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3.18. 함께 배울 사람
나는 함께 배울 사람하고 살아간다. 함께 배울 마음이 없으면 차갑게 식는다. 시골에서 살기에 시골사람하고 어울리지 않는다. 시골에서도 그저 부릉부릉 몰아대는 사람하고는 안 어울리고, 비닐·풀죽임물·죽음거름을 언제나 듬뿍듬뿍 쓰는 사람하고도 안 어울린다.
가난하기에 다 이웃이지 않다. 주머니는 가난하지만 마음은 추레하다면, 굳이 어울려야 하지 않는다. 가멸차기에 미울 까닭이 없다. 사랑으로 일하면서 일구는 살림돈이라면, 이들은 돈더미를 어마어마하도록 가멸차게 얻거나 벌더라도 모두 사랑으로 베풀거나 쓰게 마련이다.
함께 배울 사람이라고 여기니, 이웃하고 동무한테 글월을 적어서 띄운다. 함께 배우며 걸어갈 사람이로구나 하고 느끼니, 내 주머니를 털어서 온갖 책을 장만한 다음에 스스럼없이 건넨다. 함께 배울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내 책이건 아름책이건 건넬 까닭이 없다.
누구나 함께 배울 사람하고 일하게 마련이다. 배우려고 이 별에 왔으니까. 배우면서 이 삶을 누리고 짓는 오늘을 일구려고 이 별에서 숨을 쉬고, 해바람비를 품는다. 그래서 ‘배움이’는 곧 ‘익힘이’로 거듭나는 길을 걷고, 이윽고 ‘이야기꾼’으로 피어나면서, ‘이음꽃’인 ‘살림꽃’이라는 참빛을 알아본다. 스스로 살림꾼인 참빛을 밝히는 눈망울로 하루를 바라볼 적에는 바야흐로 우리가 왜 ‘사람’이라는 이름인지 알아차린다.
삶을 그저 하루하루 꾸역꾸역 보낼 적에는 ‘사람’이 아닌 ‘짐승’이다. 다만, 짐승이라는 이름이 나쁠 까닭이 없고, 나빠야 하지 않으며, 나쁘게 볼 수 없다. 그저 꾸역꾸역 보낸다는 뜻이라서 붙이는 말인 ‘짐승’일 뿐이다. ‘짓다’가 아닌 ‘몸짓’에 머무른다는 뜻에서 ‘짐승’이다. “몸짓으로 숨을 쉬는 길”이기에 ‘짐승’일 뿐이고, ‘목숨붙이(생명체)’를 가리키는 밑동인 낱말이다. 그러니까 아직 ‘숨붙이(숨쉬는 몸 = 짐승)’일 적에는 누구도 ‘사람’이 아니다. 짐승이라는 몸붙이(숨붙이)에서 ‘사람’으로 깨어날 적에는, 알깨기(알아차리다)를 하면서 ‘사랑을 풀어서 살림을 품는 숲빛’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나는 서로서로 사람으로 깨어나려는 배움길을 나란히 걸어갈 사람하고 만나려 하고, 함께 사람으로 깨어나려는 마음이고, 함께 사람으로서 사랑을 살림에 녹이는 숲노래를 부르려는 뜻이다. 배우려 하기에 서로서로 이웃이요 동무이다. 배우려 하지 않는다면 그냥그냥 흘러가는 모래알이고, 그저 지나가는 가랑잎이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