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지우는 2025.1.15.물.



‘책’이란 무엇이라고 여겨? 종이로 묶는 꾸러미인 ‘책’이 있고, 입으로 차곡차곡 들려주는 ‘이야기’인 책이 있어. 몸소 짓고 가꾸고 일구어 나누는 ‘살림’인 책이 있고, 언제 어디에서나 한결같이 흐르면서 빛나는 ‘사랑’인 책이 있어. 이 ‘책’이란, 글·그림으로 담는 꾸러미만 가리키지 않아. 이야기·살림·사랑이 책이란다. 네가 눈밝은 삶이라면, ‘숲’이라는 책을 읽고, ‘하늘’과 ‘별’이라는 책을 읽고, ‘바다’와 ‘비’라는 책을 읽고, ‘들’과 ‘밭’이라는 책을 읽어. 참으로 책답게 책을 보고 쓰고 나누는 하루라면, ‘지을’ 수 있고, ‘지울’ 수 있어. 새롭게 지으면서 빛나는 왼손에, 살며시 지우면서 재우는 오른손을 나란히 놀릴 줄 알면, 사람다운 길이야. 안 보이도록 슥슥 덮는 몸짓은 ‘지우기’가 아닌 ‘덮기’에 ‘감추기’란다. 이제 흙으로 돌아가서 새숨을 살리는 밑거름으로 가라고 알리는 ‘지우기’여야 알맞아. 저쪽에 놓는 ‘치우기’로는 새길을 가지 않아. 지을 때는 짓고, 지울 때는 지우렴. 때와 곳에 따라 어떡해야 어울릴는지 스스로 찾고 배워 봐. 지우지 못 하면 짓지 못 해. 짓지 않으면 지우지 못 하지. 억지를 쓰면 짓지도 지우지도 못 해. 짓는길과 지움길은 다르면서 같아. 짓는손과 지움손은 다르기에 같지. 네가 걷는 길은 늘 낱낱이 네 마음에 깃드는데, 넌 네 길을 늘 낱낱이 안 떠올려. 그렇다고 새로 담기만 하지 않아. 가없는 빛을 마음에 담고서 “빛없는 껍데기”는 모두 몸밖으로 내놓아서 새흙으로 돌린단다. 몸을 짓기에 몸에 안 쓸 것을 고스란히 지우듯 내보내. 넌 몸밖으로 내보내는(지우는) 찌꺼기가 아깝거나 아쉽니? 즐거이 지우기에 기쁘게 짓고, 신나게 짓기에 노래하며 지운단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