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3.12. 씨앗은 작다
아무리 하늘을 찌를 듯이 자라는 우람한 나무 한 그루여도 씨앗은 더없이 작다. 솔꽃이나 잣꽃을 보았는가? 느티꽃이나 단풍꽃을 보았는가? 꽃도 작은데 씨앗은 훨씬 작은 나무가 수두룩하다.
사람은 안 크다. 사람은 사람만 하다고 할 테지만, 사람도 하나하나 놓고 보면 모두 작다. 사람은 작기에 집을 이루고 마을로 모인다.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갈 적에 ‘마을’에서 멈추었다. 그런데 사람답지 않게 벼슬을 노리고 돈을 꾀하고 이름을 드날리려는 무리가 불거지면서 우두머리가 나타났고, 우두머리는 ‘나라’에 ‘서울’에 ‘고을·고장’을 갈랐다.
작은사람으로 작은살림을 짓는 작은숲을 펴려는 마음을 잊고 잃은 우두머리는 스스로 ‘큰사람’이라고 우쭐거린다. 우두머리를 둘러싼 모든 벼슬아치와 돈바치와 글바치는 ‘큰살림’을 짓는다고 자랑한다. 그들은 ‘큰집’에 ‘큰나라’를 떠벌인다.
그러나 보라. 아무리 푸른별에서 큰나라를 이루더라도 고작 푸른별 밖에 나가서 보면 콩알조차 아닌 코딱지만 하다. 이웃별이라든지 이웃별누리(은하계)에서 보면 “코딱지에 낀 때”에마저 댈 길이 없을 만큼 초라하도록 조그맣다.
씨앗은 작기 때문에 다 다른 모든 풀꽃나무가 어울리는 숲을 이룬다. 사람은 작기 때문에 다 다른 모든 사람이 문득 만나서 마음을 나누다가 사랑을 지피고, 보금자리를 이루면서, 아이를 반갑게 맞이한다. 작은사람이기에 작은씨앗처럼 작은아이를 낳고서 작은집을 사랑으로 돌본다.
스스로 작은씨앗인 작은사람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이때에는 그저 맛가고 망가지는 굴레로 치닫는다. 작은씨앗이라면 작은책일 텐데, 작은책으로 머물지 않는 모든 ‘큰씨앗’ 흉내를 내는 ‘큰책’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왜 큰책이어야 할까? 왜 많이 팔아서 많이 읽혀야 할까? 왜 어질게 여미어 참하게 읽히는 길로는 안 나아가려고 할까?
씨앗은 안 싸운다. 씨앗한테는 ‘싸움’이라는 말조차 없다. 씨앗한테는 ‘해바람비’라는 낱말을 바탕으로 놓으면서, ‘나’라는 낱말을 씨눈으로 삼는다. ‘나’를 품기에 ‘낳다’라는 길을 열면서 ‘나아가’고, 어느새 ‘날다’를 품고서 ‘태어난’다.
글을 쓰고 싶다는 젊거나 늙은 이웃님한테, 배움불굿(입시지옥)에서 고단하다는 푸른 이웃님한테, 시골로 살림터를 옮기고 싶다는 반가운 이웃님한테, 어떻게 해서든 서울에서 푸른길을 열고 싶다는 듬직한 이웃님한테, 으레 읽어 보라고 여쭙는 책은 《아나스타시아 1∼10》이다. 열걸음부터 첫걸음으로 거슬러서 읽으라고 여쭌다. 열걸음을 열 해에 걸쳐서 차분히 읽고 새기고 스스로 돌아보노라면, 어느새 스스로 수수께끼를 다 푼다고 한마디 보탠다.
여든 살 이웃님도 할 수 있는 일이 넘실넘실 있다. 여덟 살 이웃님도 노래할 수 있는 일이 남실남실 춤춘다. 하루아침에 하려니 얹힌다. 하나씩 하려니 시나브로 모두 이룬다. “즈믄길도 첫걸음부터”라는 옛말이란, 우리가 누구나 알지만 누구나 잊은 즐거운 슬기를 사랑으로 속삭이는 수수께끼라고 느낀다. 왜 “즈믄길도 첫걸음부터”이겠는가? 우리는 모두 작은씨앗인 작은사람인걸. 그러니 작은걸음을 한 발짝 떼면 모두 이룰 수 있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