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은퇴 2025.2.19.물.



삶을 마칠 때까지는 끝(은퇴)이 없어. 오늘날 ‘사람터’에서는 으레 ‘은퇴·정년퇴직’ 같은 이름을 붙이는데, 참으로 얼토당토않은 짓이란다. 보렴! “가정주부 은퇴”가 있니? “가정주부 정년퇴직”이 있어? 집안일을 서른 해쯤 했으니, 이제부터는 집안일에서 손떼도 될까? 온누리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야. ‘은퇴·정년퇴직’을 할 일이라면, 처음부터 ‘일감’조차 아니란다. ‘은퇴·정년퇴직’은 오직 ‘돈팔이·이름팔이·힘팔이’에서 쓰는 허울이란다. 너는 “숨쉬기 은퇴”나 “밥먹기 은퇴”나 “똥누기 은퇴”나 “씻기 은퇴”를 할 수 있겠어? 터무니없지. 너는 “빨래 안 하기”도 “옷 안 갈아입기”도 “잠 안 자기”도 할 수 없단다. ‘은퇴·정년퇴직’이 있는 자리를 제대로 바라보렴. 어느 나이에 이르면 그만두어야 한다면, 그곳은 사람들 ‘젊은피’를 빨아먹는 곳이라는 뜻이야. 온누리를 읽고 잇는 이야기를 펼 수 있는, 어질고 슬기로운 ‘어른’을 몰아내려는 얼거리가 ‘은퇴·정년퇴직’이란다. 보렴! 이제 막 어느 일터에 들어선 풋내기가 무슨 일을 맡을 수 있을까? 새로 빚은 술은 새로 짠 자루에 담을 노릇이지만, 오래오래 잇는 일이라면, 일손을 어질게 돌보는 사람이 다룰 노릇이란다. 보렴! ‘논밭지기’는 마지막숨을 내놓는 날까지 땅을 돌보고 사랑하는 어진 일꾼이야. 80살이건 120살이건 어진 논밭지기란다. 집을 돌보는 살림꾼(가정주부)은 90살이건 130살이건 어진 살림꾼이지. 집살림을 일구는 어진 사람은 집안일을 놓아야 할 까닭이 없어. ‘은퇴·정년퇴직’이 있는 자리는 언제나 사람을 ‘높낮이(질서·계급·신분)’에 가두는 쇠사슬이란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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