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 화가 11
이노카와 아케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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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4.13.

찍어누르니 물감을 찍어서


《누에 화가 11》

 이노카와 아케미

 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2.12.31.



  옆에 있으면 ‘옆’입니다. 그냥그냥 지나가니 스칩니다. 옆에 있기에 돌아보거나 살피는 사이로 지내기도 하지만, 못 본 척하거나 괴롭히거나 따돌리기도 합니다. 옆이라는 자리에서 마음을 기울이면 ‘곁’입니다. ‘옆’은 ‘옆구리’에도 쓰고, ‘곁’은 ‘겨드랑이’에도 씁니다만, 옆에서 곁으로 옮길 적에는 말씨만 다르지 않습니다. 마음이 확 따스하게 바뀝니다.


  옆에 있는 옆집인데, 옆집은 사이좋을 수 있고 데면데면할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곁집’이라 하면 한지붕이나 한집으로 아우르는 결입니다. 그냥그냥 옆에 있으면 먼먼 남일 수 있되, 곁에 있다는 마음으로 접어들면 비로소 ‘이웃’이라 여깁니다.


  우리나라에는 여러 옆나라가 있습니다. 서로 어깨를 겯고 나란히 선다면 ‘곁나라’일 수 있고 ‘이웃나라’이기도 하지만, 총칼을 앞세워 윽박지르거나 짓밟으려 한다면, 이웃도 곁도 아닙니다. 그저 옆에서 괴롭히는 남이요 놈입니다.


  《누에 화가》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스스로 망가지려고 하면서, 누구보다 “제 나라 일본 수수한 사람들”부터 찍어누르던 무렵에, 붓을 쥐고서 그림을 남기는 사람이 마주한 “그저 수수한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나날을 보내었는지 들려줍니다. 나라가 찍어누르는 굴레에 숨도 못 쉬는 사람이 있고, 나라가 찍어누르려는 총칼을 함께 쥐고서 마을사람도 옆사람도 찍어누르는 앞잡이가 있고, 이 서슬퍼런 나라에서 달아날 수도 나갈 수도 없는 가난하고 수수한 살림을 겨우겨우 잇는 사람이 있고, 목소리를 내다가 사라지는 사람이 있고, 어쩔 길을 모르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이웃이 아닌 옆에서 총칼을 쥐고 우락부락 힘자랑을 하던 무렵, 일본사람은 얼마나 앞잡이나 꼭두각시나 허수아비 노릇을 했을까요? 이 모든 바보짓하고 등돌리면서 ‘이웃나라’를 살피고 ‘이웃집’을 헤아리면서 마음과 마음으로 어울리려던 사람은 어느 만큼일까요?


  먹고살아야 한다는 핑계로 나란히 앞잡이 노릇을 한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앞잡이까지는 아니더라도 고분고분 말을 따르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앞잡이를 거스르고 고분고분 따르지 않으면서, 가난하되 곧고 즐겁게 보금자리를 일군 사람이 드문드문 있되 아주 적지는 않습니다.


  모든 나라에서 비슷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앞잡이가 많았고, 말없이 고분고분 따른 사람도 많았으나, 의젓하게 거스르면서 가난길을 기꺼이 맞아들인 사람도 제법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누가 이웃일까요? 누가 옆집이고 곁사람일까요? 그저 이 나라에서 같은 말을 쓰기에 이웃일까요? 서로 다른 말씨를 쓰지만, 마음으로 어울리면서 아끼고 보살필 수 있는 사이여야 비로소 이웃이지 않을까요?


  예나 이제나 나라(정부)는 힘과 돈과 이름으로 찍어누릅니다.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삶을 사랑으로 가꾸면서 살림을 지으려는 수수한 사람은 붓에 먹물을 찍어서 그림을 그리듯, 마음에 꿈씨앗을 톡톡 심으면서 하루를 누립니다. 새봄이기에 호미로 땅을 콕콕 찍어서 씨앗을 심습니다. 봄맞이새는 꽃송이를 콕콕 찍으면서 봄맛을 누립니다. 즐겁고 사랑스러운 하루를 마음으로 찰칵찰칵 찍습니다.


ㅍㄹㄴ


“지금 누이가 머리를 쓰다듬어 줬어요. 천천히 사자에 대해 말하고, 조용히 추억을 더듬는, 그런 애도가 어려운 시대죠. 앞으로 사람의 목숨을 더욱 거칠게 다루게 될 겁니다. 남겨진 사람들은 슬퍼하는 것조차 꺼려지게 되겠지요.” (34쪽)


“사방이 다 화약 냄새 나고, 못마땅하고 불편하지만, 틀어박혀만 있으면 몸 망가져.” (55쪽)


“어차피 여자는 시집가기 전에 흉내나 내는 거지. 하하하.” “이미 시집도 갔고 애도 낳았습니다. 죽은 남편은 좋은 사람이고, 딸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어요. 그러니까 여자인 걸 후회하지도 않고, 남자가 되겠단 생각도 없습니다.” (96쪽)


“벚나무는 꽃의 계절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새잎이 날 때도 멋진데요! 이것 봐요. 그늘도 이렇게 초록색이에요! 잎 사이로 드는 빛이 바람에 움직이는 게 파문 같아요. 잎이 스치는 소리도 기분 좋고. 이러고 있으니까 저도 벚나무 가지가 된 것 같아요.” (108쪽)


“미치코 씨가 변한 건, 제 그림의 힘이 아니라, 자신을 바꾸려고 행동했기 때문일 겁니다.” (153쪽)


“이제부터 한창 때겠네. 요시노리도 카오루도 청춘의 한가운데야. 하필이면 이런 시대에. 하지만 이런 시대이기 때문에, 찍어야 할 것도 그려둬야 할 것도 있는지 모르지.” (156쪽)


“그 주방장도 그날 가족을 잃었잖아.” (199쪽)


#猪川朱美


+


《누에 화가 11》(이노카와 아케미/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2)


화풍이 요즘에 안 맞는대

→ 붓끝이 요즘에 안 맞는데

→ 그림이 요즘에 안 맞는데

7쪽


머리모양 바꿨네요. 잘 어울려요

→ 머릿결 바꿨네요. 어울려요

→ 머리카락 바꿨네요. 어울려요

159쪽


평소의 네 그림보다 훨씬 서정적이야

→ 다른 네 그림보다 훨씬 따뜻해

→ 여느 네 그림보다 훨씬 부드러워

163쪽


굉장히 큰 도움이 됐어요

→ 무척 컸어요

→ 크게 도와주셨어요

→ 큰힘이 됐어요

208쪽


피안으로 떠난 사람들의 그림자를 보는

→ 너머로 떠난 사람들 그림자를 보는

→ 꽃터로 떠난 사람들 그림자를 보는

212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사전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내가 사랑한 사진책》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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