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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만 시전집
박정만 지음 / 해토 / 2005년 10월
평점 :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1.2.
노래책시렁 466
《그대에게 가는 길》
박정만
실천문학사
1988.11.25.
죽을까 두려운 사람은 그야말로 섬찟하구나 하고 느끼면서 몸을 내려놓습니다. 다만 몸을 내려놓으면서도 발버둥을 칩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밝히는 사람은 오히려 늘 두려운 마음이라서 몸을 내려놓기 싫어서 앓다가 떠납니다. 그리고 내려놓은 몸에 자꾸 사로잡힙니다. 죽을까 두렵기에 밤잠을 이루지 못 합니다. 죽는구나 싶으니 불을 끈 밤에 별을 못 봅니다. 《그대에게 가는 길》을 1988년에 처음 읽었습니다. 언니는 곧잘 이 노래꾸러미를 들추었고, 언니가 무슨 글을 이렇게 곁에 두고서 자주 되읽는지 궁금해서 슬쩍슬쩍 들여다보곤 했습니다. 2000년 무렵에 내 책으로 사서 되읽어 보았고, 2024년 겨울에 새삼스레 더 장만해서 다시 읽어 봅니다. 곧 벼랑 너머로 나아가는구나 하고 느끼던 마음을 물씬 담은 줄은 익히 알았는데, 한 발을 디디다가 돌아서다가 또 디디다가 새삼 돌아서는 마음으로 붓을 쥐었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날마다 밤이면 벼랑 너머로 나아가는걸요. 낮잠을 누리는 살림이라면 하루에 두 판씩 벼랑 너머로 훌쩍 건너는 셈이에요. 가만 보면 모든 숨붙이는 날마다 꼭 한 판씩 ‘죽어보기’를 치릅니다. 몸을 내려놓는 길이란 무엇인지 밤마다 새로 맞이하면서, 아침마다 다시 태어나요. 걱정하니 앓고, 두려우니 죽습니다.
ㅅㄴㄹ
해 지는 쪽으로 가고 싶다. / 들판에 꽃잎은 시들고, / 나마저 없는 저쪽 산마루. (해 지는 쪽으로/13쪽)
청산아, 꽃 피는 날이 사라졌다. / 저 눈물 어린 고개 위에 / 꽃 피고 달 뜨던 나의 청춘, / 오라, 나의 청춘이 사라졌다. (다 가고/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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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가는 길》(박정만, 실천문학사, 1988)
저 광활한 우주속으로
→ 저 가없는 너머로
→ 저 너른 누리로
→ 저 까마득한 곳으로
→ 저 드넓은 밖으로
12
이 세상 가장 순결한 꽃잎의 이름으로
→ 이 땅 가장 고운 꽃잎 이름으로
→ 이곳 가장 정갈한 꽃잎 이름으로
16
육신의 뼈가 아득하고 어두운 저 謫所 위에 내 생도 사라지고 풀잎 또한 시든 것을
→ 몸마다 뼈가 아득하고 어두운 저 멍에에 내 삶도 사라지고 풀잎 또한 시드니
→ 뼈가 아득하고 어두운 저 굴레에 내 삶도 사라지고 풀잎 또한 시들어
16
어여쁜 발목을 가진 비둘기같이
→ 발목이 어여쁜 비둘기같이
22
이름모를 풀꽃들의 그림자
→ 난 모르는 풀꽃 그림자
→ 수수한 풀꽃 그림자
→ 숱한 풀꽃 그림자
24
먼 산정에는 어느덧 억새꽃이 무성하다
→ 먼 멧갓에는 어느덧 억새꽃이 우거지다
→ 먼 꼭대기엔 어느덧 억새꽃이 가득하다
36
천 마리의 이가 끓는 나의 몸
→ 즈믄 마리 이가 끓는 이 몸
→ 즈믄 이가 끓는 몸
42
美人만이 유독 살아남는다
→ 고운님만이 살아남는다
→ 꼭 꽃님만 살아남는다
77
그들은 어둠을 슬쩍 훔치는 도적이거나
→ 그들은 어둠을 슬쩍 훔치거나
77
청산아, 꽃 피는 날이 사라졌다
→ 숲아, 꽃피는 날이 사라졌다
→ 들숲아, 꽃피는 날이 사라졌다
84
나는 까닭없이 시들어지겠지
→ 나는 까닭없이 시들겠지
89
어둠의 산천초목 있단 말이지
→ 어두운 들숲내 있단 말이지
→ 어두운 멧들내 있단 말이지
11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