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1.18. 지지지



  이제 봄맞이(입춘)가 코앞이라 더 일찍 동트는 한겨울이다. 이른아침부터 논두렁을 걸어서 옆마을로 가는 길도 환하다. 아직 고무신 발바닥은 하얗게 얼지만 언발로 다니는 나날도 얼마 안 남았다고 느낀다.


  시골버스를 기다리며, 또 읍내에 닿아 시외버스를 기다리며, 손발이 나란히 얼지만 손에 붓을 쥐고서 노래를 쓴다. ‘지’하고 얽힌 낱말에 이야기를 담고서 가만히 우리 살림을 돌아본다.


  집다·짓다·짚다·짊다·지내다·지다·질다·짙다 ……, 이런 낱말을 하나로 볼 줄 아는 이웃은 이제 얼마나 있을까.


  마음을 담는 말은 거칠 일이 없으나, 마음이 없는 말은 오직 불(감정)만 들끓기에 마음없이 말하는 이는 늘 스스로 불지르고 둘레도 활활 태워서 같이 수렁에 빠지려고 한다. 이른바 옳고그름은 불씨이다. 마음있는 말은 맑고 밝게 풀씨이다.


  불씨는 다 태우는 잿더미로 간다. 풀씨는 다 살리는 들숲으로 품는다. 불씨는 이내 불바람을 일으켜 몽땅 휘감는다. 풀씨는 이윽고 푸르게 우거져 모두 노래로 바꾼다. 불씨는 곧 불바다로 번져서 모조리 앗아간다. 풀씨는 고스란히 풀꽃과 나무로 자라나니 누구한테나 낟알과 열매를 베푼다.


  나는 먼저 나한테 묻고 아이들한테 묻고 너한테 묻는다. 불씨가 되겠니? 풀씨가 되겠니?


  나는 불수렁 한복판으로 달린다. 혼자만 풀고 품어서 푸지게 누리려는 마음이란 없다. 네가 불수렁 아닌 풀밭에서 함께 맨손 맨발 맨몸으로 뒹굴며 깔깔깔 웃고 춤추며 노래하는 하루를 그린다. 나는 불수렁 한복판에 풀씨를 심으러 간다. 온곳이 푸르게 우거지면서 사랑으로 피어나기를 바라고 바라본다.


  새벽 세 시에 《이오덕 일기》를 되읽어 보는데, 이오덕 어른도 사랑으로 글을 여민 길잡이가 맞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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