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김진주 지음 / 얼룩소 / 2024년 2월
평점 :
절판
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4.11.
인문책시렁 414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김진주
얼룩소
2024.2.28.
어릴적부터 곧잘 생각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내가 돌이라는 몸이 아닌, 순이라는 몸을 입고서 태어났으면 어찌 살았을까?”입니다. 제가 태어날 즈음 둘레에서는 하나같이 딸이 태어날 줄 알았다고 여겼고, 어린날과 푸른날을 보내는 내내 마을이웃은 언제나 “딸 같은 아들”이 태어났다고 얘기했습니다. 요새야 “집안일 거들기뿐 아니라, 집안일 함께하기에다가, 집안일 도맡는” 사내가 제법 늘었으나, 1970∼90해무렵에는 “사내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 떨어진다”고 하는 터무니없는 소리가 판쳤습니다. 누구보다 우리 언니가 “사내가 부엌에 들어가서 고추가 떨어졌으면 사내는 밥먹지 말아야지.” 하면서 저한테 설거지를 어떻게 하고 부엌일은 어떻게 돕는지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여러모로 보면 우리 언니는 ‘일찍부터 깨인 사내’였습니다. 1987년에 나라지기를 새로 뽑을 적에 ‘백기완’ 같은 사람도 있다고 알려주기도 했거든요.
김진주 님은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라는 책을 써냈습니다. 어떻게 이런 책을 써낼 수 있을까 싶어서 놀랍습니다. 글을 쓸 적마다 생채기에 멍울이 너울처럼 올라왔을 텐데, 끝까지 꾹꾹 참아내면서 매듭을 지었구나 싶어요. 글 사이사이 “얼마나 불타올랐는지(분노)” 적기도 했지만, 웬만한 불길을 잠재우고서, “앞으로 이 나라가 바꾸어 갈 가시밭길”이란 무엇인지 적어내려고 했다고 느낍니다.
이 나라는 “모든 힘여린 사람이 살기 괴로운 곳”입니다. 힘있는 사람이라면 ‘순이돌이’ 누구라도 걱정없이 살아갈 만한 곳입니다. 어처구니없는 터전이기에 이 어처구니없는 굴레를 바꾸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이 꾸준히 있습니다. 다만, 함께 애쓰다가도 힘·이름·돈을 얻거나 거머쥐면 슬쩍 발뺌을 하는 사람이 꽤 많아요. 벼슬이나 높자리를 꿰차면 입씻이를 숱하게 합니다.
길을 가던 ‘아무개’한테 주먹이나 발길질을 휘두르는 이는 “아무 생각이 없는” 삶입니다. ‘부산 돌려차기 남자’가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말 그대로 ‘아무한테’나 발길질을 안 합니다. 생각 안 하는 사람이기에 그만 김진주 님이 이이 옆을 지나다가 벼락을 맞았습니다. 김진주 님이 아니었어도 이진주 님이나 박진주 님이 그 길을 지나갔다면 벼락을 맞았을 테고, 순이가 아닌 돌이였어도 벼락을 맞았을 만합니다. ‘덩치 큰 돌이’가 아닌 ‘덩치 작은 돌이’나 ‘어린이’였어도 벼락을 맞았겠다고 느껴요.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라는 책에 잘 나오기도 하는데, 오늘날 사슬터(감옥)는 사슬살이를 하는 사람을 매우 잘 먹이고 입히고 재웁니다. 사슬꾼(죄소·재소자)도 사람이기에 사람몫(인권)을 지켜주는 일은 올바르되, ‘재소자 인권’을 챙기기만 할 뿐, ‘재소재 참회·회개’에는 영 마음을 못 쓰는 나라이기까지 합니다. 다시 말해서, 잘못과 말썽을 저지른 놈팡이는 ‘갈래(성별)·높이(지위)·돈(재산)’을 모두 떠나서, 사슬터에서 스스로 땀흘려 일하면서 제 밥값을 내야 하고, 사슬터에서 먹고자는 돈을 내야 맞습니다. 절집에서 열가름삯(십일조)을 내듯, 사슬꾼은 나라에 두가름삯(제 벌이 가운데 1/2을 바치기)을 내면서 값을 치를 일이고, 밭일에 쓸고닦기에 갖은 궂은일을 도맡아야 마땅합니다.
이 나라가 틀을 반듯하게 세운다면, 잘못과 말썽이 터질 까닭이 없습니다. 멍청한 주먹질과 응큼질이 안 끊이는 까닭은 돈·이름·힘을 내세워서 여린 사람을 밟고 괴롭히는 틀이 버젓할 뿐 아니라, 때린놈이 제값을 톡톡히 치르는 일조차 드문 탓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나라뿐 아니라, 모든 나라는 “착한 사람을 괴롭히는 굴레”입니다. 모든 나라는 “나라가 시키는 대로 따르는 사람한테 떡과 고물을 나눠주는 틀”입니다. 착하게 살고 참하게 일하고 사랑으로 서로 아끼는 사람이 어떤 가시밭길을 걷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반성문’을 쓰면 뜬금없이 잘못값을 깎아주는 멍청한 짓이 하루빨리 사라지기를 빕니다. ‘반성문’이 아닌 ‘재산몰수’를 해서 아픈이한테 돌려주면 됩니다. 이 나라가 멀쩡한 틀로 거듭나려고 한다면, 이제부터 모든 벼슬자리를 ‘일자리’로 바꾸어야 합니다.
ㅍㄹㄴ
이게 바로 가해자의 이름이구나 하면서 스크롤하니, 바로 밑에 가해자가 반성문을 제출했다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아니, 쟤는 누구한테 반성한다는 거야? 처음으로 가해자에게 진심으로 화가 났다. 반성문 같은 게 있는지도 처음 알았는데 도대체 뭐라고 적어놨을까 궁금했다. (46쪽)
흔히 ‘묻지 마 범죄’라고 하는 말은 사실 맞지 않는 표현이다. 아무 동기가 없는 범죄는 있지 않다. 모든 범죄에는 범인이 지닌 동기가 있다. (66쪽)
사건을 알고 나니까 그 사람에 대해서 계속 비하하려고 애를 썼던 것 같아요. 아휴, 겁쟁이네. 그만큼 가소롭고 약한 인간이구나. 그런 식으로 가해자를 하찮게 여기고 나니까 조금 더 괜찮아진 것 같기도 하고요. (100쪽)
구치소 안에서 치장했을 모습을 상상하니 역겨워ㅕㅆ다. 착석하려는 순간에 눈에 띄었던 건 가해자의 죄수복이었다. 죄수복이 살에 파묻혀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얼마나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살이 저렇게 불려서 나왔을까 기가 찼다. (127쪽)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됐지만 아직도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는 생각을 여전하게 가지고 있다. 피해자가 되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에 백번 공감한다. 왜 이렇게 착하게 사는 사람들을 괴롭힐까. (165쪽)
국가는 피해자의 스케줄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212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