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3.16. 놓치는 일은 없다



  놓치는 일은 없다. 바로 다음에 온다.


  부산나루 건너에 있는 〈창비부산〉에서 연제동 〈카프카의 밤〉으로 건너가려고 전철을 탄다. 연산나루에서 내려 81번 버스로 갈아타려고 한다. 비오는 흙날 낮은 붐빈다. 물결치는 사람들은 왁자지껄 수다잔치이다. 버스나루에 서서 알림판을 보니 81번 버스는 7분 뒤에 온다고 뜬다. 그런데 7분 뒤에 온다던 버스는 7분 뒤가 아닌 15분 뒤에 온다. 사람들은 우글우글 달리고 밀리는데, 같은 81번 버스가 둘이 나란히 들어오네. 나까지 세 사람을 뺀 모두 앞에 먼저 들어온 버스에 타려고 북적이고 밀친다. 나까지 세 사람은 뒤에 슬슬 들어오는 버스에 탄다. 뒷버스는 텅 비었다. 세 사람은 빈 버스에 눕듯 느긋이 앉는다. 아마 앞버스는 그야말로 미어터지리라 본다. 앞버스랑 뒷버스는 자꾸자꾸 나란히 달린다. 뒷버스는 천천히 가려고 하지만, 막상 사람들은 뒷버스를 타려 하지 않고서 앞버스에만 타려고 하는 듯싶고, 두 버스는 벌어졌다가 만나고 또 벌어졌다가 만난다. 앞버스를 모는 일꾼은 뒷버스에 타시라고 말씀하는 듯싶으나 손님들은 버스일꾼 말을 듣기보다는 그저 꾸역꾸역 앞버스만 타시는구나 싶다.


  이날 저녁과 이튿날 아침에 부산이웃님한테 81번 버스를 타면서 “나란히 들어온 두 버스”를 이야기했더니 “81번 버스 자주 들어오는데예.” 하신다. 자주 들어오니까 앞버스를 보내더라도 느긋이 뒷버스를 타면 될 일이다. 그렇지만 부산뿐 아니라 광주도 인천도 대구도 대전도 서울도 이와 같다. 1분이건 2∼3분이건 다들 못 기다리신다. 그냥 꾸역꾸역 몸을 밀어넣어서 빨리 가고 싶어 한다.


  시골에서는 시골버스를 으레 2∼3시간씩 기다린다. 나는 시골사람으로서 5분이나 7분마다 들어오는 버스를 잡으려고 달리지 않는다. 2시간이나 3시간도 아니고 5분이나 10분 만에 들어와 주시는 버스가 얼마나 고맙고 대단한가! 앞에서 붐비거나 지나가려고 하면 가볍게 보낸다. 얼핏 코앞에서 놓치는 듯 보이더라도 “놓치는 일은 없다”고 할 만하다. “다음길은 늘 곧바로 온다”고 할 만하다.


  내가 맡거나 일할 자리나 몫인데, 남이 내 자리나 몫을 가로챈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런데 누가 내 자리나 몫을 가로채거나 빼앗으려 하면, 그이가 그냥 가지라고 내어줄 만하다. 나는 느긋이 바람을 쐬고 빗소리를 듣고 풀꽃을 들여다보면서 즐겁게 다음길을 기다리면 된다. 먼저 가려는 분이 있으면 먼저 가라고 하자.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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