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실려다니다 2024.12.18.물.



사람들이 한 발씩 떼며 걸어다니던 무렵을 떠올려 봐. 땅바닥을 발바닥으로 디디면서 다닐 적에는 무엇을 보고 듣고 맞이하고 느끼고 살피고 깨닫고 누렸을는지 헤아려 봐. 사람들이 날개를 펴며 날아다니던 즈음을 떠올려 봐. 바람에 날개를 실어서 하늘을 마음껏 누빌 적에는 무엇을 바라보고 담고 받아들이고 맛보고 돌아보고 배우고 누렸을는지 헤아려 봐. 사람들이 그저 빛으로 반짝이면서 홀가분히 가로지르던 나날을 떠올려 봐.  눈을 깜빡하는 사이에 이곳에서 저곳까지 가볍게 건너가던 삶일 적에는 서로 어떻게 잇고 만나며 나누었는지 헤아려 봐. 이제 사람들은 ‘실려다니’는구나. 하나같이 크고작은 쇳덩이에 몸을 짐짝처럼 싣거나 구겨서 넣네. 스스로 걸어다니기를 잊고, 누구나 날아다닐 수 있는 몸인 줄 잊고, 언제나 어느 곳이든 때이든 가로지르는 빛살이 흐르는 줄 잊어. 크고작은 쇳덩이(교통수단)에 실려다니는 사람은 어떤 낯빛이니? 웃으면서 실려다니니? 즐겁게 어울리거나 만나려고 실려다니니? 어쩔 길이 없다고 여기면서 이리 실려다니고 저리 실려다니는 짐짝으로 구르지 않아? 실려다니는 짐짝은 해를 등지다가 잊어. 밤낮을 모르고 별을 몰라. 하루를 ‘셈(숫자)’으로만 여기느라, 모든 하루가 새롭게 깨어나는 줄 아예 몰라. 사람한테 다리가 왜 있니? 스스로 땅을 디디며 서로 잇는 길인 다리야. 사람한테 팔이 왜 있니? 스스로 하늘을 안으며 팔랑팔랑 활개치는 길인 팔이야. 사람한테 발이 왜 있니? 모든 땅에서 기운을 받아들이면서 어느 땅에서나 제 바탕으로 서는 발이야. 사람한테 손이 왜 있니? 모든 기운은 스스로 솟듯, 이 손으로 모두 짓고 빚고 가꾸고 일구고 마련하고 주고받으면서 사랑하라는 손이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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