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가을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젯밤, 그리고 오늘낮, 집에 있는 온도계를 보니 16∼17도입니다. 햇살이 내리쬐는 바깥은 20도를 넘길까요? 오늘은 며칠 만에 해가 얼굴을 내밀고 있어서 부랴부랴 이불을 걷어서 담벼락에 널어 놓습니다. 그러고는 머리를 감고 웃도리와 수건 빨래를 합니다. 온도계로는 가을이라 그런지 이른새벽이나 이른아침에는 머리감기 힘듭니다. 이제 막 가을 문턱을 넘어서서 그럴 텐데, 조금 지나면 익숙해지겠지요. 한겨울에도 찬물로 머리를 잘만 감아 왔으니까요.
빨래는 집안에 널어 놓은 다음, 머리카락 물기를 조금 털어내고 마당으로 나와 해바라기를 합니다. 갈비뼈처럼 보이는 양털구름이 좋아 보여서 사진 한 장 찍습니다. 앞집 하나 건너에 있는 기찻길로 전철이 오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요새는 전철길을 따라 길게 울타리가 놓여서 시끄러운 소리를 조금이나마 막아 줍니다. 이 울타리조차 없던 지난날에는 기찻길 옆 사람들은 우예 살았을까요. 아니, 지난날에는 기찻길 옆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소리 공해’에 시달린다는 생각을 아예 안 했겠지요. 생각해 보면, 기찻길이든 넓은 찻길이든 가난한 사람들 살림집을 밀어내고 죽 밀어붙였어요.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 모여살던 마을은 그예 두 동강이 나서 얼결에 남북, 또는 동서로 갈린 채 서로 만날 수 없는 사이처럼 되고 맙니다. 때때로 고속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면, 이 고속도로 왼편과 오른편으로 갈린 마을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오갈 수 있을까 싶어 가슴이 짠합니다. 어쩌면, 두 마을 분들은 서로 오갈 일이 없을지 모르겠고, 고속도로로 나뉜 지 오래되어서 서로 오갈 일도 사라졌는지 모르겠어요.
잠깐 동안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데에도 머리카락 물기가 거의 다 마릅니다. 웃도리를 들고 도서관으로 내려옵니다. 물 한 잔 마시고 책상 앞에 앉습니다. (4340.10.11.나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