치코 씨.” (49쪽)
“저걸 갖고 있으면 언제까지고 거짓말쟁이라며 그 사람을 탓할 수 있기 때문이었어. 분노가 부족했었나?” (61쪽)
“모모, 유통기한이라는 말을 자기 자신에게 쓰면 안 돼!” (109쪽)
‘이상한 기분이다. 이젠 못 만나는 거지? 아츠무. 당신도 다리였어. 내가 도쿄를 살아내기 위한.’ (192쪽)
#尾崎かおり #犬とサンドバッ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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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샌드백 下》(카오리 오자키/박소현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3)
생식 능력이 퇴화한 일개미는
→ 낳지 못하는 일개미는
→ 씨알이 사라진 일개미는
5쪽
매일 먹이를 모으거나 유충을 보살피는 등
→ 늘 먹이를 모으거나 애벌레를 보살피며
5쪽
이 노선은 왜 아직도 스크린 도어를 설치하지 않는 걸까
→ 이 길은 왜 아직도 겹닫이를 안 놓을까
→ 이쪽은 왜 아직도 덧닫이를 안 둘까
13쪽
주로 클레임에 대응해야 하니까 자존심이 깎여나가요
→ 딴죽질을 마주해야 하니까 마음이 깎여나가요
→ 딴지걸기를 받아야 하니까 속이 깎여나가요
15쪽
처음으로 원나잇을 해버렸네
→ 처음으로 하룻밤을 해버렸네
→ 처음으로 그러안아 버렸네
→ 처음으로 믐을 섞어버렸네
20쪽
중고 거래 앱으로 팔았어야 하는 건데
→ 되팔기 무른모로 팔아야 했는데
→ 다시쓰기 꽃으로 팔아야 했는데
→ 헌살림 모로 팔아야 했는데
62쪽
왜 남자만 여자한테 조공을 바치고도 차여야 돼?
→ 왜 사내만 가시내한테 바치고도 차여야 해?
80쪽
나는 위하수체야! 남의 체질을 갖고 사람을 놀리지 마
→ 나는 속처짐이야! 남을 몸빛으로 놀리지 마
→ 나는 배처짐이야! 남을 몸으로 놀리지 마
114쪽
용천수를 찾아 수풀로
→ 옹달샘을 찾아 수풀로
→ 샘물을 찾아 수풀로
180쪽
석양을 보고 있어
→ 저녁놀을 봐
→ 노을을 봐
184쪽
40견입니다. 노안이 시작됐어요
→ 마흔어깨. 잘 안 보여요
→ 어깨앓이. 눈이 이제 어두워요
189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사전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내가 사랑한 사진책》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